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포구 한상 가득 '먹방감성'을 채우다

2022. 1. 11.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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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먹방 답사 1번지 '강진'
제주 말·세곡선이 출입하던 마량항
트롯감성 더해 임영웅 순례지 활기
유배왔던 수랏간 상궁의 한상차림
정약용 선생 건강 회복한 비결 '장어'
네덜란드마을길 산책후엔 석쇠구이도
임영웅이 가고 싶다고 애절하게 노래한 강진 마량포구엔 팬클럽 영웅시대 회원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여행스케치 드론촬영-조용식 작]
윗줄부터 목리 장어, 마량 회도시락 한세트, 병영돼지석쇠구이, 강진만 짱뚱어탕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 답사여행 1번지 강진은 올 겨울, 대한민국 먹방 1번지, 트롯영웅 임영웅 성지순례 1번지가 된다. “신년 쇄신여행은 안전-몸보신여행이어야 한다”는데 토를 달 사람은 없다.

탐라(제주)로 나아가는 탐진강 하류 목리엔 건강의 상징 ‘강진 장어’가 계절을 모른 채 펄펄 뛰고, 충무공 배후에서 잔당을 소탕하던 전라병영성의 병영마을엔 하멜 등 네덜란드인들의 원기를 채워주던 건강돼지구이 냄새가 탐방객들을 기어코 붙잡는다.

▶임영웅은 왜 마량에 가고싶다고 했을까= 육지쪽으로 길게 쑥 들어온 강진만은 형세로 보아 해양 생물의 은신처이다. 스트레스가 덜해서인지 강진 수산물은 비린내가 별로 없다. 유배왔던 수랏간 상궁은 귀향하지 않고 강진에 눌러앉아, 강진 한상차림을 임금의 밥상 처럼 만들어 전승시켰다.

‘사랑을 맹세한 마량의 까막섬, 그날의 맹서…보고 싶어라 그리운 님아 마량에 가고 싶다.’ 트롯 최고스타 임영웅이 “마량항에 가고싶다”고 노래한다. 팬덤 ‘영웅시대’ 회원들의 발걸음이 잦아지자 강진군은 조만간 임영웅노래비와 포토존도 만들 계획이다.

제주에서 난 말(馬)을 한양에 보내기전 몇달 든든히 먹이던 마량항은 ‘고려-조선의 하이엔드 제품’ 청자를 해외수출하거나 서울에 보내려 싣던 곳, 세곡선이 출입하던 곳, 장보고 무장상단이 오가던 곳이다. 고금대교가 놓이면서 주변 5개군 섬들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다.

조선의 남쪽 산업,물류 중심지 마량은 여기에 임영웅 식 낭만과 감성에다, 나무데크에 영랑의 시를 얹어 단장한 해안 산책로의 서정, 싱싱한 강진 수산물 집산지의 매력까지 가졌다. 광어며, 멍게며 강진의 회는 잡내가 전혀 없고 담백 쫄깃하다. 쌈소롬한 멍게의 끝맛은 달고 상큼했다. 대양을 바라보며 그네를 타는 이국적 카페 ‘벙커’도 매력적이다.

▶ ‘왕의 한상’ 차림이 왜 강진서 나와?=탐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목리는 건강한 장어가 자라는 중심지라 ‘목리이장이 면장 보다 낫다’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지정학적으로 민물장어(뱀장어), 바다장어(붕장어)가 크로스오버 하며 서로의 장점을 갖춘다. 바다에서 잡히는 품종인데 민물장어 맛도 나고, 민물 어종인데 갯장어의 쫄깃함도 갖는 경우는 ‘강진 장어’가 유일하다.

강진 유배 초기 목리에서 1㎞ 가량 떨어진 사의재에서 기거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이 기력을 회복해 왕성한 저술, 교육활동을 벌이고 홍임까지 낳은 것은 목리 장어 때문이라는 추론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내년 목리에 강진역이 들어서면 ‘강진만 전성기’가 최대값에 이를 것이란 기대감도 넘친다.

많은 유배자들이 강진에서 더 건강해진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한 수랏간상궁 유배자는 강진 한정식의 원조가 되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지만, 유배중 많은 남녀 요리사를 길러내 강진 한정식을 정착시켰다고 강진관광재단 김바다 대표는 전했다. 그래서 강진 한정식은 왕실 보양요리를 빼닮았다.

해장은 짱뚱어탕이 제격이다. 강진읍내의 이순임 셰프는 뻘배를 타고 다니며 낚시로,손으로 직접 잡은 짱뚱어로 탕을 끓인다.

“짱뚱어는 갯벌 위 식물성 플라크톤을 먹기 때문에 오염된 곳에서 못산다. 피부호흡으로 햇볕을 쬐고 살기 때문에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힘이 좋아서 토끼처럼 뛰고 새처럼 날며 뱀처럼 기고 갯벌 위에서 춤을 춘다. 성분분석 결과 담백질 함량은 소고기보다 높다. 칼로리는 낮다. 아미노산과 타우린은 미꾸라지의 2배이다. 참 좋은데.., 더 이상은 말을 못하겠다.” 대학교수와 짱뚱어 공동논문 까지 발표했던 이 사장의 TMI가 꽤 아카데믹해 믿음이 간다.

▶ “앗 히딩크감독님, 울 동네 아재 닮았다”=읍내 북쪽의 병영면은 육군 군사령부급인 전라병영성 때문에 이름 붙여진 행정구역이다. 하멜이 구금되기도 했던 이곳은 ‘도깨비 장군’이라 불리던 마천목장군이 1417년 사령관으로 있을때 지었다. 북서쪽문 앞엔 월출산이 장엄한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1895년 폐영되자 성내 수천명 주민들은 상당수가 동편 길 건너 하멜공원이 있는 병영마을 등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병영마을은 과학, 건강, 민속이 있고, 한국-네덜란드 간 융합문화, 혼인의 추억이 있으며, 병영돼지구이가 있는 곳이다. 36명의 네덜란드인 중 하멜 등 7명만 떠났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곳에 남은 대한민국의 네덜란드 사위들과 그 후손들이다. 이들과 수백년 정을 나누며 살던 마을사람들은 히딩크 감독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어, 감독님, 우리 마을 아저씨랑 똑같이 생겼다”면서 반겼다. 전라병영성에서 풀려난 하멜 일행은 한국인 이웃들에게 네덜란드식 흙과 돌이 섞인 토석담 쌓기를 알려준다. 병영마을 돌담 산책로는 국내 유일의 네덜란드 마을길인데 담 안쪽 집은 기와집이거나 초당이다. 기막힌 한국-네덜란드 공생문화 풍경이다.

▶동서문화로 똑똑해진 병영마을,세계유산 등재=동서양 문화접변으로 더 똑똑해진 병영마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을 청산한다. 물길 방향이 모두 다르도록 설계한 용동제-돌야제-요동제-중고제-하고제 다섯 개 저수지를 연결한 뒤 여닫이 기능을 두어, 물이 더 필요한 지역에 더 공급하는 식의 물 조절 체계를 정립한다. 이 시스템은 최근 ‘세계 관개시설물 유산’에 등재됐다. 한단계 더 높은 세계 농업유산 등재도 추진중이다. 저수지에 고인물에는 건강한 자연산 가물치와 붕어가 자라는데, 1년에 한 저수지식 바구니 덮기 어로 ‘가래치기’로 잡아 보양을 하거나 추가 소득원으로 활용했다. 요즘은 다들 잘 살아서 그런지 그냥 연례 ‘놀이’로 여긴다.

네덜란드-한국 결혼동맹의 후손들은 현재 약간의 이국적 느낌은 있으나 한국인 다운 외양이 80~90%라고 한다. 이들은 대대손손 병영이 고향인데도, 여행객 중 네덜란드인이 끼어있으면, 고향사람 만난 듯 반긴다. 돌담길과 죽방들을 돌고돌아 드디어 병영시장에 들어서자, 병영5일시장에 이르러 돼지구이 냄새가 여행자를 무장해제시킨다. 맛깔나게 양념된 돼지고기를 석쇠로 찝어 고온의 연탄불위에 여러 번 뒤집으면서, 육즙 이탈은 막되 외피의 불필요한 기름을 털어내니, 밥도둑·술도둑이 따로 없다.

‘건강먹방 1번지’로서의 강진 답사에 충실하느라, 인문학에 여전히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기 보다는, 배부르고 튼튼한 돼지가 되고 말았다. 날이 적당해서 강진을 재방문할 때엔, 유홍준 석좌교수의 문화유산답사여행 1번지 답게, 또 윤여정 대배우가 영국 신사를 지칭했듯이, ‘고상한 척’(Snobbish) 둘러보아야겠다.

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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