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길고 깊은 여성 개발자의 경력단절.. 이루다 사태, 다신 없을까?

최윤아 2022. 1. 11.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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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다 중단 1년, 베타테스트 이달 시작
근본원인에 참여자의 성다양성 부족 지적
IT업 여성 이탈 뒤 재진입 더 어려운 실태
'여성 선배' 드문 이유로 53% "경력단절"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 스캐터랩 누리집 갈무리.

1년 전 오늘(1월11일) 인공지능(AI) 챗봇(채팅로봇) ‘이루다’가 사라졌다. 20대 여성의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그는 성소수자와 특정 인종에 대한 혐오의 표현을 거르지 않았고, 이용자들은 그를 향해 성희롱을 하기도 했다. 차별과 혐오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된 챗봇은 대중에게 적잖은 충격을 줬다. 결국 개발사인 스캐터랩은 “잠정 운영 중단”을 선언했다. 이 회사는 서비스 중단 1년 만인 이달 비공개 베타테스트를 재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루다는 시즌 2를 채비하고 있지만 ‘어떻게 인공지능의 윤리를 담보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남은 채다. 지난해 9월 여성가족부는 그 답으로 ‘참여 인력의 성별 다양성’을 제시했다. 여가부는 특정성별영향평가를 거쳐 “인공지능 사업 추진 기업의 소프트웨어 전문인력 여성 비율은 19.1%이며, 인공지능 사업 추진 기업 대표자 여성 비율은 3.1%에 불과하다”며 성별 등 여러 면에서 편향된 개발 환경이 이루다 사태를 촉발한 측면이 있다고 짚었다. 어떤 인공지능도 ‘윤리적 진공’ 상태에서 학습하지 않기에 차별·혐오를 거르는 걸 가르치려면 성별·인종·지역·연령 등에서 “다양한 참여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혜연 한국과학기술원 에이아이(AI) 통합연구센터 소장은 “연구개발 인력의 20~30%, 궁극적으로는 숫자가 중요하지 않을 정도로 여성의 참여를 높여야 한다”(‘인공지능(AI) 분야 양성평등 정책 확산을 위한 토론회’)고 했다.

가파르게 떨어지고 반등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 분야 여성의 참여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 분야 여성이 겪는 경력단절은 다른 업종보다 더 길고, 더 혹독하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12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정보통신(IT)업에서의 연령대별 여성 취업자 비중을 다른 산업과 비교한 결과를 발표했다. 정보통신업 20대 여성 취업자 비중은 20∼24살 63.9%, 25∼29살 47.4%로 다른 산업 평균치(20∼24살 58.4%, 25∼29살 46.1%)보다 높았으나, 30대 중반부터 역전돼 50대에는 다른 산업 평균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50∼54살 구간의 정보통신업 여성 취업자 비중은 18.9%, 다른 산업 평균치는 44%다. 우리나라 여성 취업률 그래프는 대체로 ‘임출육(임신·출산·육아)’을 겪는 30대에 꺾이고 40대가 되면 다시 반등하는 유(U)자형을 그리는데, 정보통신분야에서는 더 가파르게 취업률이 떨어지고 더 약하게 반등한다.

연구원은 소프트웨어·정보통신기술분야(SW·ICT)에서 일하는 여성 가운데 경력단절을 경험했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80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했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547명) 가운데 37.8%가 재취업하지 않았고, 29.6%는 다른 분야로 재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SW·ICT 분야로 복귀한 여성은 32.5%였다.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 10명 중 4명은 돌아오지 못하고, 3명은 다른 업종으로 재취업했으며, 3명만 해당 분야로 돌아온 셈이다. (‘ICT 분야 경력단절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 제고방안 연구’, 최지은·고세란·오윤석)

‘장시간 근무’로 떠나고 ‘도태’ 두려움에 돌아오지 못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여성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범위를 좁혀 이들이 겪는 경력단절의 특이점을 더 살펴봤다(‘디지털 전환기의 여성일자리 연구Ⅱ’, 2021). 인공지능을 둘러싼 다양한 직종 가운데, 실제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인력만을 발라냈고, 그중에서도 경력단절을 겪고 있거나 앞으로 겪을 가능성이 있는 337명(경력단절자 33명, 현직자 304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14일부터 10월22일까지 한 달간 조사했다.

우선 여성 개발자들을 일터에서 떠나게 하는 주요 원인은 ‘장시간 근무’와 ‘도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여성 개발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1.8시간이었는데, 경력단절자의 평균 근로시간은 45.8시간으로 더 길었다. 경력단절자의 28%는 52시간 이상 근무를 했다고 응답하기도 했다. 연구팀은 실태조사와 별개로 면담조사도 했는데 복수의 면담자들은 “이 분야 자체가 바로바로 일을 처리해서 완수해야 하는 경우가 빈번하고, 의사결정을 기다리면서 상당시간 대기해야 하는 등 야근이나 과도한 업무량을 본질적으로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출산휴가, 임신 중 근로시간 단축 같은 임신·출산 지원제를 사용했다고 응답한 비율도 높지 않았다. 응답자의 61.7%는 회사가 해당 제도를 도입했다고 답했지만, 실제 이 제도를 이용했다는 응답자는 25.5%에 그쳤다. 육아휴직의 경우도 시행률은 57%였는데, 사용 비율은 22.4%에 그쳤다. 상용직이 아닌 임시직이면 그 비율은 더 떨어졌다.

연구팀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분야에서 오랜 기간 일하는 (여성)선배를 많이 볼 수 있냐’고도 물었다. 응답자 78.6%가 “그렇지 못하다”고 답했다. 그 원인으로는 △결혼·임신·출산·육아로 경력단절이 되어서(53.6%) △가정과 일의 병행이 어려워서(12.5%) △야근이 많아서(10.9%) 등이 거론됐다. 장시간 근무가 일·생활 양립을 무너뜨리고, 이때문에 상당수 여성이 이탈하는 실태를 읽을 수 있다.

‘도태에 대한 두려움’은 복귀를 단념케 했다. 인공지능 분야는 “지적재산 교류의 개방성”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기에, ‘임출육’으로 인한 1년여의 공백이 상당한 타격이 된다는 것이다. 개방성이 배타성으로 작동하는 역설이다.

여성 개발자의 불안감이 어느 정도인지는 수치로 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응답자 전원에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직무는 지속적인 직무교육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하느냐’고 5점 척도로 물었더니 동의 정도가 평균 4.42점이었다. ‘지속적인 직무교육을 받지 못하면 경쟁력을 잃을 가능성이 있는냐’고 물었더니 4.33점으로 동의했다. 연구팀은 “여성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경력단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한 만큼, 이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지원이 절실하다”고 제언했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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