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우리는' 고백의 계절.. 최웅의 그림에도 이제 사람이 그려지겠다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김재동 객원기자] 문구점 아저씨가 키우던 강아지는 이름이 쫑쫑이였다. 녀석은 새침했다. 저를 이뻐하는 사람의 입김이 코를 간질여도 무심하게 고개를 돌리곤 했다.
녀석은 나들이를 싫어했다. 문구점 한켠 방석 위에서 꼼짝을 안했다. 제 발로는 결코 나들이에 나서지 않았다. 산책은 언제나 아저씨의 품에 안겨서거나 유모차에 좌정한 채 하곤 했다. 아저씨가 말했다. 녀석은 버려졌다고. 아마도 산책을 나왔다가 길에 버려진 모양이라고. 그래선지 길에 나서길 싫어한다고.
쫑쫑이는 알았던 것이다. 산책을 나가지 않으면 버려질 일이 없다는 걸. 그렇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가 알려줬다. 높은 건물 꼭대기를 보려면 길바닥에 누워서 보라고. 한 층 한 층 세어보라고. 숫자도 모르는 아이는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길에 누워 한 층 한 층 세어봤다. 숫자를 모르다 보니 하나 둘, 하나 둘만 반복하다 지쳐 일어났다. 길에 눕기 전 옆에 있던 아버지는 사라져버렸다.
최웅은 길 위에 누워서 울었다. “세상에 그렇게 버리는 게 어딨어!” 국연수의 입술이 눈을 가린 채 울고 있는 최웅의 입술을 덮어줬다.
10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그 해 우리는’ 11화는 고백의 장이었다. 김지웅(김성철 분)이, 국연수(김다미 분)가, 최웅(최우식 분)이 각각 제 감정을 털어놓았다.
알았으나 외면했던, 추측은 했으나 정확히는 몰랐던 자신의 감정을 대면하고 서로에게 밝히고 말았다.
드라마 시작부터 자신은 뷰파인더를 통해 남의 인생을 지켜보는 관찰자라 자평한 김지웅은 자신의 앵글에 짝사랑 국연수를 담으며 행복해했다. 그 국연수가 둘도 없는 친구 최웅의 전 여친이라서 괴로워도 했다. 그런 혼란스런 감정 탓에 촬영분은 여러 시선을 담아 산만해졌다. 자신은 입도 뻥끗 안했지만 방송국 주변의 모두가 지웅의 감정을 눈치챘다. 그러던 판에 도시락을 전해주러 편집실을 찾은 최웅마저 자신의 수줍은 촬영내용을 보고 말았다.
술김에 최웅 집을 찾은 지웅은 “누가 그러더라. 내 카메라엔 그렇게 감정이 담겨있다고. 숨긴다고 숨겨도 그게 그렇게 티가 난다는데. 네 생각도 그래?”라며 국연수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친구인 최웅에게 에둘러 털어놓는다.
귀로 들어 친구의 감정을 확인하고 싶어 하지 않는 최웅 덕에 지웅 역시 입으로 확언을 하지는 않은 채 물러서고 만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예리한 선배 작가의 “출연자의 시선 끝을 봐”란 지적대로 국연수의 시선을 따라가 봤더니 거기엔 여지없이 최웅이 있었으니까.
최웅의 “그냥 친구하자”는 제의를 호기롭게 받아들인 국연수도 ‘최웅과 친구하기 싫어’란 제 감정을 밝히기로 했다. 엔제이(노정의 분)와 최웅의 스캔들은 연수를 자극했다. “제가 두 분 사이 방해돼나요?”란 엔제이의 질문에 “지금은 그런 사이 아니예요”라고 죽기보다 싫은 답을 해야 하는 처지가 정말 싫었다.
최웅이 잠수 타 망친 마지막 촬영날 온종일 최웅을 찾아 헤맨 연수는 선술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최웅 앞에 앉아 고백을 한다. “친구하자는 네 말, 생각해봤는데 나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너랑 친구하는게 싫은게 아니구 나는..”
그때 가장 적나라한 고백이 최웅 입에서 터져 나왔다. “보고싶었다. 국연수. 보고싶었어 항상. 보고..싶었어. 니가 다시 돌아왔을 때 니가 내 앞에 있는데 이상하게 너한테 자꾸 화만 나구. 너가 너무 밉구. 근데 이제 알 것 같애. 그냥 너가 나를 사랑하는 걸 보고 싶었나봐 나만 사랑하는 널 보고 싶었나봐. 연수야. 나 좀 계속 사랑해줘. 놓치말고 계속.. 계속 사랑해. 부탁이야.” 비로소 최웅은 국연수에 대한 자신의 혼란스런 감정의 정체를 밝혀냈다.
최웅의 이 느닷없고 격정적인 고백에는 히스토리가 있다. 지웅으로부터 마지막 촬영임을 고지받은 직후 최웅은 부모님 가게에 붙어있는 ‘금일 하루 쉽니다’란 팻말을 보고 오늘이 매년 심란해지는 바로 그 날 임을 깨닫는다.
예년처럼 방황이 시작됐다. 쫑쫑이가 머물던 문방구를 찾았더니 쫑쫑이가 처음 보는 여학생의 손에 이끌려 산책을 다녀온다. 어찌된 일인지 묻는 최웅의 질문에 문방구 아저씨는 말한다 “그게 언젠데..얘가 스스로 이겨냈어” 평상에만 머물던 어린 시절의 자신은 여전한데 쫑쫑이의 시간은 산책의 트라우마를 앗아간 모양이다. 최웅은 “배신자”라 읊조리며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연수의 할머니 강자경(차미경 분)의 장바구니를 들어주다 발견한 연수가 널어놓은 대추. 불면에 시달리는 자신을 위해 차로 다려질 그 대추들을 보면서 최웅은 비로소 연수의 마음을 알게 된다. 최웅은 그날 하루의 방황으로 제 마음, 연수 마음을 다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에필로그의 반전. 최웅은 아마도 친부에게 어려서 버려졌고 최호(박원상 분) 이연옥(서정현 분) 부부에 입양된 모양이다. 매년 방황하는 날은 그 친부의 기일쯤 되는 모양이고.
어쨌거나 버려진 트라우마를 연수에게 털어놓고 위로 받았으니 최웅도 쫑쫑이가 그랬던 것처럼 새로운 나날들을 맞게될 듯 싶다. 사람의 자리가 비워진 그의 그림에도 이제 사람이 채워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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