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분노 동력 삼아 '상왕' 누르고 홀로서기 [시스루 피플]

정원식 기자 입력 2022. 1. 10.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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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국부의 ‘인형’에서 1인자로
카자흐스탄 대통령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시위 진압하며 나자르바예프 측근 축출
러시아에 파병 요청…외교 균형 흔들어

연초부터 벌어진 카자흐스탄의 유혈시위 사태로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69)이 주목받고 있다. 그는 현직 대통령이지만 카자흐스탄에서 ‘국부’의 지위를 누려온 독재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인형’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노를 동력 삼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세력을 축출하고 카자흐스탄의 실질적 1인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타스통신에 따르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카림 막시모프 전 국가안보위원회(KGB) 위원장을 반역 혐의로 체포했다. 막시모프를 해임한 지 하루 만이다. 7일에는 막시모프와 함께 해임됐던 사마트 아비시 전 KGB 제1부위원장도 체포했다.

막시모프 전 위원장과 아비시 전 부위원장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들이다. 2016년부터 KGB 위원장을 맡은 막시모프는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시절 두 차례 총리와 한 차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아비시는 나자르바예프의 조카로 KGB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앞서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6일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국가안보회의 의장직을 박탈하고 자신이 의장을 맡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 세력과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카자흐스탄의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정통 엘리트 관료의 길을 걸어온 인물이다. 1992년부터 나자르바예프 내각에서 외교부 장관과 총리 등 요직을 거쳤다. 구소련 시절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싱가포르와 베이징에서 외교관 생활을 시작한 외교통이기도 하다. 그는 지정학적으로 유럽,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의 영향권에 놓인 카자흐스탄에서 외교적 전문성을 인정받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019년 3월 사임하면서 헌법상 권력 서열 2위였던 그에게 대통령 자리를 물려줬다. 토카예프는 취임 첫날 수도 아스타나의 명칭을 나자르바예프의 이름인 ‘누르술탄’으로 바꾸는 법률에 서명해 보은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으로의 권력 이양은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토카예프 대통령은 혈육 중 마땅한 후계자가 없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이 체제 관리를 위해 내세운 인형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2019년 사임한 뒤에도 국가안보회의 종신의장으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깔린 이번 시위는 토카예프 대통령이 홀로서기를 추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뉴욕타임스는 “카자흐스탄은 독재자가 권력을 잃지 않고 자리를 이양할 수 있는 모델로 여겨졌으나 토카예프가 시위를 강경 진압하면서 자신의 후원자인 나자르바예프를 축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혈 사태로 번졌던 카자흐스탄 시위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토카예프 대통령은 지난 8일 “테러리스트들과의 전쟁을 계속할 것”이라면서 군병력을 파견한 러시아와 구소련권 6개 국가들의 안보협의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카자흐스탄은 전통적으로 중국, 러시아, 미국 사이에서 균형 노선을 추구해왔다. 토카예프는 대통령 취임 후 이 같은 노선을 견지할 적임자로 평가됐다. 하지만 이번 시위 진압을 위해 러시아가 주도하는 CSTO에 파병을 요청하면서 카자흐스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관측된다. 폴 스트론스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국 공영 라디오 NPR에 “CSTO의 파병이 카자흐스탄 시민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할 수 있다”면서 “토카예프의 정통성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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