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사회관계 변화·빅테크 신기술..미래를 제시한다
[경향신문]
폴 크루그먼 ‘좀비와 논쟁하기’
좀비처럼 사회 떠도는 생각 꼬집어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 신작은
미래세대의 지구 적응 방안 다뤄
“나는 삶을 변화시키는 아이디어를 항상 책에서 얻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여성학자 벨 훅스의 말이다. 몇십초 안에 이슈를 설명해주겠다는 영상 콘텐츠가 범람하지만, 천천히 길어올린 지식의 정수는 여전히 책 속에 있다. 2022년 출간을 앞둔 책들은 코로나19가 유발한 경제와 사회관계 변화, 기후변화와 신기술로 변화할 미래 등 앞으로의 세상을 해설한다. 경향신문이 출판사 39곳의 올해 주요 출간작 리스트를 받아 정리했다.
■ 불평등 심화, 변화하는 사회관계
팬데믹이 2년 넘게 계속되며 계층 간 불평등은 심화되고 격차는 더 벌어졌다. 구해근 미국 하와이대 사회학과 교수의 <특권과 불안>(창비)은 중산층의 지위 변화를 통해 불평등의 경로를 추적한다. 정치운동가 손낙구의 <조세 없는 민주주의>(후마니타스)는 정치적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동산·복지와 같은 사회경제적 현안에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고, 그 원인인 ‘조세 형평성’을 파고든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좀비와 논쟁하기>(부키)에서 마치 ‘좀비’처럼 죽지도 않고 사회를 지배하는 생각을 꼬집는다. ‘재정은 보편적 의료를 감당할 수 없다’ ‘사회보장제도가 문제다’ 같은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고, 비상상황에는 재정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진단한다. 자산버블, 금융위기에 경고의 목소리를 내온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미 프린스턴대 경제학부 교수는 <회복사회>(어크로스)에서 코로나19를 통해 회복탄력성이 없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한지 확인됐다고 말하며, 미래에 올 위기들에 대비하려면 회복탄력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변화하는 사회적 관계를 말하는 책도 나온다. 사회학자 김찬호의 <보는 것과 보이는 것-대면과 응시의 사회학>(문학과지성사)은 비대면 공간이 확장되는 시대에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의 의미를 탐구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리처드 탈러는 <넛지> 전면개정판인 <넛지 파이널 에디션>(웅진지식하우스)에서 코로나로 달라진 세계 경제 사례와 이론을 적용해 ‘넛지’를 설명한다. <이상한 정상가족> 저자인 김희경 전 여성가족부 차관은 <에이징 솔로>(동아시아)에서 4050 비혼 인구 집단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우리편 편향>(바다출판사)은 응용심리학자 키이스 스타노비치가 팔이 안쪽으로 굽는 인간의 본능 ‘편향’을 추적한 책이다.
■ 기후변화·빅테크로 다가올 미래
기후변화, 감염병, 과학기술 등을 주제로 한 책들은 새롭게 다가올 미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줄리아 토머스 등이 쓴 <진짜 인류세?: 다학제적 접근>(이음)은 지질학 개념을 넘어 정의, 평등, 경제, 문화의 측면에서 인간 활동이 어떻게 지구적 변화를 야기하는지 다룬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제목 미정·민음사)에서 감염병, 기후위기 등 예측할 수 없는 자연변화에 대응해 미래세대가 앞으로 지구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열린책들에서는 18세기 낭만주의부터 21세기 기후 문제까지 환경에 관한 역사를 폭넓고 깊이 있게 담아내는 <생태의 시대>(요아힘 라트카우 지음)를 펴낸다. 열린책들은 나오미 클라인과 리베카 스테포프가 쓴 청소년을 위한 기후변화 교과서 <모든 것을 바꾸는 방법>도 출간할 예정이다. 환경학자 폴 호켄은 <재생>(글항아리)에서 기후변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으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는 ‘되살리기’ 운동을 소개한다.
메흐란 사하미 등 미 스탠퍼드대 교수 3인이 쓴 <시스템 에러>는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기술에 윤리와 공감이 결여됐을 때 발생할 차별 심화, 일자리 감소 등을 경고한다. <피터 2.0>(김영사)은 루게릭병을 앓는 로봇 과학자 피터 스콧 모건이 장기를 기계로 교체하고, 가상현실(VR)·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을 이용해 ‘사이보그’로 거듭난 이야기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의 <메타버스 사피엔스>(동아시아)는 산업계 최대 화두인 3차원 가상세계를 중심으로 ‘탈현실화된 미래’를 예측한다. <흑암 속의 빛: 블랙홀, 우주, 그리고 우리>(에코리브르)는 세계 최초로 초대질량 블랙홀의 증거와 모습을 얻는 데 성공하기까지 과정과 의미를 담았다.
■ 역사를 훑고, 새 시대 리더상 그리기
역사·철학 분야에선 묵직한 번역서들이 대거 출간될 것으로 보인다. 교양인에서 종교학자 카렌 암스트롱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신의 역사>를 출간한다. 책과함께는 나폴레옹 전쟁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통찰하고, 그 영향력이 지금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분석한 대작 <나폴레옹 세계사>(알렉산더 미카베리즈 지음)를 펴낸다. 서해문집에서 나올 <전쟁의 역사>는 제러미 블랙이 10년 작업 끝에 완성한 전쟁사로, 전쟁이 어떻게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물결에 영향을 미쳐왔는지 풀어낸다. 한길사는 서방과 동방의 유산을 모두 품었던 비잔틴 제국의 문명사를 다룬 <비잔티움 문명>(앙드레 길루 지음)을 펴낸다. 푸른숲에서 나올 팀 마샬의 <깃발의 세계사>는 국기 안에 담긴 인간의 열망과 세계의 역사를 추적한다. 길 출판사는 철학자 이정우의 <세계철학사> 3권(전 4권)을 펴낸다. 3권에선 17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근대성의 형성과 변화를 다뤘다.
국내 저자들의 오랜 연구 결과가 담긴 학술서도 출간된다. <우리 안의 파시즘>(2000) 출간을 주도했던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20여년 만에 다시 <우리 안의 파시즘 2.0>(휴머니스트)을 펴낸다. 푸른역사에서는 사회학자 정수복이 10년에 걸쳐 한국 사회학의 역사를 정리한 <한국 사회학의 지성사>(전 4권)를 출간한다.
품격 있는 지도자의 면모를 말하는 책들도 나온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과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질적 변화를 연구한 <리더의 상상력>(심용환 지음, 사계절), 최규하·노무현·김대중·김영삼·노태우 등 전 대통령의 마지막 순간을 지킨 장례지도사가 쓴 <대통령의 염장이>(유재철·김영사) 등이다. 독일 총리 올라프 숄츠의 첫 저서 <희망의 땅, 독일>(메디치미디어)도 출간된다.
이혜인 기자 hye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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