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한국의 포퓰리즘, 어떻게 해결하나

2022. 1. 11.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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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한국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시기는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들을 야당들이 비판하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포퓰리즘은 정책이나 공약 혹은 정치적 공방의 수단이 아닌 통치 스타일과 변혁운동으로 정의된다.

먼저 포퓰리즘은 통치 스타일로서 정당이나 의회를 우회하여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하고 정부의 정책을 추진하는 리더십의 한 변형이다. 대표적 사례로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는 'Alo Presidente (Hello, Mr. President)'라는 TV토크쇼를 진행하면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의 처지와 어려움을 직접 듣고 자신이 장관이나 관계자들에게 지시하면서 '차베스주의'를 하나의 종교로 만들었다.

다음으로 포퓰리즘은 기성정치나 엘리트 중심주의에 도전하는 변혁운동으로서 그 주체는 주로 주변부 정당이나 정치세력들이다. 포퓰리즘 정당들은 기성정치의 엘리트와 국민을 대립시키면서 전자가 후자를 버렸다는 선동을 통해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운동으로서 유럽의 극우정당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요컨대 포퓰리즘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러나 포퓰리즘은 국민들의 삶이 어려워질 때 등장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의 도전이 정치과정에 수용될 경우 오히려 자유민주주의의 문제를 개선하고 정치적 활력을 줄 수도 있다.

특히 자유와 법치, 그리고 권력제한의 원칙들이 깊이 뿌리내린 서구에서 포퓰리즘의 도전은 기성정당들이 사회문제 해결에 나서고 포퓰리즘 정당들이 민주적 규범을 수용할 경우 서서히 정상화될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법치의 전통이 부족한 비서구권에서 포퓰리즘 세력이 집권할 경우 자유민주주의의 죽음과 독재의 등장은 불가피하다. 이제 자유와 민주주의의 안전지대는 없어진 반면, 포퓰리즘과 권위주의의 도전이 거세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어떠한 양상을 보일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국에서 통치 스타일로서의 포퓰리즘은 지속될 것이고, 주변 세력들의 변혁운동으로서의 포퓰리즘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먼저 통치 스타일로서의 포퓰리즘이 지속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역사적으로 한국은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달리 자유주의 관행과 제도를 정착시키지 못한 상태에서 국민 참여를 확대한 정치발전의 경로를 따라왔다. 한국정치의 대중주의적 속성은 1987년 헌법개정에서도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제외하고는 큰 변화가 없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적 통치 스타일은 현재 지도자들에게 그대로 나타난다.

둘째, 제도적으로 한국의 대통령제는 제왕적인 요소가 서구에 비해 강하다. 대통령의 권력은 아래로 지방정부에 미치기 때문에 한국에서 대통령을 향해 소용돌이치는 정치의 양상은 제왕적 대통령제와 조응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인들은 자유주의적 지도자보다는 포퓰리즘적 리더십을 기대할 문화적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나아가 최근 인터넷과 정보통신의 발달은 한국인들의 국민우선주의적 특성들에 조급함을 더하고 정치를 즉흥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세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제한해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마치 군주처럼 행동한다. 대통령의 강력한 권한을 정치인들은 물론 국민들도 모르지 않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청와대에 호소하고 청와대 권력에 편승하다가, 임기 말에는 대통령을 버리고 대통령이 한 일은 물론 하지 않은 일들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곤 한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 대통령은 법 아래 시민의 한 사람으로 공직에 봉사하다가 자연인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운명에 처해 있다. 한국정치에서 민주화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대통령은 재임 이후 평안한 삶을 영위하지 못하였다. 포퓰리즘적 기대를 받더라도 대통령의 권한과 책임이 대폭 제한된다면, 포퓰리즘 스타일을 가진 한국정치와 대통령들의 불행은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으론 많이 늦었지만, 정치인들과 시민들에 대한 자유주의적 시민교육을 대대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한국에서 정치인들이나 시민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필요성에 공감하지 못한다. 여당인 민주당은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적일 필요가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고, 야당인 국민의힘은 경제 외 분야에서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이제 민중의 시대에서 시민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교육개혁이 필요한 때다.

마지막으로 포퓰리즘의 세계적 도전은 신자유주의 이후 불평등이 커지고 중산층의 삶이 어려워지는 현상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한국의 불평등은 OECD 국가들 중 가계금융복지조사 기준으로 멕시코, 칠레, 터키, 미국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고, 역사적으로 개발독재 시기에 비해 민주화 이후 불평등이 악화되는 양상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인들 중 일부는 권위주의와 포퓰리즘적 해결방식을 그리워한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개선과 중산층의 복원은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포퓰리즘의 도전을 막는 수단이 될 것이다.

<원문=동아시아재단 정책논쟁 제1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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