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덕임처럼 있는 힘껏 선택하며 살고 있나 돌아보게 됐다"[플랫]

플랫팀 twitter.com/flatflat38 2022. 1. 11.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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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그 남자 덕분에, 혹은 적어도 그 남자와 함께 평생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는 현대를 배경으로도 흔하다. 부자와 빈자, 왕과 평민 등 사회적 신분 차이가 있다면 사랑은 더욱 미화된다.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순간,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사랑만은 부족한 남자와 아무 것도 없지만 사랑이 가득한 여자가 앞으로 사랑을 포함한 모든 것을 다 누리며 살게 될 거라고 시청자는 쉽게 예감할 수 있다.

지난 1일 종영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은 조선시대 왕과 궁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그리면서도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구원하는 판타지를 거부한다.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에서 성덕임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 프레인TPC 제공

주인공 궁녀 성덕임(이세영)은 알고 있다. 궁녀의 삶은 왕의 승은(承恩)으로 구원받아야 할 만큼 비루하지 않다. 오히려 지켜내야 할 소중한 것에 가깝다. 세손인 이산을 사랑하지만, 사랑으로 얻은 행복이 순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는 후궁이 되어달라는 정조 이산(준호)의 제안을 거듭 거절한다.

덕임을 연기한 배우 이세영은 지난 5일 화상 인터뷰에서 “단순한 밀당이 아니라 잃고 싶지 않다는 절박함으로 승은을 칼같이 거절했던 것”이라며 “덕임은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선택이라는 걸 하면서 살고 싶어하는,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사람이다. 동무들도 만날 수 없고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사람만 바라보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후궁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옷소매 붉은 끝동>의 궁녀들은 서로를 지키면서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왼쪽부터 영희, 덕임, 경희, 복연. MBC 제공

영·정조 시대 격변의 시기를 다루면서도 드라마가 더 조명하는 것은 왕가보다 덕임, 영희, 복연, 경희를 비롯한 궁녀의 삶이다. 각자의 사정으로 어릴 때 궁에 들어온 이들은 모시는 왕족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소모품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덕임의 친구 복연은 영조를 모시고 있는데, 왕의 죽음이 가까워져 누군가 출궁 당할 것을 경고한다. 복연은 웃음 지으며 “궁녀를 했다고 하면 대갓집에서 삯을 많이 쳐준다. 그곳에서 돈을 모아 겸사서 나리(짝사랑 상대) 옆 집을 살 거다”라고 호기롭게 말한다. 그에게는 궁 밖의 미래도 존재한다. 드라마에는 ‘여관(女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남성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지위를 가지고 봉급을 받는 전문직 여성 공무원으로서의 궁녀를 이르는 말이다.

여느 사극은 궁녀를 ‘왕의 여자’ 정도로 그렸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은 달랐다. 노동은 왕족의 것일지언정, 삶은 궁녀 본인의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산이 세손 시절 궁녀 덕임에게 “너의 모든 것이 나의 것이냐. 너의 생각, 의지, 마음까지 모두가 나의 것이냐”라고 묻자, 덕임은 답한다. “아니옵니다. 궁녀에게도 스스로의 의지가 있고 마음이 있습니다. 궁녀 아닌 자들을 알려 하지 않겠지만, 소인은 저하의 사람이지만 제 모든 것이 저하의 것은 아니라 감히 아뢰옵니다.”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후궁이 돼서 무슨 좋은 꼴을 본다고 … 저하(이산)가 소중해요. 하지만 전 자신이 제일 소중해요.”

제조상궁 조씨(박지영)는 궁녀비밀결사조직 광한궁을 통솔하며 이산이 보위에 오르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MBC 제공

드라마에 사랑을 둘러싼 삼각관계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제조상궁(提調尙宮, 큰방 상궁) 조씨와 덕임이 부딪히는 이유는 사랑이 아닌 궁녀로서의 역할 때문이다. 조씨는 자신의 역할이 궁녀 모두를 지켜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우리는 절대 임금을, 이 나라의 위정자를 믿지 않는다. 우리에겐 우리밖에 없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건 우리 자신뿐”이라며 궁녀들의 비밀결사조직인 ‘광한궁’을 이용해 이산이 왕이 되기 전에 죽이려 한다. 사도세자가 수많은 궁녀를 죽이는 것을 지켜본 그는 그의 아들 이산이 같은 만행을 저지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덕임은 이산이 성군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가 무사히 보위에 오르도록 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 여기고, 광한궁의 음모 속에서 이산을 구해낸다. 이세영은 “덕임이가 조씨에게 안쓰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산을 지켜내겠다는 약조를 했기 때문에 대립했다”며 “조씨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동고동락해 온 궁녀들을 세손 암살에 휘말리게 해서 파국을 맞게 했다. 덕임과 직업 윤리가 달랐던 것”이라고 했다.

덕임은 실존 인물이다. 정조의 승은을 거절했지만 끝내 후궁 의빈 성씨가 되어 문효세자를 낳는 정해진 운명을 가졌다. 제작진은 그 속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힘껏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써내려간 궁녀 덕임의 얼굴을 발견해냈다.

이세영은 “덕임은 궁녀이면서도 왕족에게 할 말을 다한다. 지금이야 해고되는 것에 그치겠지만 당시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데도 그랬다”며 “18세기 여성임에도 주체적으로 선택하며 살고 싶어한다는 점에서 본받을 점이 많다. 덕임이보다 가진 것도 많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제가 스스로 과연 진정 선택하면서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오경민 기자 5km@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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