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논란'에 묻힌 '노동의제'..벼랑 끝, 내미는 손 안 보인다 [2016 촛불시민이 본 2022 대선 ④]

문광호 기자 입력 2022. 1. 10. 20:56 수정 2022. 1. 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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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청와대 앞에서 10일 김다운 전기노동자 산재 사망 추모 회견이 열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촛불집회에 나가면서도 이게 소용이 있을까 싶기는 했어요.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 무력감이라도 해소해보잔 생각이었죠. 그런데 탄핵이라니. 내가 역사책에 한 줄 쓰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어요. 지금요? 정치가 어떻게 되든 내 삶을 크게 좌우하지 않는다고 느껴요. 변화를 이뤄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대선에도 관심 없어요. 누가 돼도 나한테 큰 영향이 없을 것 같거든요.”

특성화고 기간제 교사 장민선씨(30·가명)는 2016년 촛불집회에 적극 참여했고 누구보다 변화를 열망했지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정치가 자신의 삶을 바꿔주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만 해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기대에 부풀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1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최근 정규직 전환을 잠정 합의한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직 청소노동자 박인국씨(52)는 “문 대통령이 인천국제공항에서 공공기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로 제 삶이 바뀌었다”고 했다.

정부가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의 공약 이행 속도를 조절하고 사각지대 노동자들에 대한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대학 강사 생활만 15년 한 임순광씨(50)는 “5인 미만 사업장, 플랫폼, 특수고용 등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주려는 노력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2020년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인천공항공사가 보안검색요원들을 청원경찰로 신분을 변경, 직접고용하는 과정에서 불공정 논란이 불거졌다. “알바하다가 정규직이 돼 로또 취업” “연봉 5000만원이 넘는다” 등 논란을 촉발시킨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비정규직 정규직화 목소리는 위축됐다.

배달 라이더 위대한씨(28)는 “정규직 전환 문제를 언급하기가 어렵게 됐다. 한쪽으로 단정지어 말하면 다른 한쪽에선 상종 못할 사람이 돼 버린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바뀌면 달라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 대선에서 노동 의제는 거의 실종됐다. 일부 후보는 시대착오적 노동관까지 드러내고 있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과 삶은 정치와 떼어놓으면 진전될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체감할 수 있는 정책, 제대로 된 노동정책을 내달라” “진짜 공정이 무엇인지 얘기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들은 촛불집회 참석 이후 품은 정치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지 않고 있다.

‘노동환경 개선해줄 것’이란 기대
정부의 미흡한 정책으로 ‘와르르’
‘비정규직 제로’ 정책서 소외된 기간제
열악한 노동환경 내몰린 플랫폼 노동자
“정부·정치권 현장을 모른다” 한목소리
후보들은 비정규직 문제에 소극적
“바라는 건 하나, 정치 똑바로 하라”

말 바꾸고 꼼수 쓰고…정규직 전환은 험난

박인국씨가 노조 활동을 시작한 것도 정치권이 노동환경을 개선할 것이란 기대를 가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우리의 요구는 용역사업비로 들어가는 돈만큼 직접고용을 통해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정규직의 밥그릇을 뺏으려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박씨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고용노동부 ‘2020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 현황’에 따르면 노조 조직률은 민주화운동의 바람을 탄 1989년 19.8%를 기록한 이후 계속 하락세를 타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10.7%, 2018년 11.8%, 2019년 12.5%, 2020년 14.2%로 상승세를 탔다.

정규직 전환 투쟁은 녹록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조는 직접고용을 요구했지만, 원청인 한국가스공사는 ‘자회사 설립을 통한 채용도 정규직 전환에 해당한다’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자회사 채용을 고집했다. 박씨는 “정부 정책이 미흡하다는 걸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정부는 상시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말만 하고 ‘어떻게 전환할지’ 세부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사장단이 바뀔 때마다 협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전임자와 새 경영진의 방침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가스공사 비정규직노조는 지난해 11월 5년간 4번의 총파업과 수차례 농성 끝에 자회사 설립 방식의 정규직 전환에 잠정 합의했다.

박씨의 투쟁은 이제부터다.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덕분에 집을 지을 수 있는 땅을 얻었다. 하나가 되면 못 바꿀 것이 없다는 생각도 변함이 없다. 이제부터는 좋은 집을 짓기 위해 다시 싸울 것이다.”

“촛불 들었지만 변화 안 와닿아”

정규직 전환을 목전에 둔 박씨의 상황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중에는 문재인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서 소외된 이들도 있다. 기간제 교사들은 정부가 2017년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의 정규직화 대상에서 제외됐다. ‘다른 법령에서 임용 기간을 정하고 있다’는 게 근거였다. 이들은 정규직 교사와 다르지 않은 강도로 업무를 하면서도 임용고시 공부를 병행하고 있다.

하는 일은 다르지 않은데 정규직 교사와 기간제 교사에 대한 처우는 다르다. 기간제 교사 장씨는 “얼마 전 표창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잘 안 됐다”며 “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는 표창 추천 대상에 오를 수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여교사 휴게실이 생겼는데 기간제 교사는 사물함이 없어 이용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고, 정교사가 하기 싫은 힘든 일을 기간제 교사가 도맡기도 한다. 장씨는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부전공 연수도 지원이 불가능해 기회를 얻지 못했다. 일과 공부에 치이면서 장씨의 관심사도 바뀌었다. 정치 참여를 통해 자신의 삶을 바꿔보려던 5년 전과 달리 지금은 “정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 “돈 모으는 방법”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 남은 기대가 있다면 제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이다. 장씨는 지난해 10월 전남 여수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특성화고 학생 홍정운군의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그 사건 이후로 특성화고에서도 현장점검을 많이 나가는데 점검표를 보면 공고와 상고가 점검해야 하는 영역이 다른데도 현장에 맞지 않는 내용들이 많다”며 “정부 당국과 정치권이 현장을 모른다”고 했다.

코로나19로 플랫폼 노동자들 환경도 열악

“코로나19가 유행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플랫폼 노동자가 됐는데 대비가 안 돼 있었어요. 그 전까지 무관심하다가 이제야 플랫폼 노동에 관심을 가지니까 문제가 생길 수밖에요.”

배달 라이더 위대한씨는 정규직은커녕 노동자로서의 권리마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현실을 개탄했다. 정책이 사회 변화를 따라가는 속도가 느리고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파악하기 위한 실태조사도 부족하다고 했다. 위씨는 2017년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찍었지만 현 정부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유행이 결정적이었다. 라이더를 위한 사회안전망이 채 갖춰지기도 전에 배달 수요가 크게 늘고 배달업 종사자 수도 증가했다. 지난달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3분기 택배원, 배달원 등 단순노무의 취업자 수는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4분기 대비 10.6% 증가했다. 한국노총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플랫폼 이동노동자 건강권 실태와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들은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더 높은 수입을 올리기 위해 시간에 쫓기며 일한다고 인식했지만, 정작 급여·수입 만족도는 낮았다.

위씨는 라이더들이 열악한 노동환경에 내몰리는 원인으로 배달 플랫폼의 평점 시스템을 꼽았다. 평점 시스템이 라이더들을 플랫폼 회사에 강하게 종속시키는 도구로 악용되고 있지만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거리상 말도 안 되는 배달이 배당되거나 폭설이 내리는 등 기상이 좋지 않은 경우 거절할 수는 있지만 거절하면 평점이 내려간다”며 “평점이 계속 낮아지면 일을 못 받는다”고 말했다. 4대 보험, 대출 제한 등의 문제도 있다. 위씨는 “플랫폼 노동자도 고용보험 적용 대상으로 법이 개정됐지만 돈만 내고 보장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소득이 있어도 신용카드를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아시아나KO 비정규직 해고자들이 지난해 10월27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부당해고 항의 농성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인국공 사태로 위축된 ‘공정’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시간강사는 공개채용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는데 ‘조국 사태’보다 더 심각한 문제 같다. 후보와 배우자가 잘못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안 그러면 누가 그들이 말하는 공정과 상식을 따르겠나.”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자문위원인 임씨는 김건희씨의 허위 경력 의혹과 이를 대처하는 윤 후보의 대응에 분개했다. 대학 시간강사들은 2019년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한 개정 강사법이 시행된 뒤 2020년 1학기 동안 8000명이 자리를 잃었다. 임씨는 “개념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진짜 ‘윤로남불’이 따로 없다”고 말했다.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 문제에 속 시원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했다. 인국공 사태를 겪으며 관련된 발언이나 주장이 조심스러워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라는 것도 공정이다. 동일한 노동에 공정하게 동일한 대우를 해달라는 것이다. 임씨는 “어떤 강도로 노동하는지가 (정규직 전환의) 기준이 돼야 하는데 입시 형식의 채용만이 공정한 기준이라고 보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씨도 “‘임용고시를 본 사람들이 일을 더 잘하고 기간제 교사는 일을 못하냐’고 묻는다면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임용고시의 취지가 좋은 교사를 뽑기 위한 거라면 꼭 임용고시가 아니어도 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과 만나 ‘비정규직 제로 시대’ 계획을 밝히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선서 비정규직 의제 실종 “정치 똑바로 하라”

2017년 이후 비정규직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줄어들고 있다. 2016년 11월1일부터 2021년 12월31일까지 구글 트렌드에 ‘비정규직’을 검색해보면 시간 흐름에 따른 관심도(최고점 100점)는 2017년 평균 22.6점으로 반짝했을 뿐 2018년 8.6점, 2019년 9.0점, 2020년 9.0점, 2021년 5.8점으로 낮았다.

후보마다 앞다퉈 비정규직 공약을 쏟아내던 2017년 대선과는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관련 공약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뚜렷한 비정규직 공약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박씨는 “이 후보로부터 문재인 정권에서 실패한 부분들에 대한 개혁 등 뭔가 강단 있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게 실망스럽다”고 했다. “(경기지사 시절) 플랫폼 노동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노동자로 있다가 후보가 된 사람이니 노동자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한다”(위대한씨)는 의견도 있었다.

윤 후보에 대해서는 노동자는커녕 서민의 삶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위씨는 “윤 후보에 대해서는 한숨밖에 안 나온다. 유승민 후보와 경선 토론을 할 때 플랫폼 노동자 관련 질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윤 후보가 대답을 못하더라”며 “서민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제2의 박근혜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평했지만 공약이 시대를 앞서간다는 평도 있었다. 장씨는 “심 후보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이 마음에 든다”고 했지만, 박씨는 “심 후보는 너무 빨리 가서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 주 4일도 아직은 너무 빠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에 대해서는 “투자자로서만 굉장하다”고 위씨는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바라는 바는 정치권이 다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다. 임씨는 “정치권에 바라는 건 하나다. 정치 똑바로 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박씨는 “제대로 된 노동정책을 노정협의체를 통해 수립해 시행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냉소와 무관심 속에도 묵묵히 짊어온 짐을 정부와 나눠 질 수 있기를 바랐다. 장씨는 “비정규직 문제의 원인은 비정규직의 능력 부족이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며 “그런 점을 인지하고 진짜 공정이 무엇인지, 후보들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공정한 사회가 진짜 공정한 사회인지 얘기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리즈 끝>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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