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사업장 옮기려면 사업주 허락 필요할까 [법알못 판례 읽기]

2022. 1. 11.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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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7 대 2로 '합헌' 결정
"직장 선택의 자유 침해" 소수 의견 눈길

[법알못 판례 읽기] 

민주노총·이주노조·이주노동자평등연대 회원들과 이주노동자들이 2021년 4월 25일 서울 청계천 전태일다리 앞에서 ‘2021 세계 노동절 이주 노동자 메이데이 행진’을 열고 한국 이주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동 자유 보장 등을 촉구하며 청계천길을 따라 행진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많은 국민의 경제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소상공인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로 영업에 제한을 받아 타격을 입었다.

농어촌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농어촌에는 항상 일손이 부족한데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노동자 입국이 줄어들어 극심한 인력난을 겪게 된 것이다. 특히 최장 5개월간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는 계절노동자는 2020년 단 한 명도 한국에 입국하지 못했다. 2021년에도 6000여 명의 예정자 중 542명만 입국했다.

이처럼 한국의 노동 시장이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법적 지위를 인정해 주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헌법재판소에선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업장 변경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외국인고용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리며 다시 한 번 논란이 일고 있다.


 

 사업장 변경 시 고용주 허락 맡아야 하는 ‘고용허가제’

한국의 외국인고용법이 채택한 ‘고용허가제’는 내국인 사용자에게 고용을 허가하는 제도다. 이와 반대되는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국 취업을 허가하는 ‘노동허가제’가 있다.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에 대한 규율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외국인 노동자 본인에 대한 검증은 노동허가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문제 삼는 조항은 바로 고용허가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외국인고용법 제25조다. 해당 법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들은 사업장 변경 시 고용주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일터 이동도 체류 기간 동안 총 3회를 초과할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 단체인 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하 ‘이주노조’)과 여러 시민 단체는 2021년 해당 법안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외국인 노동자 A 씨가 사용자의 일방적 노동 시간 변경, 연장 노동 수당 미지급, 기숙사비 추가 공제, 협박성 발언, 보호 장구 미지급 등을 이유로 사업장을 변경하려고 했지만 외국인고용법이 이 같은 사유는 사업장 변경 사유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주노조 측은 “이러한 조항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사업장을 바꾸겠다고 하면 사장들이 수백만원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고 호소했다. 시민 단체 역시 “한국 정부는 현대판 노예 제도인 고용허가제를 짧게는 3년, 길게는 9년 8개월간 한 사용자를 떠나지 못하도록 묶어 놓고 있다”며 “‘노동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에 해당하면 사용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고용 관계를 끝낼 수 있지만 이마저도 입증하기가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런 조항이 인종차별철폐협약·국제노동기구(ILO)협약 등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노동자의 책임이 없는 사유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부당한 이유로 산업 재해 처리를 받지 못했을 때 혹은 사업장 안에서 폭행 및 성폭력 등에 노출됐을 때를 말한다.


코로나19 사태의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인 오미크론 확진자 추가 유입을 막기 위해 모든 입국자에 대한 격리 조치가 시작된 2021년 12월 3일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에서 베트남 해외 노동자들이 경기도 고양의 자가 격리 시설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재 7 대 2 합헌 결정…“사용자 인력 안정적 확보에 필요”

헌재는 2021년 12월 23일 A 씨 등이 청구한 헌법소원심판 사건에 대해 재판관 7 대 2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헌재는 2011년 외국인 노동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3회로 제한한 것이 합헌이라고 판단한 적이 있지만 직접적으로 고용허가제에 대한 위헌성 판단을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헌재는 외국인 고용 허가를 받은 사용자가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외국인 노동자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사업장 변경 사유를 제한하는 것은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사유 제한 조항은 중소기업 등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 노동자의 고용 기회나 노동 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청구인들의 의견에 대해 “헌법상 ‘근로의 권리’에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갖춘 사업장을 이탈하거나 이직해 개인이 스스로 노동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보장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사업장 변경을 제한하고 현재의 일터에서 계속 일하도록 강제한다고 해서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사유를 정한 고용노동부 고시가 더 구체적인 사정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고용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용자의 부당한 처우는 다양한데 이를 법률에 일일이 규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이석태·김기영 헌법재판관은 현행 법령이 A 씨 등의 직장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기에 현저히 부족하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와 내국인 노동자는 경쟁 관계가 아닌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관계”라며 “내국인 노동자를 구할 수 없는 사업장으로만 이직이 가능한 외국인 노동자의 사업자 변경을 제한함으로써 내국인의 고용을 보호한다는 것은 합리성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조항 외에도 사업장 변경을 억제하고 장기 노동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 제도를 두고 있어 고용허가제의 취지와 목적을 해할 정도로 잦은 변경이 일어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유 제한 조항이 원칙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의사에 따른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예외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하는 것은 직장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돋보기]

 

 불법 체류자 파견받았다가 기소된 업체 대표 ‘무죄’

인력 파견업에서 불법 체류 외국인을 파견받아 썼다면 기업 대표는 어떤 처벌을 받을까. 대법원에선 파견법상 사용자로 볼 수는 있지만 직접 고용한 고용주로는 볼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2020년 6월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출입국관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모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플라스틱 제조업체 대표인 이 씨는 2015년 인력 파견 업체와 계약하고 불법 체류자 외국인 40명을 파견받아 일을 시켰다. 이에 검찰은 이 씨가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했다며 기소했다.

출입국관리법 제18조 등은 취업 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갖지 않은 외국인을 고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면서 이를 위반한 고용주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재판부는 “이 씨는 인력 파견 업체로부터 필요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공급받았을 뿐 이들을 직접 고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사용 사업주가 노동자 파견 계약을 체결하고 파견 사업주로부터 그에게 고용된 외국인을 파견받아 자신을 위한 노동에 종사하게 한 경우 이를 출입국관리법이 금지하는 고용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파견법은 노동자 파견 계약에 따라 파견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를 사용 사업주라고 정의하고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중 일부 규정을 적용할 때는 사용 사업주를 사용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출입국관리법 적용에 관해서는 그와 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부연 설명했다.

또한 “형벌 법규의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며 “문언의 가능한 의미를 벗어나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 해석 금지에 따라 허용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1·2심도 “A 씨가 외국인 노동자들과 직접 노동 계약을 한 것은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오현아 한국경제 기자 5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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