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In] 국민연금 개혁 없다면 미래세대가 짊어질 부담은
세금 거둬 연금 주는 방식으로 전환 때 보험료율 최고 37.7% 전망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재정 운용방식은 부분 적립식이다. 연금 지급은 이른바 '확정 급여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가입자한테서 일정한 보험료를 거둬서 일정 기간 상당한 규모의 기금을 미리 쌓아놓고 그 기금을 주식·채권 등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을 올려서 미리 확정된 금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 방식에 따라 현재 가입자는 소득의 9%를 보험료(보험료율 9%)로 내면 40년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생애 평균소득의 40%(명목소득대체율 40%)를 연금으로 받는다.
예를 들어 월평균 100만원 소득자가 월 9만원의 보험료(직장가입자는 회사와 반반씩 부담, 지역가입자는 전액 본인 부담)를 40년 동안 낸 뒤 연금수급 연령에 도달하면 숨질 때까지 연금으로 매달 40만원을 수령한다는 말이다.
애초 국민연금제도 도입 당시에는 지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내고도 많은 연금을 탈 수 있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기금고갈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1998년 1차, 2007년 2차, 2013년 3차 연금개혁과정을 거쳐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연금급여율) 40%의 현행 구조가 갖춰졌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제도 시행 첫해인 1988년 3%에 불과했다. 이후 5년에 3%포인트씩 두 차례 올라 1998년 9%가 됐고 지금까지 20년 넘게 같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명목소득대체율은 1988년 가입 기간 40년 기준으로 70%에 달했지만, 1998년 1차 연금개혁에서 60%로 떨어진 데 이어 2007년 2차 연금개편에서 또다시 60%에서 50%(2008년)로 낮아졌다.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져 2028년까지 단계적으로 40%까지 인하된다.
평균 100만원을 벌던 국민연금 가입자가 40년간 꼬박 보험료를 냈다면, 애초 연금 수급 연령인 65세부터 월평균 70만원을 받기로 했던 게 60만원에서 다시 40만원으로 낮아진 셈이다.
이렇게 보험료가 오르고 소득대체율이 낮아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국민연금은 현세대 가입자에게는 후한 편이다.
지금도 보험료 수준이 상당히 낮아서 낸 돈에 비해서 받아 가는 연금이 훨씬 많다. 기금고갈을 걱정할 정도로 수지 불균형이 심각한 이유다.
이를 잘 보여주는 지표가 수익비다. 수익비는 가입자가 가입 기간에 납부한 보험료 총액의 현재가치 대비 생애 기간 받게 되는 연금급여 총액의 현재가치 비율로 1보다 크면 낸 보험료보다 연금으로 받는 금액이 더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이 임금과 물가 상승률, 기대여명 등 거시경제 변수를 반영해 2020년 가입자의 소득 구간별 수익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30년 가입 시 수익비는 월평균 100만원 소득계층은 3.2배, 연금보험료 부과 최고 기준소득인 월평균 524만원의 최고 소득자도 1.4배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개인연금과 같이 수익비가 1배를 초과할 수 없게 설계된 민간 사보험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렇듯 저부담·고급여 상황(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연금을 받아 가는 구조)에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연금 기금은 소진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상태를 진단해 제도개선방안을 제안한 제4차 재정 추계결과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2041년에 최고에 도달한 후 빠르게 줄어들어 2057년에 바닥을 드러낸다.
이렇게 쌓아놓은 기금이 없어져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재정 운용방식을 현행 부분 적립방식에서 이른바 '부과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부과방식은 해마다 그 해 필요한 연금 재원을 현재 근로 세대한테서 그때그때 보험료로 걷어서 그 보험료 수입으로 노년 세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미국, 독일, 스웨덴 등 연금 선진국도 과거 제도 운용 초기에는 우리나라처럼 상당 수준의 기금을 쌓아뒀지만, 시간이 가면서 적립기금이 거의 없어졌는데, 연금을 계속 지급할 수 있는 것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전환해 연금 재원을 조달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보험료 인상 등 연금개혁을 하지 않은 채 현행대로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면 기금고갈 이후에도 노인 세대에게 연금을 주기 위해 미래세대가 엄청난 보험료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기금고갈로 적립방식에서 부과방식으로 재정 운용방식을 변경해서도 현행 40%의 소득대체율을 지속하려면 보험료율(부과방식 필요보험료율)이 장기적으로 최소 30% 수준은 돼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저출산 상황을 고려해 합계출산율 1.05명(2020년 기준)을 적용한 추계에서는 2088년에 부과방식 필요보험료율이 37.7%에 달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통계청의 2019년 장래인구특별추계 출산율을 반영한 분석에서는 2080년 필요보험료율이 35.6%에 이르렀다.
미래세대 가입자들은 사실상 동일한 소득대체율을 적용받는데도 불구하고 현재 가입자(보험료율 9%)보다 3~4배의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분석 결과들이다.
미래세대가 자신이 벌어들인 소득의 많은 부분을 노인 세대 연금지급 용도의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세대가 자신의 자녀, 손자가 될 미래세대의 부양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보험료를 올려서 부담을 더 짊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인 오건호 박사는 "국민연금 재정은 현재와 미래 세대가 분담하는 구조이고 현 상태로는 미래세대의 재정부담이 무척 크다"며 "현재 세대가 지금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국민연금에서는 자신의 재정 몫을 책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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