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659] 불효 제자는 웁니다
대학교 4학년 여름 나는 우리나라로 채집 여행을 온 미국 유타대 조지 에드먼즈(George F Edmunds) 교수의 조수가 되어 전국의 개울물을 첨벙거렸다. 에드먼즈 교수는 하루살이를 연구하는 세계적인 곤충학자였다. 일주일 동안 부려 보고 장래가 있다고 판단했는지 그는 내게 미국 유학을 권하며 대학 아홉 곳을 추천했다. 그 목록의 맨 위에는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이라고 적혀 있었다.
대학 4년을 거의 허송하던 나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둔 이때부터 공부를 시작해 3년 후 천신만고 끝에 미국 유학에 성공했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석사를 마치고 1983년 여름 하버드대에서 윌슨 교수의 제자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곧바로 에드먼즈 교수님께 편지를 보내 내 근황을 알렸다. 이틀 후 걸려온 전화에서 교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축하한다. 그런데 솔직히 네가 거기까지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 윌슨 교수님이 세상을 떠났다. 최고의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의 창시자이며 생물다양성 보전의 대부였던 위대한 학자의 삶이 막을 내렸다. 나는 2005년 학문의 대통합을 향한 그의 염원을 ‘통섭’이라는 그릇에 담아 우리 사회에 소개했다. 앨라배마 촌에서 태어나 끝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홀아버지를 따라 여러 학교를 전전한 그는 하버드대 교수가 된 후에 따로 글쓰기 교육을 받아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며 탁월한 저술가로 거듭났다. 그는 전형적인 노력형 천재였다.
돌이켜 보면 내 삶의 궤적은 그와 참 많이도 닮았다. 하지만 고백하건대 내 인생에는 거품이 많다. 하버드대 박사라는, 그것도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라는 간판은 내게 분에 넘치는 영예를 하사했다. 사람은 사람으로 인해 비로소 사람이 된다. 내 업적의 절반은 오롯이 그의 은덕이건만, 코로나19 때문에 임종은커녕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는 이 불효 제자는 그저 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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