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반성과 각성'이 필요한 시간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전 세종연구소 소장 2022. 1. 11.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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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에 살고 있을까? 질서와 평화, 신뢰와 희망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히 혼돈과 고통, 환멸과 좌절의 세상이라고 할 만하다. 왜 그러한가? 우리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재앙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불행히도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재앙’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재앙’ 그리고 이 두 가지 재앙이 결합된 ‘인간과 자연의 공멸 재앙’이 그것이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전 세종연구소 소장

첫째, 인간이 자연에게 가한 재앙은 어떠한가? 주지하다시피, 화석연료의 과다 사용, 열대우림과 산림파괴, 육지와 해양의 플라스틱 쓰레기 범람, 전쟁, 화·생·방의 무기화와 사고, 원전 폐연료 심해 무단 처리로 인한 해양 오염, 각종 산업재해 등 인간이 ‘어머니 자연’에게 가한 반(反)창조적 패륜은 오래전부터 본격적인 자연의 반격을 불러오고 있다. 우리는 생태계 파괴, 기후변화의 재앙, 연이은 바이러스 질병의 희생물이 되고 있다. 당장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차별적으로 인간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우리에게 단순한 ‘물리적’ 거리 두기가 아닌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요하면서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들의 실존과 공동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둘째,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재앙은 우리들 사이에서 반(反)인간성, 증오를 키우면서 심리적·실체적으로 보다 직접적인 혼돈과 고통, 환멸과 좌절을 주고 있다. 현대판 천민자본주의의 과잉과 그것을 방치하거나 심지어 보호해 주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탐욕의 정치가 판을 친다. 결국 부의 양극화, 정치의 양극화, 생활의 양극화, 문화의 양극화, 미래의 양극화로 이어지면서 사람들 간에 질서와 평화, 신뢰와 희망을 논하기 어렵게 한다. 국회에서는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도 통과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멸 재앙은 그대로 놔두면 앞으로 지구와 우주적으로 ‘인류의 시대’ ‘지구행성의 시대’의 종말을 초래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대재앙이다. 그동안 인간이 파괴해온 지구의 땅, 바다, 하늘을 넘어 지금은 우주에도 우주 쓰레기가 범람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의 공멸, 지구행성의 종말 문제는 인간 세상의 판단 기준인 선악의 차원, 시비의 차원을 넘어선 반(反)지구적, 반(反)우주적 재앙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3중 재앙에서 빠져나와 ‘질서와 평화, 신뢰와 희망’의 세상을 꿈꿀 수 있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3중 재앙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각성’이다. 반성과 각성은 그냥 각오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3중 재앙에 대한 우리의 체계화된 지식과 깨달음이 필요하다. 동서고금을 통해 인류가 ‘인간성’ 보존과 회복을 위해 축적한 역사의 지혜,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필요한 과학적·기술적 지식,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결합한 바탕 위에서 세운 공명정대한 문제의식, 포용적이고 실천적이며 문제해결적인 비판의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반성과 각성을 시작할 수 있을까? 우리는 신뢰와 희망의 세상에서 질서와 평화 속에서 사람으로서 존중받으면서 살고 싶은데, 무엇이 잘못되었나? 이러한 질문은 자연스럽게 우리로 하여금 혼돈과 고통, 환멸과 좌절의 세계를 지배하는 정치와 사회, 그 구조에 의문을 갖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정치’ 분야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왜냐하면 3중 재앙 중에서도 ‘인간이 인간에게 가한 재앙’이 가장 가깝고 직접적일 뿐만 아니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있는가? 인류가 정치분야에서 동서고금을 통해 쌓은 지혜는 국내정치에서는 ‘분열이 아닌 통합’, 대외정치에서는 ‘전쟁이 아닌 평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분열된 사회에서는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는’ 통합의 민주주의가 설 자리가 없다. 전쟁과 적대를 부추기는 사회에서도 화해와 평화의 민주주의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분열과 적대, 전쟁의 사회에서는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보는 자들이 말한다. “민주(民主)주의? 고것 참 좋지. 너희는 민(民)해라, 우리가 주(主)할 테니!”라고.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에게 또다시 ‘반성과 각성’이 필요한 시간이 왔다. 우리는 선거 때만 정치인들이 ‘민’하고 국민이 ‘주’하는 민주정치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질서와 평화, 신뢰와 희망 속에서 인간답게 존중받으면서 살기 위해 선거가 끝난 후에도 정치인들이 ‘민’하고 국민이 ‘주’하는 정치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후손을 위해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할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책무가 있다.

백학순 김대중평화회의 집행위원장·전 세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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