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로 버무린 진리 탐구

정혁준 2022. 1. 10.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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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오영수 프로이트 역 '라스트 세션']
유·무신론자의 논리적 경합
신학·심리학, 연극으로 승화
치열한 사유 속 유머가 백미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심리학은 종교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심리학자 알프레트 아들러는 종교를 인간의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한 산물로 보았다. 카를 융은 중년기 이후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교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에릭 에릭슨은 노년기에 궁극적 타자 즉 신을 만나 자아통합을 이루는 것이 인생의 마지막 과제라고 말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유아적 개념일 뿐이라며 종교를 거부했다.

그런 프로이트가 20세기 대표적 유신론자인 시에스(C.S.) 루이스를 만나 ‘과연 신은 있는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면 어떤 결론이 날까?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 작가로 유명한 루이스는 신의 존재를 변증법적으로 증명한 <순전한 기독교>를 펴내면서 영국의 대표적인 무신론자에서 세계적인 전도사로 변신한 극적인 이력이 있다.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라스트 세션>은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나서 벌이는 논쟁을 상상해 무대에 올린 연극이다. 원작은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로 35년 이상 루이스와 프로이트의 대립되는 세계관을 강의해온 아맨드 니콜라이의 <루이스 vs 프로이트>다.

때는 1939년 9월3일 오전, 장소는 런던의 프로이트 서재다. 라디오에서는 영국이 독일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는 대국민 담화문이 흘러나온다. 나치가 프로이트의 저서들을 불태우며 진격해오자 1년여 전 오스트리아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83살의 프로이트는 심란한 표정이다. 이때 프로이트의 초대를 받은 41살의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인 루이스가 방문한다. 최근 자신이 펴낸 소설에서 프로이트를 조롱했던 루이스는 프로이트가 자신을 비난하기 위해 불렀다고 생각해 다소 긴장한 표정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루이스의 소설에는 관심도 없다. 대신 진지하게 질문한다. 원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 이해가 깊고 프로이트를 지지했던 그가 왜 갑자기 유신론자로 돌변한 것인지.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이들은 90분 동안 마치 세기의 핑퐁 경기를 벌이듯 논리적 경합을 벌인다. 저항, 강박신경증, 도착증, 방어기제, 농담, 투사 등 정신분석의 주요 개념들이 오가며, 둘은 서로를 정신분석 하면서 유신론과 무신론이 심리적 의존 또는 심리적 저항 상태라고 공격한다. 프로이트는 개인이 맺는 모든 인간관계는 부모와의 관계의 재현이라고 봤는데, 종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 개인이 종교에 대해 갖는 태도와 신에 대한 관념 또한 부모와의 관계의 재현이라는 거다. 이를 바탕으로 루이스는 ‘프로이트가 아버지에 대한 실망 때문에 신을 거부한다’고 공격하고, 프로이트는 ‘루이스가 이상적인 아버지에 대한 결핍 때문에 이상적인 존재인 신을 갈망하고 있다’고 반격한다.

그래서 결론은 어떻게 났을까?

연극 <라스트 세션> 공연 사진. 파크컴퍼니 제공

결론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해 몸부림치는 지성들의 처절한 진검승부의 과정이다. 신은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가, 고통과 악은 왜 존재하는가. 신이 있다면 왜 세상을 이대로 내버려둔단 말인가. 원죄란 무엇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들에 세기의 지성들은 창과 방패를 휘두르며 궁극의 진리를 향해 수렴해가고자 한다.

연극은 지적인 공방과 통찰로 가득 차 있지만, 진짜 백미는 쉴 새 없이 ‘빵빵’ 터지는 유머에 있다. 서로의 논리적 허점을 재기발랄하게 공격하기도 하지만, 스스로의 논리적 모순이 드러나면서 민망해지는 순간 관객들의 폭소가 터진다. 이는 신에 대한 치열한 사유를 유머로 완벽히 버무려 전달하는 원작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우리말로도 전혀 이물감 없이 옮겨낸 역자의 공이 커 보인다. 구강암으로 30여차례 수술을 한 죽기 석달 전의 프로이트와 영국 신사이자 매력적인 학자인 루이스로 분한 신구와 이상윤의 기대 이상의 케미도 뛰어난 볼거리다.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배우 신구와 함께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오영수. 파크컴퍼니 제공

무신론자라면 프로이트의 논리에 통쾌함을 느낄 것이고, 유신론자라면 루이스의 논리에 감동을 받을 것이다. 심리학도라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을 한 편의 연극으로 마스터하는 재미가 있을 것이고, 문학도라면 신학과 심리학이 어떻게 한 편의 연극으로 승화될 수 있는지에 흥분할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죽음과 전쟁을 코앞에 두고도 진리를 간구하는 여정 속에서 우정을 쌓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해주는 휴머니즘이 가장 오래 남을 것이다. 공연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티오엠(TOM) 1관에서 3월6일까지.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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