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국립대와 학점교류 확대..지방소멸 막는것도 서울대가 할일
4차산업혁명시대 융합인재 필요
AI 분야 겸직 허용 교수로 특채
융합교양으로 전공 칸막이 없애
대학도 기업과 연계해 변화해야
서울대 문화관 재건립 통해
K팝·한류 등에 큰 기여할 것
■ 대담 = 김기철 부장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술 변화가 특히 빠르다"며 "기존의 지식을 외우는 능력보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남과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지역과 상생하는 것이 서울대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방 대학들이 유례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만큼 상생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팬데믹을 겪으면 교육의 변화가 가장 컸다. 코로나19는 대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면서 대학의 고민도 깊어졌다. 온라인으로 하버드대 MBA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과연 서울대 MBA를 듣는 사람이 있을까 같은 고민이다. 서울대도 코로나19를 계기로 'SAP(Study Abroad Program)' 같은 것을 시도했다. 미국 대학의 좋은 강의를 온라인으로 수강하면 학점을 인정해주는 제도인데 학생들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는 지난해 '온라인 국제하계강좌'로 확장되었다.
1997년 인터넷 강의가 처음 시작됐을 때 피터 드러커는 대학은 이제 망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은 망하지 않았다. 대학의 기능은 단지 지식의 전수에만 있지 않다. 교수나 친구들과 교류하고 논쟁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또 대학의 역할이 처음에는 교육에 있다며 연구를 중심으로 전개됐지만, 이제는 지역사회와의 상생, 지역사회의 허브 역할도 요구받고 있다. 이런 것은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특히 서울대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을 넘어서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데.
▷지방 소멸이 한국 사회의 당면 문제 중 하나인데 이 문제 해법 중 하나로 지역 거점대학 역할론이 대두되고 있다. 서울대가 지방 거점대와 상생하는 방안을 통해 역할을 할 수 있다. 지방 거점 국립대들이 수도권 사립대와 경쟁할 수 있도록 서울대가 적극 협력해야 한다. 학점 교류가 한 방법이다. 현재 지방 거점대학에서 서울대 여름학기를 들을 수 있게 만들어놓았다. 지역 학생들이 수도권 대학에 가는 것보다 거점대학에 가는 게 낫다고 느끼면 그 대학들이 살아날 것이다. 지금은 학점 교류만 하지만 한 학기 정도 서울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거점대학과 협의해 교류를 확대하고자 한다. 서울대 학부 인원 감축도 장기 발전 계획에서 논의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인데 전공 간 벽으로 대학이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사회 수요에 유연하게 맞춰 필요한 인재를 배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미 현재 전체 학생 중 30%는 복수전공 혹은 부전공을 하고 있는데 이를 50~6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이러면 학생들이 어느 전공으로 들어오더라도 다른 전공과 융합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문과로 입학해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하면 AI를 국어에 접목하는 식의 접근이 가능해진다. 점점 이런 융합 인재가 필요해지는 사회가 되고 있다. 컴퓨터공학과는 현재 3학년 정원의 1배까지만 복수·부전공 학생을 뽑을 수 있는데 정원의 2배까지 뽑을 수 있도록 규정을 개정하고 있다. 일부 과목에 최소한의 필요 인력을 배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교수를 데리고 오는 것도 중요할 듯한데.
▷교수 시스템도 유연하게 만들었다. 제도를 바꿔 현장에서 현직으로 일하는 분들도 서울대 교수 겸직이 가능하도록 했다. 지난해 새로 온 데이터사이언스 분야의 교수 한 분은 현재 구글에서 연구원을 겸직하고 있다. 낮에는 서울대 교수로 일하고, 밤에는 구글 연구원으로 활동하는 식이다. AI 분야는 겸직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학위를 딴 지 4~5년 지난 젊은 박사들은 실리콘밸리에 가면 연봉이 4억~5억원에 달하는데 학교에 오려고 하지를 않는다. 이에 정원 1% 내 교수에 한해 겸직을 허용하고 있다.
―교육 방법도 바뀌어야 하지 않나.
▷2019년 2월 총장 취임 후 교양과목 중 융합강좌를 만들었다. 하나의 주제와 관련된 서로 다른 분야의 교수 3명이 들어가는 형태다. 예를 들어 생명이라는 주제에 대해 자연과학, 사회, 철학 등 분야의 교수가 모여 수업을 만든다. 서로 다른 관점을 배우면서 융합이 가능하도록 하는 취지다. 지금까지 대학 교육 시스템은 산업화 모델이었지만 이제는 대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을 할 거다 하면 거기에 필요한 기술만 가르쳐 내보냈다. 이제는 대학도 기업과 밀접하게 연계해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아야 한다.
―서울대의 이미지는 재미없고 구태의연하다는 것인데 방시혁이나 황동혁('오징어 게임' 감독) 등은 예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교육을 잘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고(웃음), 능력 있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것인데 학교가 할 역할은 그 싹을 자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대학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요즘 한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고 문화의 힘이 굉장히 중요해졌는데 서울대는 너무 엄숙해서 그런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최근 이주용 KCC정보통신 회장이 서울대에 100억원을 기부했는데 그 돈이 문화관 재건립에 쓰일 예정이다. 문화관에는 도전적인 예술 작품을 기획할 수 있는 블랙박스형 공연장을 짓는다. 끼가 있는 학생들은 거기서 공연을 할 수 있다. 문화관이 새로 들어서면서 지역 거점 역할도 맡게 된다. 관악구에 문화시설이 거의 없다 보니 서울대가 지역의 문화 인프라스트럭처 역할을 할 생각이다. 이 회장의 뜻으로 울산 종하체육관도 문화복합공간으로 탈바꿈할 예정인데 그곳과 콘텐츠 교류를 해나갈 예정이다. 이렇게 하면 지역 상생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작년 법인화 10년 성과 아쉬워
지주회사 통해 재정자립 할 것
▷법인화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재정 자립인데 만족할 만큼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서울대가 작년 2월 지주회사 SNU홀딩스를 설립했는데 이를 통해 재정 자립을 이루려고 한다. 교수들의 지식재산권을 이용하거나 서울대 구성원에게 창업을 장려해 여기에 지분 투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기획창업제도를 시행 중인데 교수들이 출원한 특허를 보고 사업이 될 것 같으면 교수를 찾아가 창업을 권고하고 지분 투자를 하는 식이다.
중국 칭화대의 지주회사인 칭화홀딩스가 이런 방식으로 운영되는데 이미 자산이 수십조 원에 달하고 매년 얻는 배당금 수익만 5000억원 정도다. SNU홀딩스도 이런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학생들 창업도 활발해졌다. 교내 창업경진 대회인 '비더로켓'이 지난해 6회째를 맞았다. 비더로켓 1기 대상팀인 '수아랩'은 지난해 나스닥 상장사가 약 2000억원에 사 갔다.
―시흥캠퍼스 사업은 얼마나 진행되고 있는지.
▷원래 국제캠퍼스로 디자인됐지만 학생들이 1학년 의무 거주에 반발하면서 안 보내기로 했고 연구실로는 벌써 많이 활용되고 있다.
관악캠퍼스가 포화돼 넓은 공간이 필요한 연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옮겨 갔다. 대표적으로 자율주행차, 드론 등이 갔고 배를 만들 때 물탱크가 필요한 기술 연구도 시흥에서 진행된다. 병원이랑 치과도 설립될 예정이다. 희귀병, 난치병 치료를 연구하는 연구 중심 병원이다. 그 주위에는 바이오메디컬 벤처가 올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뒀다.
또 연수원 시설을 마련해둬서 국제학생들이 한국어 등을 배우러 온다. 교통망은 셔틀이 있고 관악캠퍼스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경치도 좋다. 특히 서울대와 공동연구를 하고자 하는 기업들의 관심이 많다. 실제 자율주행차, 드론은 컨소시엄을 만들어 진행 중이다.
▶▶오 총장은…
△1953년 2월 서울 출생 △서울대 물리학 학사 △스탠퍼드대 물리학 박사 △미국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학장 △제20대 국회의원 △제27대 서울대 총장
[정리 = 문가영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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