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색해진 '사회적 합의기구'..CJ 택배노조 "살기 위한 멈춤할 수밖에"

유선희 기자 2022. 1. 11.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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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전국택배연대노조 CJ대한통운본부 조합원들이 지난달 29일 ‘CJ대한통운 총파업대회’를 마친 본사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잇따른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로 지난해 정부·여당이 참여해 만든 과로사 대책 사회적 합의가 갈수록 무색해지고 있다. CJ대한통운 노조는 택배기사 작업에서 제외키로 한 택배 분류작업(일명 까대기)을 위한 인력 투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 등 사측이 합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다며 ‘100인 단식 농성파업’을 예고했다. 설 명절을 앞두고 택배대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가 부랴부랴 점검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사회적 합의 이행 방식을 두고 노사간 간극이 커 파업이 장기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택배노조는 11일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회적 합의 이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작한 파업에 CJ대한통운과 정부, 민주당이 나서지 않으면서 파업물량이 롯데, 한진, 로젠, 우체국 등으로 넘어갔다”며 “이번주 내에 파업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다시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문제가 발생하고, 설 택배대란이 벌어져 국민들이 불편을 겪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고 했다.

이어 “결국 택배노동자들은 ‘살기 위한 택배 멈춤’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파업이 이번주를 넘어가게 된다면 택배노조는 전 조합원의 상경투쟁과 서울 전역 차량시위 등 끝장 투쟁을 전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 측은 오는 14일 ‘100인 단식 농성’에 돌입하겠다고도 예고했다. 택배노조의 총파업은 이날로 15일, 단식농성에 돌입한 지는 6일이 됐다.

지난해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중요하게 도출된 지점은 ‘택배기사의 기존 작업범위에서 분류작업을 배제’하는 내용이다. 택배기사 과로사의 원인이 되는 장시간, 고강도 작업여건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불가피할 경우 예외적으로 적정한 대가를 지급하고 분류작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노동자들은 “사측은 충분한 인력투입 없이 예외 조항을 앞세워 돈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 측은 “사회적 합의 이행에 따라 올해 1일부터 5500명 이상의 분류지원 인력을 투입했다”며 “불가피하게 분류작업을 해야할 경우 비용을 지불하고, 전체 작업시간이 주 60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관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사측도 “과연 100% 이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다. 터미널 크기나 레일 모양, 택배기사들의 숫자, 화물 종류 등 전국의 현장 상황이 너무 다르다”고 했다.

택배요금 인상분이 사회적 합의 이행비용으로 제대로 사용되고 있는지 여부도 쟁점이다. 노조 측은 “택배요금 인상분을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이 아닌 영업이익으로 가지고 가는 행태를 조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반면 사측은 요금 인상분이 영업이익으로 남는게 아니라 다른 비용 처리에 들어간다는 입장이다.

사회적 합의 이행에 차질을 빚으면서 정부가 부랴부랴 나섰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9일 “이번주에 민간전문가를 포함한 국토부, 고용노동부, 공정위 등 부처합동 조사단이 사회적 합의 이행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전국 택배사업장을 불시점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측에서도 전날 택배노조 농성 현장을 방문했다.

다만 정부 조사가 ‘무늬만 불시점검’이라는 뒷말도 나온다. 노조 측에 따르면 CJ대한통운 김해지사는 오는 12일 국토부가 점검에 나선다는 일정을 직원들에게 공유하며 업무 가이드라인까지 상세히 공유했다. 노조가 공개한 단톡방에는 “9시 이후 출근하고, 출근하더라도 절대 분류 일을 하지 않는 것. 정말 중요하며 미이행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내일은 하차관련 일절 하차에 관여하지 말아달라는 소장님 전달사항” 등이 담겼다. 노조는 “과연 불시점검인지 묻고 싶다. 결국 CJ대한통운이 사회적 합의를 잘하고 있다고 면죄부를 주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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