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열사의 어머니
[경향신문]
2016년 8월12일, 시인 송경동은 슬픈 시를 읽었다.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유가협)의 창립 30주년 기념식장이었다. 송 시인은 “생겨선 안 되는 모임, 만나지 말았어야 할 인연들”이라고 돌이켰고, “빨리 없어져야 할 슬픔의 집, 더 이상 회원이 늘면 안 되는 단체”이길 빌었다. 고문에, 곤봉에, 최루탄에, 물대포에, 투신·분신에, 의문사까지…. 의롭고 억울하게 죽었다고 국가가 인정한 민주열사만 136명에 이른다.
“유가협이 없었으면 저는 이미 죽었을 거고….” 지난 9일 82세로 생을 마감한 ‘이한열의 어머니’ 배은심 여사는 유가협이 삶의 근거이자 이유라고 했다. 아들을 죽인 최루탄을 덮어쓰고, 닭장차에 끌려가고, 두들겨 맞아도 “한열이와 둘이 간다”는 맘을 놓지 않으며 두려움과 막막함에 맞섰다고 했다. 유가협이 서울 창신동에 만든 사랑방 ‘한울삶’에는 열사의 유족들이 모였다. 5공의 서슬 속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말고, 더 죽지 말자”고 시작한 그 힘이었을 게다. 유가협은 1998년 422일의 천막농성 끝에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과 ‘민주화운동 보상법’의 결실을 맺었다. 용산참사·세월호·국정농단 촛불집회와 외롭고 힘든 수많은 싸움터에서도 그들은 앞장섰다. 그 노정에 빠지지 않은 배 여사는 ‘열사의 어머니’로 불린다. 2011년 유명을 달리한 ‘전태일과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앞장서고, 2018년 별세한 ‘박종철의 아버지’ 박정기씨가 함께한 길이다. 모두 아들의 죽음 후에 그 뜻을 잇고 유가협의 장정을 이끌었다.
광주 조선대병원에 차려진 배 여사 빈소에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조문했고, 영화 <1987>에서 이한열 역을 맡은 강동원씨도 찾았다. ‘민주의길 배은심 어머니 사회장’은 11일 5·18민주광장 노제 후 망월동 묘역으로 향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배 여사는 마지막까지 국회 앞에서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해달라’고 1인시위를 했다. 지금은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그 여정을 잇고 있다. 지난해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미얀마인들에게 그는 “함께 싸우는 것이 민주화의 길”이라고 했다. 그의 바람처럼, 민주주의가 아래로 경제로 나라 밖으로 계속 퍼졌으면 한다.
이기수 논설위원 k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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