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칼럼] 자유방임이 아니라 자율이다
박태균 |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한국은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고도 성장을 통해 추격국가로서의 성공적인 사례를 기록했다. 그러나 성장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세차례에 걸친 심각한 위기를 거쳤다.
성장의 초기 과정에서 기업의 수출 능력 극대화를 위해 노력한 것은 1960년대 부실기업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정부는 1972년 8·3 조치를 통해 기업의 사채를 동결하고 산업합리화 자금을 방출했으나, 1차 오일쇼크와 맞물리면서 1970년대 내내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이중가격제의 왜곡된 시장을 방치해야 했다. 두번째 위기는 1970년대 말에 왔다. 외견상 2차 오일쇼크에 의한 위기로 보였지만, 실제 한국 정부는 그 이전인 1978년 위기 상황을 발견하였고, 한국은행과 한국개발연구원(KDI), 그리고 경제과학심의위원회를 통해 해결책 마련을 지시하였다. 이 위기는 1979년의 경제안정화 종합시책, 그리고 1980년대 3저호황에 의해 미봉되었다. 세번째 위기는 1997년이었다. 민주화와 경제자유화로 인해 기업의 국외 진출이 늘었고, 기업에 대한 정부의 압력과 시장 왜곡이 줄어들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가 축소된 상황에서 기업들의 지나친 단기 상업차관의 도입, 일부 기업의 무리한 운영으로 한국 경제 전체가 부도의 위기를 맞았고,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찾아왔다.
세차례 위기의 공통점은 무엇이었을까? 민주화 이전 위기의 원인은 정부의 지나친 개입이었다. 1960년대 정부는 수출드라이브를 밀어붙였고, 1970년대에는 중화학공업에 대한 무제한적인 보조금을 지급하였다. 그 결과 시장은 왜곡되었고, 기업의 경쟁력은 떨어졌다. 둘째로 기업가들의 도덕적 해이였다. 1970년 부실기업이 늘어나면서 청와대는 기업의 부동산 투기를 조사했다. 그리고 일부 기업인이 자신의 회사에 차명으로 사채를 빌려주는 위장사채를 발견했다. 1980년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외채위기의 상황에서 언론들은 대기업의 부동산 투기에 주목했다. 중동 건설 붐과 종합상사로 번 돈이 어디로 흘러 들어갔는가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사건과 같은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나친 개입과 기업가들의 도덕적 해이의 문제는 ‘자율’의 부재로부터 발생했다. 경제개발 시대에는 자율이라는 것이 아예 없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의 개입이 줄어들었지만, 기업들은 공정경쟁의 시장원칙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규율을 만들지 못했다.
고등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의 고등교육은 이제 단지 다른 나라의 것을 배우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혁신과 창의적인 내용을 만들어내야 하는 순간에 다다라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창의적인 고등교육의 필요성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 추진했던 것이 국립대학 법인화였다. 고등교육에서 창의와 혁신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업과 마찬가지로 자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자가 창의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자유, 학생들이 각자 장점을 찾아 스스로 개발해나갈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고등교육기관의 연구자들은 연구윤리를 스스로의 규율을 갖고 지켜나가야 한다. 시장에서 기업의 공정경쟁이 필요하듯, 연구에도 혁신적 연구의 공정경쟁을 위해서는 연구윤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권위주의 시대에서 한발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연구 과정에서 정부와 관계부처의 개입과 규제가 창의적 연구를 가로막고 있다. 연구뿐만 아니라 교육에서도 학문 분야에 따른 특수성보다는 공정이라는 명분하에 획일적인 평가의 규정이 적용될 뿐이다. 한국 고등학생의 수준이 세계 최고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과 세계 일류 대학의 졸업생들을 비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물론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자율성 여부에 따라 연구와 교육에는 당연히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주화 이후에도 자율성 부여 대신 많은 규제가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은 어쩌면 기업인과 연구자들이 스스로 초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업인과 연구자를 끊임없이 규제한다면, 혁신성과 창의성은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자유방임이 아니라 자율이다. 20년이 넘도록 새롭게 주목받는 세계적 대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세계 10위권의 대학이 한곳도 없는 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혁신적 프로젝트와 창업이 규제에 가로막혀 고등교육기관으로부터 떠나는 연구자들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도록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내일 코로나 ‘먹는 치료제’ 투약 계획 발표…이르면 14일 처방
- 정용진 ‘멸공의 입’, 소비자도 갈라치기…불매-구매운동 번져
- 안철수 “단일화 관심없다” 완주 의지…‘공동정부론’도 일축
- “‘만인의 엄마’로 살아준 엄마 감사해요”…배은심 여사 눈물의 영결식
- [영상] 광주서 아파트 신축공사 중 외벽 붕괴…1명 부상·6명 소재 파악 안돼
- [아침 햇발] ‘여가부 해체’와 ‘멸공’이 말하지 않은 것 / 안영춘
- “누가 ‘멸공’ 기획했나” 묻자 윤석열 “난 정치 컨설턴트 아냐”
-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혐의 직원 아버지 파주서 숨진 채 발견
- [포토] 체감온도 -15도…선별진료소에 ‘고드름 커튼’ 펼쳐지다
- “북한, 오늘 ‘마하 10’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한듯…엿새 전과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