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학령인구 감소 시대, 사학 설립자 퇴로 열어줘야"
"학문교육·직업교육 이원화된 독일모델로 교육개혁" 제언
"정부지원·겸직확대 등으로 인공지능 교수자원 확보해야"
"대학 구조조정 불가피..학과개편·재교육으로 수요 창출"
[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대학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규제로 퇴로까지 막고 있습니다. 학령인구는 매년 줄고 있는데 퇴로까지 막아버리면 교육도 죽고 대학도 죽고 학생만 피해를 보게 됩니다.”
이필상 고려대 전 총장(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은 1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대학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로를 열어주는 ‘출구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대학들의 학생 충원은 녹록지 않을 전망이다. 작년에는 대학·전문대학 미충원 결원이 4만 명을 넘었다. 이대로 가면 문 닫는 대학이 속출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사립학교법은 대학 청산 시 잔여재산을 국가·지방자치단체로 귀속토록 규정, 퇴로를 막고 있는 모양새다. 이 전 총장은 “잔여재산은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인센티브로 생각하고 설립자가 회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으로부터 고등교육 발전과 대학 구조개혁에 대해 들어봤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들이 위기 상황에 놓였다.
△학생이 줄고 있기 때문에 학과 통폐합이나 학과 신설, 새로운 교육수요 창출을 골자로 하는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학과나 중복 학과를 통폐합하고 새로운 산업 수요에 맞는 학과 신설이 필요하다. 학생 감소로 대학이 생존 위기를 맞고 있는데 대학 교수·직원이 기득권만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경제·산업·사회·문화 등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다. 대학의 연구·교육도 이에 맞춰 변화가 필요하다. 대학 구성원도 학과 통폐합이나 정원 조정을 수용해야 한다. 대학은 교수·직원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이 생존하려면 교수·직원 스스로가 변해야 한다.
-특히 학생 유치가 어려운 지방대의 위기가 크다.
△대학의 공급과잉 탓이다. 지방대도 전문기술교육·직업교육기관으로 바뀌어야 새로운 교육수요를 창출할 수 있다. 학령인구만을 대상으로 한 일반 대학교육으로는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필요에 따라 대학에서 평생교육이나 재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지방대학이 해당 지역산업과 연계한 특성화를 추진하거나 산학연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지방대를 없애야 한다가 아니라 지방대도 그 지역에서 꼭 필요한 대학으로 탈바꿈해야 생존할 수 있다.
-사립대가 자진 폐교하면 설립자가 잔여재산 일부를 가져갈 수 있도록 퇴로를 열어주자는 출구론도 거론되고 있다.
△현행 사립학교법은 대학 청산 시 잔여재산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로 귀속토록 하고 있는데 한계 상황에 놓인 사학 설립자가 잔여재산을 가져갈 수 있게 출구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은 대학이 과잉 공급된 상황에서 규제로 퇴로까지 막고 있다. 일각에선 퇴로를 열어주면 부동산 등을 처분해 사학 설립자가 폭리를 취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기준을 정해 일부 환원토록 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출구는 열어주고 잔여재산을 구조조정에 대한 인센티브로 생각하고 회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학령인구는 매년 줄고 있는데 퇴로까지 막아버리면 교육도 죽고 대학도 죽고 학생만 피해를 보게 된다.
-최근 서울대도 장기발전계획 중간보고서에서 학부생 정원 감축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서울대가 학부정원 감축을 추진하는 이유가 학령인구 감소 탓만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대의 경우 해외 선진국의 대학과 비교해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선진국의 유명 대학은 학부보다는 대학원 중심이다. 학부에선 일반지식·교양교육을 시키고 대학원은 학문연구·전문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학부에서 전문교육을 강화하면서 대학원 교육이 약화됐다. 서울대에선 과거부터 대학원·연구중심대학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이 거론돼왔다. 이번 학부정원 조정 추진도 학령인구 감소를 연구중심대학으로 발전하기 위한 계기로 삼으려는 포석으로 보인다.
-오미크론 변이가 확산되면서 대학도 비대면 수업을 확대하고 있는데.
△팬데믹 사태는 단시일 내에 끝나기 어렵다. 대학들의 과제는 비대면 교육의 질과 서비스를 높이는 일이다. 불가피하게 비대면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비대면이 대면보다 낫다는 얘길 들을 정도로 수업의 질을 제고해야 생존할 수 있다. 대학도 화상강의·메타버스를 활용해 교육·연구·대학생활의 질이 저하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강의실에서만 강의하는 시대는 지나고 있다. 팬데믹이 끝나기만을 바라고 현실에 안주하는 대학은 도태될 것이다.
-대학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려면 정부 지원이 뒷받침돼야 할 것 같다.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면서 경제·사회체제가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앞서야 할 곳이 대학이다. 대학의 연구·교육체제는 파격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관련 학과·연구소를 재정비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정부는 대학에 대한 규제를 풀고 대학은 새로운 학과·연구소를 세우고, 관련 교수·연구원 영입에 나서야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할 수 있다. 교수가 될 만한 AI 전문가를 영입하려면 기존 교수 연봉의 2~3배 이상을 줘야 하지만 재정난을 겪는 사립대들이 이를 감당하기 힘들기에 정부 지원이 불가피하다. 또 대학 교수들에게 적용되는 겸직제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교수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 지금 미국 등 선진국에서 연구자·학자로 활약하는 한국인이 많다. 이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고 고국에 와 후학을 양성토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20대 대통령 선거(3월9일)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새 정부에 건의할 교육정책은.
△우리나라 학생 대다수가 본인 적성을 모른 채 성적순으로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초·중·고 과정에서 적성개발 교육이 필요하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이론중심의 학문교육과 실습중심의 직업교육이 이원화된 독일식 교육제체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초·중·고 과정에서 적성을 확인하고 향후 이론중심의 학문교육을 받고자 하는 학생은 대학으로, 취업이 목적인 학생은 직업교육을 받는 체제로 가야 한다. 다만 대학을 나오든 직업교육기관을 졸업하든 사회에서 차별 없이 인정해주는 체제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교육부는 대학에 대한 규제를 풀고 자율화를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등록금·입시·정원 등 모든 분야를 규제하고 있는데 이를 완화해야 대학이 획일화되지 않고 대학별 특성을 갖출 수 있다. 등록금도 지금은 10년 넘게 인상을 못하게 규제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자율화해야 대학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다만 교육기회 보장을 위해 저소득·서민층에게는 장학금지원·학자금 대출을 확대, 돈이 없어 공부 못하는 학생은 없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필상 고려대 전 총장은...
△1947년 경기 화성 △제물포고 △서울대 금속공학과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학박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고려대 기획처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 △고려대 기업경영연구원장 △한국재무학회 회장 △고려대 경영대학장 겸 경영대학원장 △고려대 총장 △유한재단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부 특임교수
신하영 (shy1101@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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