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코로나 '탈세계화'..기업들 비용 더 들어도 위험 대비한다

전슬기 2022. 1. 11.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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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최소화' 글로벌 분업 코로나19 앞 균열
재고 최소화, 저임금 생산 기지 구축 약점 드러내
주요 기업들 재고 축적 나서고, 생산 기지 이전
기업 생산비용 증가하면서 전 세계 물가 상승 가능성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세계적 맥주 업체 하이네켄은 지난해 ‘도스 에퀴스’(Dos Equis) 브랜드를 전담하는 멕시코 양조장이 코로나19로 폐쇄되자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에서 해당 브랜드 맥주를 생산하는 자구책을 마련했다. 공급망 관리 전략의 구조적 변화였던 터라 눈길을 끌었다. 엘지(LG)전자는 지난해 말 공급망 관리(SCM) 조직을 대폭 강화했다. ‘실’ 단위에서 ‘담당 조직’으로 격상하고, 지역별 물류 관리팀도 운영한다. 한 국내 대기업 전략담당 고위 임원은 11일 <한겨레>에 “기업들은 비용이 싼 곳에서 생산해 적시에 상품을 공급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며 전략을 아예 바꿔야 하는지 고민에 빠졌다”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경제는 ‘과거 복귀’가 아닌 ‘세계화 후퇴’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현상 중 하나가 세계 기업들의 공급망 전략 변화다. 코로나19로 공급망 차질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부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옮기거나 다변화하는 방식으로 공급망 전략을 바꿔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폭넓게 확산이 될 경우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코로나 앞 약점 드러낸 공급망

코로나19 확산 이전 공급망 관리의 기본 전제는 ‘비용 최소화’였다. 수요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도록 재고를 최소화했으며, 임금과 세금이 싼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옮겼다. 지난 30~40여년간 국가 간 무역 장벽이 낮아지는 세계화가 확산하고 효율적 물류 관리가 가능한 정보기술(IT)이 진화했기에 가능한 흐름이었다.

그러나 이런 공급망 관리 전략은 코로나19 상황에선 되레 독으로 작용했다. 코로나19로 공급망 단계마다 차질이 발생한 상황에서 재고도 적게 관리한 터라 수요 변화에 맞춰 제때 생산하고 판매하기 어려웠다. 특히 저임금 활용을 위해 신흥국에 세운 글로벌 기업들의 생산 공장들은 약한 의료 체계 탓에 조금만 코로나19가 퍼져도 가동을 멈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케이피엠지(KPMG)의 공급망 업무 책임자 브라이언 히긴스는 지난해 12월20일 <파이낸셜타임스>(FT)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현재 망가진 전 세계 공급망은 저비용을 추구하던 20년 전에는 보편적으로 받아들였던 진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만약’을 대비하는 기업들

상황이 이렇자 주요 기업들 사이에서는 현재의 공급망 차질이 해소되더라도 이미 약점이 드러난 현 체계를 그대로 이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보수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국내 대기업 전략담당 임원은 “이 기회에 코로나19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미·중 무역 갈등 및 저탄소 경제 전환까지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결정적 계기가 됐지만 과거와 같은 공급망 유지 전략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하는 새로운 환경이나 변수들이 앞으로도 널려 있다는 얘기다.

주요 기업들은 ‘비용 최소화, 적시 공급’(just in time)에서 ‘복원력 중시, 만약의 경우 대비’(just in case) 전략으로 구조적인 방향을 아예 바꾸는 모습이다. 먼저 재고 최소화에서 재고 확대로 눈을 돌리고 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McKinwey&Company)는 지난해 11월 ‘코로나19가 공급망을 재편하는 방법’ 보고서에서 “다양한 산업과 지역의 고위 경영진 약 70명을 설문조사(2021년 2분기 시행)한 결과 61%가 지난 1년간 중요 제품의 재고를 늘렸다고 응답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인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 전반에서 재고를 최대한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반도체 업계 관계자 또한 “(앞으로도) 수급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품목의) 재고는 더 확보하려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하이네켄처럼 생산 거점까지 손을 대는 곳도 여럿이다. 또다른 예로 지난해 말 글로벌 의류업체 휴고보스는 동남아시아 생산 의존도를 줄이고, 유럽 인근 지역 생산 능력을 확대하는 계획을 내놨다. 앞선 맥킨지 조사에서도 설문 응답 경영진의 15%는 지난 1년간 ‘니어쇼어링(생산 기지 인접 국가 이전) 및 공급 기반 다변화’를 이미 실행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난다.

달라지는 세계화…구조적 물가 상승 요인?

이런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와 재고 전략 변화가 폭넓게 확산될 경우 거시 경제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러한 전략은 과거보다 단계별 비용 증가를 의미하는 터라,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12월 기자 간담회에서 “기업들이 효율성보다는 복원력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을 수정하는 조짐이 보인다”며 “이러한 변화는 기업의 생산비용을 높여 구조적 물가 상승 요인을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지난해 12월5일 ‘세계화 후퇴는 물가 상승의 또다른 원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공급망 차질과 노동 공급 부족, 재정 자극(지출 확대)은 단기 물가 급등의 원인으로 거론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물가를 끌어올리는 상승 압력은 또 있다. 그것은 바로 탈세계화”라고 보도했다.

전슬기 기자 김영배 선임기자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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