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연아 퀸처럼..꿈의 무대로 향하는 유영·김예림
엄마 졸라 피겨 제대로 하려 한국으로
그랑프리·4대륙 활약 속 1위로 올림픽 티켓
주니어 그랑프리 연속 은메달로 주목 받던
'연아키즈' 김예림도 부상 악재 딛고 베이징행
동계 올림픽의 꽃은 피겨스케이팅이다. 김연아는 2010년 2월 캐나다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그 아름다움의 정점을 찍었다. 그녀의 매혹적인 연기에 이끌려 수많은 '연아 키즈'들은 빙판에 첫발을 내디뎠다. 유영(18·수리고)과 김예림(19·수리고)은 이제 꿈의 무대로 향한다. TV 속 김연아를 보고 '피겨 여왕'을 꿈꾼 지 12년 만이다.
유영은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1살 때 건너간 싱가포르에서 김연아의 밴쿠버 동계올림픽 연기를 지켜본 뒤 피겨에 반하게 됐다. 어머니를 졸라 그해 5월부터 스케이트화를 신었고, 결국 제대로 피겨를 배우기 위해 어머니와 2012년 겨울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어도 몰랐고 문화적으로도 낯설었지만 피겨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다. 차근차근 성장해간 유영은 초등학생이던 2016년 전국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 11세 8개월의 나이로 우승, 김연아의 최연소 우승 기록(12세 6개월)을 넘어서며 '신동' 소리를 들었다.
나이 제한에 걸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나가진 못했지만 포스트 김연아로 주목을 받았고, 시니어 대회에도 화려하게 데뷔했다. 2019~20시즌 ISU 시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에서 한국 여자 싱글 역대 두 번째로 높은 217.49점을 받으며 평창 은메달리스트 예브게니아 메드베데바(러시아)를 제치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지난해 2월엔 국내에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차지하며 김연아 이후 11년 만에 4대륙선수권 메달 획득에 성공했다.
유영은 트리플 악셀이 주무기다. 3회전 반을 도는 이 점프를 구사하는 국내 여자 선수는 유영이 유일하다. 지난 9일 경기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 끝난 제76회 전국남녀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겸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도 안정적인 트리플 악셀을 앞세워 1위로 베이징 티켓을 거머쥐었다. 유영은 "과거엔 약간 불안정했지만 지금은 느낌을 찾은 것 같다"며 "이 느낌을 올림픽까지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유영보다 한 살 많은 김예림도 김연아의 밴쿠버 연기를 보고 피겨를 시작했다. 그전까진 얼음 위에서 안무하는 종목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지만 순식간에 피겨에 빠져들었고 연아 키즈 사이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뽐냈다. 2018~19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2연속 은메달을 따냈고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파이널에 진출했다. 유영, 임은수와 함께 '여자 피겨 트로이카'로 불렸다. 지난해 초에는 국내 대회인 회장배 랭킹대회와 종합선수권대회 우승을 휩쓸었다.
2차 선발전 최종일 전날부터 사실상 베이징 진출이 확정됐던 유영과 달리, 김예림은 불안한 상황이었다. 대회 직전 부상을 당했는데 쇼트프로그램에서 실수로 점수도 내려앉았다. 프리프로그램을 마친 김예림은 결국 경기장을 벗어나기도 전에 눈물을 쏟았다. 그는 대회를 마친 뒤 "이번 경기를 준비하는 과정이 굉장히 좋았는데, 금요일에 허리를 삐끗하면서 시합 자체를 할 수 없을지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 됐다. 다행히 진통제를 여러 군데 맞고 참가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경기가 끝나자마자 운 건 처음인데 제가 제 자신에게 조금 감격했던 거 같다"며 웃어 보였다.
김연아의 연기에 반해 피겨를 시작했던 유영과 김예림은 이제 나란히 그 꿈의 무대로 향한다. 김예림은 "진짜 꿈에만 그리던 올림픽을 정말 나가게 된 게 지금 너무 설렌다. 잘 안 믿기기도 하다"며 "무조건 쇼트와 프리에서 클린을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유영은 "정말 믿기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자리인 만큼 더 열심 준비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렸으면 좋겠다"며 "큰 무대라는 생각에 긴장될 것 같지만 꿈의 무대인 만큼 최선을 다해서 즐기고 싶다. 꼭 실수하지 않고 클린하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고 다짐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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