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강타하는 '중국화' 통치..경제 선진국서 국제 고아되나 [송의달 LIVE]

송의달 선임기자 입력 2022. 1. 11. 13:48 수정 2022. 1. 13.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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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58%는 "홍콩서 살기 싫다"..1년 새 9만여명 해외로 탈출

인구 750만명의 국제도시 홍콩에 ‘자유’가 사라지고 있다. 베이징이 원격조정하는 강압적인 철권(鐵拳) 통치가 주범이다. 중국 대륙을 비추는 ‘별’과 같던 홍콩이 새해 벽두부터 고사(枯死) 위기로 몰리고 있다.

2022년 1월 3일 홍콩 입법회에서 새로 선출된 의원이 충성선서를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19일 입법회 선거 승리로 홍콩의 행정·입법·사법권을 장악했다./AFP연합뉴스

홍콩에서 자유는 일상생활에서부터 소멸 중이다. 이달 7일을 기점으로 홍콩 정부가 2주일간 시행하는 초강력 조치가 이를 상징한다. 홍콩에선 요즘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식당 영업이 금지됐다. 체육관·술집·나이트클럽·목욕탕 등은 폐쇄됐다. 무증상 코로나 확진자는 지정 시설 2주 거주를 포함해 최소 한 달간 격리해야 한다.

확진 판정 후 10일 경과때까지 증상이 없으면 격리 해제되는 우리나라나 무증상 확진자 격리 기간이 5일인 미국과 비교하면 3~6배 길다. 선진국의 ‘위드(with) 코로나’와 정반대인 중국 특색의 ‘제로(zero) 코로나’ 정책에 따른 이번 조치는 연장될 수 있다.

홍콩 시민들이 2022년 1월9일 웡타이신 지구에 임시로 마련된 코로나19 검사소 앞에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AFP연합뉴스

◇“중국 도시 빼닮아 가는 홍콩”

한 홍콩 거주 한국 교민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홍콩에선 확진자가 한 명만 나와도 신생아와 80대 노인을 포함한 아파트의 동(棟) 전체 주민들이 모두 검사받는다. 이런 집단 대응은 2000년대초 창궐한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에도 없던 일”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 사이에는 “홍콩이 중국 여느 도시와 똑같아지고 있다”는 볼멘 소리가 쏟아진다. 오미크론 감염자 2명이 나온 뒤 톈진(天津) 시민 1500만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중국을 홍콩이 빼닮는다는 불만이다.

언론계는 공포감에 휩싸여 있다. 지난달 29일 홍콩경무처 국가안전처가 요원 200여명을 투입해 스탠드뉴스(立場新聞) 본사 사옥과 간부들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전·현직 편집국장 등 간부 7명 체포와 자산 동결 같은 언론 재갈 물리기에 나선 탓이다.

2021년 12월29일 홍콩 스탠드뉴스 편집국장이 체포돼 연행되고 있다./AFP연합뉴스

◇반년 만에 언론사 4개 폐간...공포감 고조

몇 시간 뒤 스탠드뉴스는 폐간을 결정했고, 같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던 시티즌뉴스(眾新聞)와 전구일보(癲狗日報)도 이달 2일과 3일 잇따라 폐간을 발표했다. 직원들의 안전 위협을 우려해서다. 열흘 새 사라진 세 곳은 모두 반중(反中)과 홍콩 민주진영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인터넷 매체이다.

26년째 발행해오다가 작년 6월말 폐업한 빈과일보(蘋果日報)를 포함해 6개월 만에 4개 언론사가 문을 닫은 것은 홍콩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중국 왕조 시대에 있던 ‘문자옥’(文字獄·글을 올가미 삼아 지식인을 탄압하는 통치 수법)이 21세기 홍콩에 현실화한 것이다.

빈과일보 폐간이 결정된 2021년 6월26일, 빈과일보 최종판을 든 홍콩 청년들이 시위하고 있다./조선일보DB

이로써 선정적인 오락·가십(gossip)부터 중국 관련 심층보도 등으로 이름 높던 홍콩은 기본권인 표현·언론 자유 마저 봉쇄된 암흑천지가 됐다. ‘국경없는 기자회’(RSF)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2002년 세계 18위이던 홍콩은 지난해 80위로 떨어졌다.

뿐 만 아니다. 시민 단체·노조들의 해산이 잇따르고 있다. 매년 천안문 시위 추모 행사 등을 주도해온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약칭 지련회)는 작년 8월 해체했고, 두 달 후엔 국제 앰네스티(International Amnesty)가 40년간 운영해 오던 홍콩 지부를 폐쇄했다. 민주노동조합과 교사모임들도 문을 닫았다.

◇대학들은 신년부터 매주 오성홍기 게양식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이끌며 ‘홍콩 민주주의의 보루(堡壘)’이던 대학가도 굴복하고 있다. 홍콩이공대와 중문대, 링난대 등은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각각 수백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 국기 오성홍기(五星紅旗) 게양식을 열었다. 작년 9월말 홍콩 입법회에서 통과된 국기법·국가휘장법 개정안에 따른 ‘홍콩 각급 학교의 매주(每週) 국기 게양식 개최’를 지키는 행사였다.

2022년 1월1일 오전 홍콩이공대에서 이뤄진 오성홍기 게양식/홍콩이공대 홈페이지 캡처

홍콩 초·중·고교에서는 공산당 선전과 세뇌 교육이 강화되고 있다. 1989년 천안문 민주화시위 후 중국 청소년 대상 ‘애국(愛國) 교육’처럼, 자유롭고 비판적인 사고를 말살하고 공산당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과 애국을 주입하기 위함이다.

종합하자면 지금 홍콩은 공산당만이 진리와 표준으로 인정받고, 반중(反中)과 반공(反共)·자유·인권은 금기시되고 있다. 이런 중국화(中國化)는 2020년 7월 홍콩 국가보안법 발효되면서 한층 거세지고 있다.

◇“공산당만 진리이자, 표준으로 인정”

홍콩 국가보안법은 ‘홍콩 독립’ 구호를 내건 평화 시위에 대해서도 최고형인 무기징역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독소 조항들을 우려해 홍콩 시민 200만명이 반대 시위를 벌이고, 국제사회도 강력 반대했다. 그러나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는 2020년 5월28일 찬성 2878 대 반대 1표로 강행통과시켰다.

2004년부터 기자가 홍콩에서 4년 동안 특파원으로 일할 당시만 해도 홍콩은 자유와 개방, 자본이 넘쳐나는 ‘아시아의 진주’(Pearl of Asia)였다. 그러나 중국이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약속을 일방적으로 깨고 홍콩 직할 통치를 밀어부치면서 홍콩의 좋은 시절은 막을 내렸다.

무장한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들이 홍콩섬 앞바다에서 군함·헬기 등을 동원해 ‘육·해·공 합동 긴급 출동 및 대응 훈련’ 을 하는 모습/중국공산당 해방군보 캡처

지난달 19일 치러진 홍콩 입법(국회)의원 선거는 중국의 속내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전체 90석 중 89석을 ‘친중파’가 차지해 중국에 순종하는 ‘거수기 의회’를 만듬으로써 홍콩의 행정·사법·입법권을 장악한 것이다.

◇입법·행정·사법권 장악한 中 직할 통치

중국 정부는 이달 9일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분리 독립운동 탄압을 진두지휘한 펑징탕(彭京堂) 참모장을 홍콩 주둔 중국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이는 홍콩내 반(反)정부 활동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강경 대응 의지를 보여준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화’에 몸서리치고 있다. 신년 여론조사에서 홍콩인들은 10명 가운데 6명꼴(58%)로 “홍콩에서 살기 싫다”고 대답했다(1월 5일, 홍콩SCMP). 작년 8월 공개된 홍콩 정부통계를 보면 2020년 중반부터 1년간 8만9200명의 홍콩인들이 다른 나라로 떠났다. 전년 대비 4배 넘게 늘어난 규모로 매월 8000명 가까이 홍콩을 탈출한 셈이다.

2019년 9월8일 홍콩 홍콩섬에서 홍콩 시민 수천명이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홍콩 독립을 요구하는 깃발이 미국 국기 성조기와 함께 휘날리고 있다./조선일보DB

지난달 19일 입법회 선거에서 홍콩인들은 30.2%의 역사상 가장 낮은 투표율로 ‘소리없는 저항’을 했다. G7(서방선진 7개국) 외교장관들은 지난달 20일 “홍콩 선거 결과는 민주주의의 후퇴”라며 “홍콩의 민주적 가치와 자유·인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민주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홍콩에서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남고, 중국으로의 예속(隸屬)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이는 야당 정치인과 활동가 150여명이 구금된데다, 주요 반중 인사들이 해외로 도피해 민주화 세력이 거세된 탓이다.

◇“국제 사회와의 약속 뒤집는 중국의 민낯”

홍콩의 추락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먼저 중국공산당의 민낯을 제대로 확인했는 점이다. 중국은 1984년 영국과 합의한 ‘영·중 공동선언’(홍콩반환협정)에서 ‘일국양제’ 원칙을 명시하면서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은 홍콩인들이 다스린다)과 고도자치(高度自治)를 2047년까지 50년동안 홍콩과 국제사회에 보장했다. 간선제이던 행정장관 선출 방식은 2017년부터 직선제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중국은 그러나 국제사회와의 약속 기간을 절반도 지키지 않고 손바닥 뒤집듯 어겼다. 중국의 ‘내 멋대로 홍콩 통치’는 민심을 거스를 뿐 아니라 스스로 국제적 불한당(不汗黨)임을 보여주는 야만적 행태이다.

'차이나타운' 논란을 빚고 있는 강원EH 홍천 일원의 '한중문화타운'과 관련해 '동북공정의 교두보'라고 주장하는 강원 춘천의 보수 시민사회단체가 2021년 4월 22일 강원도청 앞에서 건립을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또 하나,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가 넘는 경제 선진국도 1~2년 만에 자유가 소멸된 국제 고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섬뜩함이다. 홍콩의 중국화는 공산 중국의 최근접국인 대만에 실존적 위협이다. 동시에 동아시아 민주 세력에 폭압(暴壓)의 어두운 그림자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이 세계 지배력을 키울수록, 지구촌 전체에 자유와 민주·인권이 질식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폭압 그림자...새로운 가치 동맹 구축해야”

더욱이 대한민국의 주권을 경시(輕視)해온 중국은 우리 역사와 문화, 음식, 복장까지 자국의 일부로 편입하는 ‘동북 공정’을 벌이고 있다. ‘좋은 게 좋다’면서 중국 눈치만 보거나 홍콩 문제를 먼 바다 건너 불구경하듯 할 때가 아닌 것이다.

“오늘의 홍콩은 세계의 미래”라고 홍콩 민주화 시위대는 외쳤다. 우리나라 한 순간에 ‘제2의 홍콩’ 같은 처지가 될 수도 있다. 거대 중국에 맞서 자유를 지키려면 자유시민들의 각성과 공통 가치에 입각한 새로운 지정학적 동맹 구축이 필요하다. ‘내일의 우리’가 ‘오늘의 홍콩’처럼 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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