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의 마음속 세상 풍경] [88] 공감 능력의 함정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2022. 1.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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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착한 마음을 일컫는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로 바꾸어 본다면 ‘공감 능력’이라 볼 수 있다. 공감은 인류 생존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중요시된 지 오래다. 타인의 고통을 느끼고 함께하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쓰는 과정이다. 타인의 신체적 통증을 공감할 때 실제 뇌 안의 통증 센터도 함께 활성화된다는 연구가 있다. 즉 제대로 공감하면 아픈가 보다 하는 수준이 아닌 진짜 내 통증처럼 아픈 것이다.

즐거울 때 떠오르는 친구와 지쳤을 때 떠오르는 친구가 다른 경우도 있다. 상태가 좋을 땐 유머 있고 흥겨운 사람을 만나고 싶지만, 지쳤을 땐 속 깊은 친구가 떠오른다. 삶의 통증이 공감 레이더를 작동하게 하여 공감 능력이 좋은 친구를 자동으로 찾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공감에 양면성이 존재한다. 타인과 세상을 보살피는 따뜻한 힘이지만 과도하게 짊어지면 마음이 지쳐 자기 번아웃(burnout·극도의 정신적 피로나 무기력)이 찾아올 수도 있고, 합리적 결정과 조언이 흔들려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한 연구를 보면, 어린 환자가 고통에 시달리는 음성을 녹음해 두 그룹에 각각 들려주면서 한 그룹은 최대한 감정이입을 해서 듣도록 하고, 다른 한 그룹은 최대한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듣게 하였다. 이후 의사가 환자에게는 고통스럽지만 효과적인 치료법을 우선순위에 따라 제시했을 때, 어린 환자 음성을 감정이입 해 들은 그룹은 3명 중 2명 비율로 의사 의견에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 고통스러운 치료법에 반대한 것이다. 이에 비해 감정적으로 거리를 둔 그룹은 3명 중 1명 비율만 의사 의견에 반대했다. 진한 공감이 오히려 합리적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리더십 분야에서 공감을 연민으로 확장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에 따르면 공감이 타인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라면, 연민은 공감에 타인을 돕기 위한 행동적 의지도 함께 포함된 것으로 구분한다. 다시 말해 ‘잘 돕기 위한 공감’을 연민이라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먼저 정서적 거리를 한 발짝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상대방을 돕기 위한 합리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통증을 나누는 것을 넘어서 무엇을 원하는지 경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공감해서 돕기 원하는 내용과,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공감하다 보니 급하게 내가 생각한 도움을 상대방에게 주고자 할 수 있는데, 그 전에 행동을 잠시 멈추고 잘 듣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돕고 위로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 연민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한다. 나를 잘 연민해야 타인도 연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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