광주, 그 건설사..또 '안전'이 무너졌다

강현석 기자 2022. 1. 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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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고층 아파트 신축 공사 현장에서
외벽 무너져 노동자 6명 연락 두절
현대산업개발 시공, 또 대형 사고

신축 아파트 외벽 ‘와르르’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 아이파크’ 2단지 신축공사 현장에서 11일 오후 건물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날 사고는 39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던 중 외벽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연합뉴스
화정동 신축 고층아파트 외벽 붕괴
외국인 포함 노동자 6명 연락 두절
추가 붕괴 우려에 구조 작업 중단
학동 참사 재발 방지법 통과된 날
현대산업개발 시공, 또 대형 사고

광주광역시 한 고층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외벽이 붕괴돼 노동자 6명과 연락이 두절됐다. 당국은 이들의 소재 파악에 나서는 한편 추가 붕괴 우려가 있다고 보고 인근 주민들을 긴급 대피시켰다.

11일 오후 3시46분쯤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 아이파크’ 2단지 신축공사 현장에서 건물 1개 동의 외벽이 무너져 내렸다. 이날 사고는 39층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진행하던 중 24층에서 34층 사이 외벽이 무너지면서 발생했다.

당국은 붕괴된 건물 28층부터 31층 사이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노동자 6명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다. 당국이 시공사 측과 함께 현장에 투입된 노동자 현황을 조사한 결과, 건설 현장 주변에서 휴대전화 위치가 잡힌 노동자 6명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들의 상당수는 외국인 노동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붕괴된 건물에서 창호 설치 작업 등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추가 사고 우려로 수색을 중단하고, 날이 밝으면 안전진단을 거친 뒤 수색을 재개할 계획이다.

1층에서 작업하던 노동자 1명도 건물 잔해에 맞아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지상 컨테이너 상자에 있던 노동자 2명도 고립됐다가 구조됐다. 무너진 건물 잔해가 공사장 울타리를 넘어뜨리고 2차선 도로에 떨어지면서 인근에 주차된 차량 10여대도 파손됐다.

신축 공사 중 외벽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한 광주 서구 화정동 화정현대아이파크 공사 현장에서 11일 구조대가 실종자를 수색하고 있다. 연합뉴스
‘혼비백산’ 주민 100여명 대피
“안전 민원 200건 있었다”
굉음과 함께 엄청난 분진 일어
아파트 한쪽 뜯겨나가듯 붕괴
도로 꺼지는 등 전조현상 있어
건설업계, 부실시공 의혹 제기

당국은 건물의 추가 붕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현장 인근 주상복합아파트 91가구 주민 116명을 모텔 등으로 긴급 대피시켰다.

해당 건물은 붕괴사고 여파로 전기 공급도 모두 끊긴 상황이다.

사고가 난 아파트 공사 현장은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았다. 현장에서는 316가구 규모의 지하 4층 지상 39층 아파트 5개 동을 짓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2020년 3월 공사를 시작해 오는 11월30일 준공 예정이었다. 현재 건물 외벽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었다.

사고 당시 콘크리트 구조물이 지상으로 추락하면서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굉음과 함께 엄청난 분진을 내며 아파트 한쪽 귀퉁이가 위에서 아래로 뜯겨 나가듯 한꺼번에 무너져 내렸다.

땅이 흔들리는 진동과 함께 건물이 무너지는 굉음을 듣고 이웃 건물에서 뛰쳐나온 상가 주인은 직원들과 함께 먼지를 뚫고 현장에서 벗어났다. 일부 상가에는 지상으로 떨어진 콘크리트 파편이 내부로 튀어 들어오기도 했다. 인근을 지나던 행인이 급하게 현장을 벗어나는 장면도 인근 폐쇄회로(CC)TV에 찍혔다.

주민들은 “예견된 사고”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 공사장과 관련한 주민 민원이 200건 넘게 접수되면서 광주 서구의회 행정사무감사 의원들은 “구청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공사장 옆 주상복합상가 자치회장 홍모씨(54)는 “지난 1년6개월 동안 서구청과 현대산업개발에 환경·건설·교통 관련 민원 수백건을 제기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밝혔다. 그는 “공사장 상층부에서 합판·쇠막대·콘크리트 잔해물이 추락하는 사례가 있었고, 공사 영향으로 도로가 움푹 꺼지거나 균열이 생기는 등 안전을 위협하는 사례도 잦았다”면서 “매일 불안에 떨어야만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부실시공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겨울에는 콘크리트에 열을 가해 적정한 온도로 올려줘야 하지만 이를 제대로 하지 않아 콘크리트와 철근의 접착력이 떨어지면서 붕괴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현대산업개발이 시공을 맡은 광주의 공사 현장에서는 지난해에도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지난해 6월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주택재개발사업 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졌다. 붕괴된 건물이 버스정류장에 들어서던 시내버스를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경찰 수사 결과 당시 건물 철거 현장에서 불법 하도급이 확인됐다. 감리자는 현장에 가지 않았고 구청에 제출한 해체계획서대로 작업이 진행되지도 않았다.

국회는 이 사고 이후 해체공사감리자의 현장이탈을 금지하고, 허가받은 계획서대로 건축물을 해체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강화하는 ‘광주 학동4구역 붕괴 참사 재발 방지법’(건축물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논의해 이날 통과시켰다.

민주노총 광주지역본부는 성명을 내고 “학동 참사에서 보았듯 현장의 책임이 가장 크고 무거운 현대산업개발은 빠져나가고 하청 책임자만 구속되었을 뿐”이라면서 “재해 발생 시 원청 경영책임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온전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즉각 개정하라”고 했다.

경찰은 사고 직후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광주경찰은 이번 붕괴사고 관련 사건을 강력범죄수사대에 배당하고 사고 원인과 안전조치 미준수 여부 등에 대한 조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구조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사고 원인 분석을 위한 합동 감식과 관련자 소환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현대산업개발 측은 “사고 현장에서 추가 인명피해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서 “붕괴 원인에 대해서는 정밀진단을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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