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들 살뜰히 챙기셨는데.. 명절때 할머니 방 보면 빈자리 실감

기자 2022. 1. 11.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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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오래 살면 가족들이 고생해. 우리 손주 대학 가는 것만 보고 가야지."

할머니의 그 고생의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증손주까지 안겨 드렸으니 손주로서 나의 소임은 다한 게 아닐까, 혹은 가시는 길은 편히 보내 드렸다고 자위하며 슬픔을 누그러뜨렸다.

할머니가 그토록 이뻐했던 증손주가 내년에는 학교에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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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립습니다 - 주희숙(1935∼2019)

“내가 너무 오래 살면 가족들이 고생해. 우리 손주 대학 가는 것만 보고 가야지.”

어린 시절 부산에서 함께 살던 할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이다. 노인들이 별 뜻 없이 하는 말이었지만 어린 마음에는 그 말이 왜 그렇게 싫었을까. 버릇없는 손자는 다시는 그런 소리 말라며 버럭 소리를 지르곤 했다.

세월이 흘러 손주는 서울로 대학을 갔다. 주로 명절 때 만난 할머니는 “빨리 가야 한다”는 말은 반복했지만, 손주를 향한 바람은 대학에서 취직으로, 결혼으로, 증손주로 조금씩 바뀌었다. 늘 하시는 이야기였기에 나의 반응도 점차 무뎌져 갔다. 할머니는 항상 고향에 가면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는 분이셨고, 그것이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2019년 가을. 여동생의 결혼식이 끝나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어느 새벽. 부산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한참을 머뭇거리다 뱉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넘어 가슴에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할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늘 그렇듯 손주를 반겼다. 영정 속의 할머니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표정으로 웃고 계셨지만 난 마주 웃을 수가 없었다. 여동생이 결혼하는 모습을 보며 당신의 할 일이 끝났고, 가족들을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말을 지키기라도 하듯이 특별한 병도 없이 그렇게 갑자기 잠이 드셨다.

6·25전쟁 시절 북에서 피란을 나오신 할머니는 거제도 포로수용소를 거쳐, 부산에 정착해 힘겨운 삶을 사셨다. 남편은 다섯 살 아들을 남기고 일찍 세상을 떠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겨우 몸을 누일 수 있던 자그마한 집마저 화재로 잃었다. 여름이면 ‘다라이’(대야)에 ‘아이스케끼’(아이스크림)를 담아 학교 앞에 나갔고, 겨울에는 팥죽을 이고 시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아버지를 키워냈고, 아버지는 다시 나와 여동생을 보살폈다.

할머니의 그 고생의 무게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그래도 증손주까지 안겨 드렸으니 손주로서 나의 소임은 다한 게 아닐까, 혹은 가시는 길은 편히 보내 드렸다고 자위하며 슬픔을 누그러뜨렸다. 순식간에 장례식이 끝나고 그렇게 나는 빠르게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는 아물고,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마음은 왜 명절이 되면 다시 아려 올까. 잊은 듯 지내다가 고향에 내려가 텅 빈 할머니의 방을 확인하고서야 다시 당신의 부재를 실감한다.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그리운 마음은 더욱 커져만 간다.

할머니, 얼마 전 부산으로 내려가는 비행기에서 일곱 살 아들이 구름을 향해 손을 흔들었어요. 뭐하냐고 물었더니, “응, 하늘나라에 있는 왕할머니에게 인사했어”라고 말합니다. 할머니가 그토록 이뻐했던 증손주가 내년에는 학교에 갑니다. 할머니도 그 모습을 함께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랬으면 지금처럼 아쉬운 마음이 덜 했을까요. 오늘따라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손주 박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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