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장관 "한국 원전이 EU 기준 만족할 수 있나"..업계 주장 반박
[경향신문]
국내 녹색분류체계 포함 논란에
“한국, EU 기준 만족 어려울 듯”
재생에너지 발전 분야 투자 강조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원자력 업계 등 일각에서 나오는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유럽연합(EU)이 원전을 포함하는 녹색분류체계 초안을 낸 것이 알려진 계기로 국내에서도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해야 한다는 논란이 일자, 환경부가 원자력을 분류체계에서 제외한 이유를 다시 밝힌 것이다.
한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EU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이 들어간 것을 “한시적이고, 조건을 덕지덕지 붙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한국 원전에 EU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했다.
EU는 지난해 말 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한 초안을 회원국에 보냈다. 녹색분류체계는 투자자들이 무엇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산업인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이 초안에서는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기한을 2040년까지로 정하고, 신규 원전은 2045년까지 건설허가를 받은 원전만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2050년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건설·운용할 부지·비용에 대한 계획이 있고, 높은 안전 규정을 적용한 원전만 포함하기로 했다. 원전을 녹색 에너지로 분류하면서도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 것이다.
한 장관은 EU 녹색분류체계에서 제시한 원전 기준을 국내 원전이 만족하기 어렵다고 봤다. 한국은 경북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가동하고 있으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은 부지 선정조차 못한 채 원전 내부에 보관중인 상태다. 지난달 정부는 ‘제2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의결하며 최종 처리시설을 확보하기 전까지 고준위 핵폐기물을 원전 부지 안에 계속 보관하기로 했다. 한 장관은 “우리도 고준위 폐기물은 장소를 찾지 못해서 원전 부지 안에 보관하는 상태”라며 “EU와 같은 조건을 한다고 하면 가능하긴 한 건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녹색 분류체계에서 제외되면 원자력에 대한 투자가 위축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완전히 투자를 못 하는 것처럼 오도하는 경향은 위험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장관은 “지금도 원전은 수출을 하고 있고, 수출 원전에 대한 투자를 막고 있지 않다”며 “녹색 분류체계는 녹색 채권을 발행하는 자금을 모을 수 있기 위해 저렴한 금리를 적용하자는 것이지, 여기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한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원전에 대한 투자보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늘리는 데 주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 각국이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려가고, 기업들도 자체적으로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RE100’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원자력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 장관은 “전기를 생산하는 에너지원을 따지는 간접 배출을 본다면 수출의 많은 부분에 있어 RE100이 어려운 상태”라며 “‘우리는 원전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부가 아니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상반기 중 확정될 EU 녹색분류체계 최종안이 원자력을 포함하는지와 그 근거를 살펴, 추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를 수정할 때 참고할 방침이다. 한 장관은 “EU는 (국가 간) 갈등 중인 상황인데, 우리는 국민 간 갈등”이라며 “고준위 방폐물 처리 장소가 전혀 마련돼있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까지 사회적으로 합의 가능한 지점인지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한 장관은 환경부의 올해 주요 추진 과제도 발표했다. 환경부는 탄소중립 본격 이행, 통합물관리 성과 확산, 포용적 환경 서비스 확대를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탄소중립 이행을 위해서 환경부는 산업계의 녹색 전환을 지원한다. 2050 탄소중립과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을 위한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전략과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것 역시 진행된다.
이에 더해 ‘탄소중립 실천포인트제’를 도입해, 국민들이 직접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한다. 탄소중립 실천포인트제는 빈 용기를 들고 샴푸, 세제 등을 리필스테이션을 이용해 구매하거나, 다회용기를 사용하는 경우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탄소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는 제도다. 환경부는 향후 리필스테이션 등 시설을 늘리고 포인트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을 다양화할 계획이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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