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노동이사제 국회 통과.."지위·권한 보장없인 투명인간 전락" 비판도

이혜리 기자 2022. 1. 11. 17:2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노동이사제 법안(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공공기관 이사회에 노동이사를 넣도록 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1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에 이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까지 찬성 입장을 밝히면서 국회 처리가 급물살을 탔다. 노동이사는 공공기관 경영에 노동자가 참여한다는 의미가 있지만, 이사회 내에서 극소수이기 때문에 지위와 권한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날 국회가 본회의에서 의결한 법안은 공공기관 이사회가 노동이사 1명을 반드시 선임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2020년 11월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법 개정을 국회에 건의했다.

노동계에서는 기본적으로 제도 취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노사의 협력과 상생을 촉진하고 경영 투명성과 공익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다. 그간 노동이사제 도입을 강하게 촉구해왔던 한국노총은 “법안의 본회의 통과를 환영한다”며 “이명박 정부의 해외자원개발과 박근혜 정부의 성과퇴출제 등 밀실에서 깜깜이로 진행돼온 공공기관 운영의 심각한 부작용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를 ‘중요한 출발’이라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이사제는 공공기관이 어떻게 운영되도록 할 것인가의 점에서 변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의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개입하고 통제하는 상황에서 공공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민주성을 달성해내는 과정 중에 노동이사제가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는 공식 입장을 내지 않는 등 상대적으로 조용한 분위기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공공기관 경영이 얼마나 바뀔 것인지에 관해서는 부정적인 전망도 나온다. 현재 지방 공기업 70여곳에서 100여명의 노동이사가 이미 활동 중인데, 십 수명의 이사회 구성원 중 노동이사는 단 1명으로 극소수인데다 비상임이기 때문에 지위와 권한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사회에서 안건을 부의할 권한은 없고 발언권 정도가 있을 뿐이라 자칫하면 ‘거수기’ 노릇에 그칠 수도 있다. 이재복 서울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제 도입으로 이사회에서 심층적인 논의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보다 투명해진 부분은 있다”며 “비상임이사이기 때문에 정보접근 등 경영참여에 한계가 있는 것도 맞다”고 했다.

특히 노동이사가 되려면 노동조합 조합원을 탈퇴해야 하는지가 쟁점이 된다. 현재 지방 공기업들의 노동이사는 탈퇴를 전제로 운영되고 있지만, 탈퇴하지 않는 게 외국 입법례다. 이번 법안엔 탈퇴 여부가 명시적으로 규정돼있지는 않다. 또 지방 공기업들이 노동자들의 직선제 투표를 통해 노동이사를 선출하는 데 반해, 이번 법안은 노동조합 추천이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은 사람으로 하게끔 돼있다.

경영진과 대등한 힘을 갖지도 못하고, 노동조합·노동자와 괴리된 노동이사가 양쪽에서 ‘고립’된 존재가 되면서 제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는 지적도 있다. 김태진 부산교통공사 노동이사는 노동이사를 가리켜 ‘투명인간’이라는 표현을 썼다. 김 노동이사는 “노동이사제가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활동 지원이나 제도상 지위가 보장돼야 한다”며 “직원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지원도 없기 때문에 사실상 노동이사가 개인플레이로 돌파해야 하는데 굉장히 힘들다”고 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이사 1명이 이사회에 들어간다고 해서 모든 게 바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은 문제”라며 “노동이사제가 도입되면서 오히려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 폭이 줄어든 측면도 있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노동이사제에서 나아가 기획재정부 중심의 공공기관 지배구조 개편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1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새해 첫 본회의에서 노동이사제 법안(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지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간 부문 확산은 남은 과제다. 문 대통령 대선 공약집에는 ‘공공부문부터 노동이사제 도입하고 민간기업으로 확산’이라고 돼있지만 경영계는 이를 반대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도입될 경우 한국 시장경제에 큰 충격과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향후 민간기업 확대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중앙회도 “노동이사제가 민간기업에 도입될 경우 경영상 의사결정의 신속성과 전문성을 저해하는 등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므로 민간에 확대되면 안 된다”고 했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6일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민간 확산 우려가 있는데, 공공기관의 정착 상황을 보면서 진행되지 않겠나 생각한다”며 “확산을 의무적으로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