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발 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투명인간 탈피' 등 갈 길은 멀다

이혜리·박홍두 기자 2022. 1. 11.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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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노동이사 1명 의무화’ 국회 통과
경영에 노동자 참여 의미 있지만
극소수에 비상임…권한은 미미
정당 가입 연령 만 16세로 하향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동이사를 넣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까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국회 처리가 급물살을 탔다. 노동이사는 공공기관 경영에 노동자가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사회 내에서 극소수이기 때문에 지위와 권한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국회가 본회의에서 의결한 법안은 공공기관 이사회가 노동이사 1명을 반드시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제도 취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노사의 협력과 상생을 촉진하고 경영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다. 노동이사제 도입을 강하게 촉구해왔던 한국노총은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환영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과 박근혜 정부의 성과퇴출제 등 밀실에서 깜깜이로 진행돼온 공공기관 운영의 심각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를 ‘중요한 출발’이라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도록 할 것인가의 점에서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공공기관 경영이 얼마나 바뀔 것인지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현재 지방 공기업 70여곳에서 100여명의 노동이사가 이미 활동 중인데, 십수명의 이사회 구성원 중 노동이사는 단 1명으로 극소수인 데다 비상임이기 때문에 지위와 권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에서 안건을 부의할 권한은 없고 발언권 정도가 있을 뿐이라 자칫하면 ‘거수기’ 노릇에 그칠 수도 있다. 이재복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이사회에서 심층적인 논의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보다 투명해진 부분은 있다”며 “비상임이사이기 때문에 정보 접근 등 경영 참여에 한계가 있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특히 노동이사가 되려면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현재 지방 공기업들의 노동이사는 탈퇴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탈퇴하지 않는 게 외국 입법례다. 이번 법안엔 탈퇴 여부가 규정돼 있지는 않다. 또 지방 공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직선제 투표를 통해 노동이사를 선출하는 데 반해, 이번 법안은 노조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받은 사람으로 하게끔 돼 있다.

경영진과 대등한 힘을 갖지도 못하고, 노조·노동자와 괴리된 노동이사가 ‘고립’된 존재가 되면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진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에 대해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에서 나아가 기획재정부 중심의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편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민간부문 확산은 남은 과제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집에는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민간기업으로 확산’이라고 돼 있지만 경영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도입될 경우 한국 시장경제에 큰 충격과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향후 민간기업 확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여야는 이날 정당 가입 연령을 현행 만 18세에서 만 16세로 낮추는 정당법 개정안도 통과시켰다. 지난달 31일 만 18세 청소년도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 해당 선거에 정당 추천 후보로서 출마하기 위해 정당 가입 연령 기준을 하향할 필요가 제기됨에 따라 개정된 후속 입법이다.

만 18세 청소년이 정당 추천 후보로 2022년 3월과 6월에 각각 실시될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바로 출마할 수 있게 됐다.

이혜리·박홍두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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