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현금지원'은 막 던지면서 '뜨거운 감자' 교육정책 미지근한 대선주자들
[경향신문]
오는 3월9일 치러지는 대선까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각 대선주자들이 감세, 과세 유예, 현금 지원 같은 선심성 공약들은 쏟아내는 반면 교육이나 노동, 인권 등 후보자들의 철학이나 비전을 엿볼 수 있는 정책들은 실종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뜨거운 감자’인 입시 제도를 포함한 교육정책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표’에 도움 안 되는 이슈는 최대한 피하면서, ‘공정성 강화’ 등 이미지 개선에만 활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다음달 21일 시작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최 대선 후보 TV토론회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안철수 국민의당,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참석한다. 국회 의석수, 지난 선거 정당 득표율,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을 등을 종합해 선정된 후보들이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지금까지도 네 후보의 교육철학이나 정책 비전, 입시제도 방향 등을 구체적으로 알기가 어렵다. 이 후보가 지난 10일 교육정책을 내놨지만 큰 줄기 없이 세부적 내용만 손질하는 선에 그쳤고, 윤 후보는 아직까지 방향성을 제외한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교육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는 “교육 정책은 공개해도 크게 빛이 나지 않는데다 입시 정책의 경우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최대한 조용하게 넘어가자는 걸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은 전날 대입 공정성 위원회 설치 등을 골자로하는 교육분야 8대 공약을 발표했다. 대학별 수시전형 전 과정을 모니터링해 특혜·부정선발 가능성을 차단하는 한편, 대학수학능력시험 초고난도 문항 출제 금지, 수시 비율이 높은 대학에 대한 비율 조정 등 ‘대입 공정성 강화’ 정책이 핵심이다. 이 가운데 초고난도 문항 출제 금지는 이미 국회에서 입법 작업이 진행중이다. 또 상위권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 주요 대학의 정시 선발 비중이 이미 40%라는 점을 감안하면, 수시 비율이 높은 대학의 정시 비중을 늘리겠다는 구상 역시 그 목표와 효과가 흐릿하다. 현 정부의 대입 제도와 수시·정시전형 선발 구도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공정성을 제고했다는 메시지를 주는데만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윤 후보의 경우 앞서 입시제도 단순화, 정시 비율 확대를 통한 특혜 선발 논란 차단, 입시 비리가 확인되는 대학에 대한 정원 축소와 관련자 파면 등 공정성 강화방안을 내놨지만 여전히 시행 방법이나 시기, 비율 등 세부 내용들은 공개된 게 없다. 역시 ‘공정성 제고’라는 메시지만 높이 띄우고, 논쟁적인 지점들은 최대한 조용히 통과하려는 의도가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나마 안 후보의 대입 관련 공약이 차별성을 보이는 편이다. 안 후보는 정시 확대를 넘어 ‘수시 전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능을 연 2회 실시하고, 정시는 수능과 내신을 혼합 반영한 일반전형 80%와 특별전형 20%로 선발하자는 안이다. 아울러 입시 공정성을 확대하기 위해 대학 입시 특별전형제도를 전면 점검하고, 부당한 특혜성 기준을 폐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조국 사태’ 이후 비등한 ‘수시 불공정’ 이슈에 가장 적극적인 대응으로, 학생들과 20·30 젊은층의 반응이 뜨겁다. 다만 사회적 공감 형성을 위한 숙의 과정이 남았고,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입시제도를 또 통째로 바꿔야 한다는 점에서 현장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입시업계 관계자는 “정시를 하든, 수시를 하든 부자와 권력자에게 불리한 제도는 없다는 게 입시 정설”이라면서 “입시제도를 단기간에 뜯어고치게 되면 있는 사람이 더 빨리 정보를 얻고 적응해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심 후보의 교육·입시정책은 학벌·서열화 문제 해소와 출발선 평등을 위한 보완 정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25년 전면 도입되는 고교학점제와 연계해 국어, 수학 등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의 절대평가를 확대하고, 최종적으로 수능을 고교 졸업 자격고사화하는 정책을 준비중이다. 특히 대입 전형에서 논술과 특기자 전형은 폐지하고 학생부 전형과 수능 전형으로 단순화한다는 계획으로 이를 통해 과도한 선행학습을 금지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구상이다.
모든 후보들이 공통으로 내놓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 감축’이나 ‘학교 돌봄기능 강화’ 등 교육·복지 정책들도 정작 현장에서는 우려섞인 반응이 나온다. 교원단체 관계자는 “구체적으로 정책을 어떻게 실현할지 인력충원 방안이나 지자체와 학교의 역할 분담에 대한 세부적인 계획도 없이,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있다”면서 “후보나 정당 캠프에서 추후에라도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지 않는다면 신뢰성이 크게 훼손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 기자 h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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