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 한열이 곁으로" 배은심 여사 영면 '눈물바다'

변재훈 2022. 1.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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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거센 눈 발 속 추모객 유족 복받치는 오열·통곡
아들 이한열 열사 마주 본 망월공원 8묘역 안장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민주 투사 고(故)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11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되는 가운데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장지는 아들 이 열사가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5·18 옛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가량 떨어져 있다. 2022.01.11. wisdom21@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이영주 기자 = "35년 간 가슴에 묻고 그리워하던 아들 한열이와 함께 편히 쉬세요."

11일 오후 1시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

1987년 6월 항쟁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이자 평생을 민주화에 헌신한 배은심 여사의 유해를 안장한 영구차와 유족·조문객을 태운 45인승 버스 2대가 묘원 입구에 들어섰다.

흐린 날씨 속 눈 발이 바람에 흩날리는 가운데 영정을 손자 이재진(24)씨가 든 영정 사진과 목관 뒤로 영구차와 유족·조문객 100여 명이 비통한 표정으로 뒤를 따랐다.

이날 안장식은 추도사 등 공식 행사 없이 유족, 민주화투쟁 동지, 시민사회 관계자 중심으로 진행됐다.

묘지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배은심 여사 사회장 장례위원회 호상(護喪)과 유족들이 천천히 목관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하관식을 바라보던 유족들은 끝내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견디지 못하고 울먹이기 시작했다. 한 유족은 코를 훌쩍이며 눈시울이 붉어졌고 끼고 있던 안경엔 금세 서리가 꼈다.

유족은 끝내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거나 관 위에 덮인 붉은 천을 멍하니 바라봤다. 봉분을 만들기에 앞서 관 위에 흙 한 줌을 뿌리기 시작하자 유족들의 곡 소리는 더욱 커졌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민주 투사 고(故)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11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되는 가운데 유족이 오열하고 있다. 장지는 아들 이 열사가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5·18 옛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가량 떨어져 있다. 2022.01.11. wisdom21@newsis.com

슬픔을 주체하지 못해 삽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유족도 있었다. 상주의 도움으로 간신히 흙을 뿌린 직후 주저앉고 말았다. 아들로 보이는 어린 유족의 부축을 받고 일어난 뒤엔 고개를 떨궜다.

손주들은 "할머니, 우리 언제 또 봐", "우리 할머니 편하게 해주세요"라고 울먹이듯 말했다.

주변에서 곡 소리가 점점 커지자 애써 침착한 얼굴로 서로 팔짱을 끼며 헌화를 지켜보던 다른 유족들도 옷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추모객으로 보이는 한 노년 여성은 비통함을 참지 못하고 장례위 관계자들의 품에서 하염 없이 울었다.

산 정상 부근 살을 에는 바람과 거세지는 눈발 속에서도 추모객들은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았다. 곳곳에서 '아이고' 소리가 잇따랐고, 짧지만 깊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멀찌감치 서 있던 각계각층 추모객들도 "하늘 위에서 나라를 지켜달라고 부탁이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우리 어머니"라고 흐느꼈다.

일부 추모객들은 유족 곁에서 손을 꽉 쥐거나 포옹을 하며 '고생 많았다', '좋은 곳 가셨을 거야', '한열이랑 편히 지낼거야'라며 위로를 건넸다.

임시로 봉분을 만든 뒤 직계 유족부터 추모객들이 국화꽃을 한 송이씩 놓으며 고인의 넋을 기리고 위로했다. 15분 사이 고 배 여사의 묘 주변에는 내리는 눈발보다 새하얀 국화꽃이 둘러졌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11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서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민주 투사 고(故) 배은심 여사의 유해 안장식이 열리고 있다. 장지는 아들 이 열사가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5·18 옛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가량 떨어져 있다. 2022.01.11. wisdom21@newsis.com

전북 전주에서 온 추모객 김일한(79)씨는 "오늘은 고인이 역사에 남긴 발자취를 되짚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날이다. 이렇게 모든 이들의 축복에 둘러싸여 가시는 점이 너무 슬프면서 기쁘다"고 했다. 또 "경치가 좋은 곳에서 저 너머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묻힌 아들 한열이를 바라보며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헌권 서정교회 목사도 "민주화를 위해 35년 동안 '거리의 어머니' 역할을 해오셨다. 삶 자체가 민주주의 회복에 크나큰 원동력이었다"며 "하늘에서 해후할 배 여사와 이 열사에게 부끄러워지지 않도록 남은 사람들은 '민주유공자법' 제정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 날은 공교롭게도 배 여사의 음력 생일이었다.

앞서 오전에 열린 발인제 상에는 지인들이 미리 준비한 케이크가 놓였다. 노제에서도 유족 대표 장녀 이숙례씨는 생일에 마지막 길을 떠나는 어머니를 그리며 "아들 가슴에 묻고 살아간 35년 세월, 애가 타 울부짖던 그 울음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이제 한열이와 편안히 영면하시길 간절히 빈다"고 울먹였다.

이날 배 여사는 유족의 뜻에 따라 8묘역 정상 부근 남편 이봉섭씨 묘 바로 옆에 묻혔다. 아들 이 열사가 묻힌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차로 1.3㎞ 가량 떨어져 있다.

생전 배 여사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을 맡아 '의문사 진상규명특별법'과 '민주화운동 보상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용산참사, 세월호참사, 촛불집회 등 국가 폭력과 불의에 맞서는 현장에서 '민주화 투사'로 살았다.

배 여사는 지난 9일 지병이 악화해 향년 82세로 타계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이한열 열사의 모친이자 민주 투사 고(故) 배은심 여사의 유해가 11일 오후 광주 북구 망월동 망월묘지공원 8묘원에 안장되고 있다. 장지는 아들 이 열사가 묻힌 민족민주열사묘역(5·18 옛 묘역)에서 직선거리로 1㎞ 가량 떨어져 있다. 2022.01.11. wisdom21@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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