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석의 건강수명 연장하기] 닥터 마셜과 위궤양 원인균
1982년 봄 호주의 30세 내과 레지던트인 '배리 마셜'은 위염이나 위궤양 환자를 치료해도 그 중 절반가량이 6개월 이내에 재발하고, 95퍼센트가 2년 이내에 재발한다는 점에 의문을 품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당시만 해도 술, 담배, 자극적인 음식 등으로 인해 위산 분비가 증가하는 것이 유일한 위염, 위궤양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No acid, no ulcer(위산이 없으면 위궤양도 없다)"라는 말을 의사들은 신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배리 마셜은 같은 생활 패턴을 가지고 있는 환자 중에서 일부만이 반복적으로 위염, 위궤양을 앓는 것을 보고 위산과다 외의 다른 요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근무 시간이 끝난 후에 병원에 남아 위궤양으로 수술 받은 환자의 조직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수십 마리의 나선형 박테리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깜짝 놀란 마셜은 지난 100년간 발표된 기사와 논문을 검색했고, 뜻밖에도 1893년 이미 위장 속에 사는 박테리아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또한 1940년에 발표된 논문에서 의사처방 없이도 흔하게 살 수 있는 항생제인 비스무스가 일부 궤양 환자에 효과가 있다는 내용을 발견하였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마샬은 후에 '헬리코박터 파이로리'라고 불리게 되는 균을 배양하여 항생제인 비스무스를 실험실에서 투여한 결과 박테리아가 모두 죽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환자에게 비스무스와 또 다른 항생제인 메트로니다졸을 처방함으로써 원하는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물론 지금은 훨씬 좋은 약들로 치료하고 있다).
이 내용을 학회에 보고했을 때, 첫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너무나 파격적인 이론이어서 많은 의사들이 믿지 못했고, 따라서 마셜은 임상실험에 들어갈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결국 마셜은 내시경 검사로 자신의 위에 균이 없음을 확인한 후, 환자에게서 채취한 균과 배양액을 마셨다. 5일 후 구역질과 구토를 하였고, 10일 후 시행한 내시경에서 위염이 관찰되었다. 마셜은 그 후의 연구에서 위산 농도가 같아도 헬리코박터균이 위점막의 방어능력을 파괴시키므로 쉽게 위염과 위궤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덕분에 위염과 위궤양은 과도한 위산이 위점막을 공격하는 공격인자 외에 위점막에서 위산을 방어하는 능력을 파괴시키는 헬리코박터가 같이 작용하는 것으로 개념이 바뀌게 되었고, 마셜은 그 공을 인정받아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8년 조사에서 증상이 없는 16세 이상 성인의 66.9%에서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되었으나, 2005년 59.6%, 2013년 54.4%로 완만하게 감소추세에 있다. 초기에는 증상이 없어도 예방 목적으로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하였다. 하지만 그 후 이 균에 감염됐어도 증상이 없는 환자도 적지 않아 혼선이 빚어졌다. 지속적인 연구 결과, 같은 헬리코박터균이더라도 그 종류(subtype)에 따라 독성물질인 CagA를 분비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노벨상 위원회도 헬리코박터균의 종류가 다양하고 개인간에 유전적 차이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지금은 증상이 있는 환자에서 균이 발견됐을 때만 적극적으로 치료를 하도록 기준이 설정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에서 이 균을 방치하면 쉽게 위염, 위궤양을 거쳐 위암이 발생할 확률이 3~6배 증가하기 때문에 1994년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헬리코박터균을 1급 발암물질로 분류하였다. 감염 경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환자의 가족 역시 감염률이 높은 것으로 미루어 입이나 같은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우물물이나 비위생적인 식수를 공급받는 지역에서 감염률이 증가하기 때문에 분변을 통해서도 전염이 되는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진단 방법은 내시경을 하면서 조직검사를 하여 직접 확인하는 방법과 혈액 검사를 통해 균에 대한 항체를 확인하는 방법, 그리고 내쉰 숨을 모아 검사하는 요소호기 검사(UBT)가 있다. 대개는 1주일 정도 약을 복용하면 치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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