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만 있는 신구간(新舊間)을 아시나요?

칼럼니스트 김재원 2022. 1. 1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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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27. 잊혀지고 있는 제주 신구간(新舊間) 풍습

1만8000여 신(神)들의 고향이라 불리는 제주에는 '신구간(新舊間)'이라는 아주 특별한 이사 풍습이 남아 있는데요. 오늘은 세월의 흐름만큼 도민들 생활 속에서 점점 잊혀 가고 있는 신구간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 전경. 멀리 한라산이 보인다. ⓒ김재원

새해를 맞아 하늘로 올라가 옥황상제로부터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는 것을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이라고 일컫는데 '신구세관(新舊歲官)'이 교대하는 시기라는 뜻으로 제주에서는 이를 줄여 '신구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구간'은 24절기 가운데 대한(大寒) 후 5일째인 1월 25일부터 입춘(立春) 이틀 전인 2월 1일까지의 기간을 말하는데요. 올해는 설 연휴의 시작과 겹쳐 예년보다 '신구간' 기간이 짧아질 예정입니다.

제주에서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들이 서로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는 이 '신구간'에 집을 고치거나, 이사를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속설이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요. 제주도민들은 집안을 함부로 고치거나 이사하는 일은 신들의 분노를 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신이 허락지 않는 일을 하면 동티(신을 화나게 해 재앙을 받는 일)가 나서 몸이 아프거나 심한 경우 죽음에 이를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지상에 없는 '신구간'에 이사와 외양간 수리, 무덤이나 담벼락 손보기, 집 고치기 등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는 풍속이 생겼다고 전해지는데요.

부동산 임대 전단이 붙은 공인중개소. ⓒ김재원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전통 때문에 '신구간'에 이사하는 집이 무려 1만 가구에 달했다고 합니다. 이사를 나간 사람은 짐만 신속히 챙겨 정리한 뒤 사라지고 나면 새로 이사 들어오는 사람은 소금과 팥을 뿌려 잡귀를 쫓아내고 집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살림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신구간에는 특히 한겨울이지만 동네 곳곳에서 이사하는 진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고, 이삿짐센터와 가전제품 판매업체 등에 손님이 몰리면서 1년 중 가장 큰 특수를 누리는 이른바 대목 장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육지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도심 인구와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각자 편할 때 이사를 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그래서 지상의 신들이 자리를 비울 때 이사를 하면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신구간'의 풍경도 달라지고 있는데요. 특히나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신구간에 상관없이 집 계약 형태(전월세 등)와 기간에 맞춰 이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신구간 특수를 누리려는 전자제품 매장의 홍보물. ⓒ김재원
신구간 특수를 누리려는 전자제품 매장의 홍보물. ⓒ김재원

특히 올해는 주거환경과 세대수 등 외적인 변화와 함께 2년간에 걸친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와 소비 절벽 그리고 부동산 시장의 거침없는 상승까지 맞물리면서 제주만이 가지고 있는 '신구간'의 풍경은 더욱 희미해질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이와 더불어 제주는 상가 임대료를 월세가 아닌 '년세'로 지불하는 특유의 주택 임대 문화가 있는데 년세 문화 역시 월세 임대가 늘어나는 추세로 변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세월과 환경 그리고 삶의 가치관이 변화함에 따라 일상 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았던 제주의 풍습들도 그 변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데요. 제주만의 고유한 이사 풍습이었던 '신구간' 역시 예외는 아닌 듯합니다. '육지사람 제주살이 이야기' 칼럼은 올해도 변함없이 제주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이야기들을 시의성에 맞춰 계속 전해드릴 예정인데요. 지켜나가야 할 것이 있다면 강조하고, 변해가야 하는 문화가 있다면 변화의 필요성을 짚어나가는 칼럼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칼럼니스트 김재원은 작가이자 자유기고가다. 대학시절 세계 100여 국을 배낭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작가의 꿈을 키웠다.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에 사는 '이주민'이 되었다. 지금은 제주의 아름다움을 제주인의 시선으로 알리기 위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에세이 집필과 제주여행에 대한 콘텐츠를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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