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 반성문 썼다고 감형하는 게 옳은 건가요 [박미랑의 범죄 속으로]
편집자주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 그는 왜 범죄자가 되었을까. 범죄를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곁에 존재하는 범죄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본다.
삼남매의 둘째로 자란 나는 언니, 동생과 다양한 주제로 많이 싸웠다. 늘 부모님께 혼났고 '잘못했다'는 말과 '다시는 안 그러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상황은 종료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반성문을 쓰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 반성문을 적어 내려가는 과정은 억울함과 미안함, 그리고 이렇게 혼나는 것이 끝날 수도 있다는 기대감으로 시작되었지만,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끝맺음이 되었다. 이후 부모님의 포용은 처절하게 싸운 삼남매의 눈물을 쏟게 하였다. 사실 범죄학을 공부하고 나서 반성은 기회를 주는 것이요,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에 참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은 강화되었다.
그러나 최근, 반성과 관련하여 받아들이기 힘든 두 건의 재판 결과를 접하였다.첫 번째는 대낮에 대형 마트에서 처음 본 10대 여학생을 화장실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한 20대 남성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는 재판 결과이다. 강간 혐의로 징역 3년을 받은 그는 4년의 집행유예가 선고되었는데 이를 선고한 판사는 피고인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범죄자는 75번의 반성문을 쓴 것으로 전해졌다. 두 번째 사건은 동물판 n번방이라 불린 오픈채팅 고어전문방 참여자의 재판 소식이다. 가해자는 석궁으로 고양이를 맞추고, 직접 제조한 도구로 고양이를 참수한 다음 그 머리뼈도 채팅방에 공유했다. 엄벌을 촉구한 탄원인은 2만여 명에 달했고, 검찰은 관련 법의 최고 형량을 구형하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이 범행 이후 동물 보호를 위한 활동을 하는 등 잘못을 시인한다"며 그에게 징역 4개월과 동시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집행유예의 결정에 75장의 반성문과 잔인한 동물 학대 이후 동물 보호 활동을 한다는 점이 고려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오죽이나 봐주고 싶었으면 '반성'을 들먹이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판결문에서 집행유예라는 단어를 수없이 봐오고 있지만 그 양형사유에 '진지한 반성'이 들어갈 때마다 질문을 던지게 된다. "대체 판사님께 '진지함'과 '반성'은 무엇입니까?"
형법 제51조는 형을 정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다양한 요인을 제시하고 제53조는 작량감경이라 고려해야 할 사유가 있을 경우 법관이 재량적으로 그 형을 감경할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러한 내용은 주요 범죄군의 양형기준 안에 양형요인으로 녹아 있다. 특히나 성범죄의 양형기준에는 일반 감경인자로서 '진지한 반성'이 모든 세부 성범죄 기준에 포함되어 있고, 집행유예 기준에도 포함되어 있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반성을 보여주면, 양정 과정에서 1차 형량이 감소하고, 이 반성의 내용으로 집행유예 선고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형법의 이중평가금지 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지한 반성'이 형을 깎아주는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짚고 가야 할 내용이 있다. 첫째, 법관은 진지한 반성과 진지하지 않은 반성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둘째, 법관은 반성이라는 인간 내면의 심리작용을 판단하는 전문성을 갖추었는가? 셋째, 반성한다고 봐주는 것이 과연 근본적으로 옳은가?라는 점이다. 진지한 반성과 그렇지 못한 반성을 어떻게 구분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판결 관행은 공탁금이나, 합의금의 액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이는 유전무죄의 현실을 대놓고 보여준다. 법관의 전문성은 반성의 진지함이나 진실성을 판단하는 그것과 거리감이 있기에 비전문가의 판단이 재판의 중요 요인이 되어서도 안 된다. 더욱이 제출된 반성문이 대필 여부도 확인되지 않은 반성문이고, 반성으로 인해 피해자의 용서를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법관이 형량을 감해주거나 집행유예의 판단기준으로 고려하는 것은 그야말로 피해자에 대한 사법부의 월권 행사이다. 더욱이 범죄자가 보여주는 반성은 기특하여 감경해줄 사안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하지 않는 범죄자는 더 가중하여 처벌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옳다.
때때로 재판부는 반성하지 않는 피고인을 더욱 위험한 범죄자로 여기고 재범 위험성의 맥락에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위험한가와, 어떻게 반성하게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교화시킬 것인가 문제는 재판 이후의 전문가들의 영역이다. 반성이 위험성의 척도가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진지함이라는 주관적 평가와 반성이라는 내면적 감정의 작용을 본인이 정확히 평가할 수 없다면 이는 과감히 법관의 판단영역이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자기소개서조차도 진실성을 검증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법원 제출용에 지나지 않는 진실하지 않은 반성, 피해자의 용서 없는 반성을 제3자가 호혜적으로 봐주는 월권은 이제 멈춰야 한다.
박미랑 한남대 경찰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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