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 깨고.. 더 주체적으로.. 진화한 '퓨전사극' 안방 점령

권이선 2022. 1. 10.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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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파 K-사극 열풍 재점화
MBC 시청률 단비 내린 '옷소매'
15% 갱신 6년 만에.. 최고 19.4%
日·베트남 등 20개국서 선판매도
왕이 된 여성.. '연모' 흥행 이어
KBS '꽃 피면..' 월화극 1위 우뚝
역사 아닌 개인에 초점.. MZ 호응
지상파 노하우로 왜곡 논란 피해
안방극장에 사극 열풍을 일으킨 MBC ‘옷소매 붉은 끝동’. MBC 제공
SBS ‘홍천기’, KBS ‘연모’‘태조 이방원’‘꽃피면 달 생각하고’, MBC ‘옷소매 붉은 끝동’…. 지난해 0%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맥을 못 추던 지상파 드라마들이 ‘사극 열풍’을 일으키며 기사회생했다.

최고 화제작은 지난 1일 종영한 ‘옷소매’다. 마지막회 시청률이 17.4%, 순간 최고 기록은 19.4%에 달했다. MBC 드라마가 시청률 15%를 넘긴 것은 6년 만의 일. 지상파 3사가 만든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플랫폼 웨이브에 따르면 ‘옷소매’는 종영 다음 날 역대 최고 트래픽 기록을 경신했다. 분당 최고 동시접속자 수는 32만5000명으로, SBS ‘펜트하우스2’(31만6000명)를 뛰어넘었다. 역사적 배경을 같이하는 2007년작 MBC ‘이산’도 ‘옷소매’의 인기에 힘입어 역주행 중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K사극 바람이 불고 있다. ‘옷소매’는 지난해 11월 국내 방영 전부터 일본·대만·베트남 등 20여개국에 선판매됐으며, 지난해 12월 종영한 ‘연모’는 최근까지 넷플릭스 전세계 콘텐츠 순위 10위권을 10주 연속 유지했다.

사극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KBS는 ‘연모’가 흥행하자 다시 한 번 ‘꽃 피면 달 생각하고’를 후속작으로 편성해 사극 열풍을 이어갔고, 이 드라마는 곧장 월화극 1위로 올랐다. 올 상반기 배우 이준·장혁 주연의 KBS 새 월화드라마 ‘붉은 단심’과 박형식·전소니가 호흡을 맞춘 tvN ‘청춘이여 월담하라’가 사극 열풍에 가세한다. 배우 김혜수가 출연을 검토하고 있는 tvN 드라마 ‘슈룹’도 왕실을 배경으로 한 퓨전 사극이다.
KBS ‘연모’. KBS 제공
최근 인기를 누리는 사극들은 대부분 ‘퓨전 사극’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현재 방영 중인 ‘태종 이방원’과 같은 정통 사극이 정사로 기록된 사건들을 바탕으로 역사 속 인물의 전기를 그려낸다면, 퓨전 사극은 시대극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다양한 스토리와 장르로 변주된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것 역시 거대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개인의 고뇌나 인물 간 관계다. 주 시청자인 MZ세대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이유다.

여주인공의 캐릭터도 진화했다. ‘연모’, ‘옷소매’ 등의 여주인공은 과거 ‘대장금’이나 ‘이산’, ‘동이’에서보다 더 주체적이다. ‘옷소매’ 속 궁녀인 여주인공 성덕임은 신분 제약 속에서도 후궁 제안을 수차례 거절한다. “스스로를 잃을까 두렵다”며 왕을 연모하면서도 왕의 승은을 밀어내고 주체적 삶을 지켜낸다. 성덕임은 왕의 정치적 동반자로, 왕에게 직언을 하거나 암살 위기에 놓인 왕을 구해낸다. ‘이산’에서 그려진 왕의 조력자 의빈 성씨의 모습에서 한 단계 진화한 캐릭터가 됐다.

‘연모’는 남장여자 로맨스의 뻔한 레퍼토리에서 벗어났다. 남장을 한 여주인공이 세자 신분인 남주인공에게 정체를 들키고 몰래 사랑을 키워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장한 여주인공이 왕이 돼 신분의 우위를 점하고, 운명적 역경을 극복해나간다. ‘홍천기’의 여주인공은 천재 화공으로 그려지며, tvN ‘어사와 조이’의 여주인공은 원치 않는 결혼생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이혼을 감행한다. ‘꽃 피면 달 생각하고’에서는 여주인공이 밀주꾼으로 생계를 담당한다. 모두 자아와 주체성이 강한 인물이다.
SBS ‘홍천기’. SBS 제공
퓨전 사극인 이들 작품은 정통 사극과는 달리 분명 허구나 각색한 이야기를 다뤘지만 SBS ‘조선구마사’나 JTBC ‘설강화’와는 달리 역사 왜곡 논란도 영리하게 피해나갔다. ‘사극 명가’인 KBS와 MBC의 노하우가 빛났다는 평이다. ‘연모’는 실존하지 않은 가상의 왕을 만들었고, ‘옷소매’는 사료를 각색했으나 역사적 정통성을 해치지 않고 주제 의식에 집중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지상파와 같은 기존 플랫폼들이 OTT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다”며 “사극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하기도 하고, 지상파 플랫폼에 어울리는 장르다. 대형 사극들을 흥행시켰던 KBS나 MBC가 그간 축적했던 노하우를 바탕으로 웰메이드 사극들을 내놓아 시청률 부진 위기를 돌파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작품의 색깔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실존했던 인물이나 역사를 다룬다면 시대상, 역사적 맥락에 대한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홍천기’나 ‘연모’처럼 창작으로 풀어내는 사극일지라도 시대에 대한 책임의식이 없으면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없다. 상상력이 들어가는 부분도 역사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게 그려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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