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룩업', 그러니 실체를 좀 보라고 이것들아! [OTT리뷰]

김지현 기자 2022. 1. 10.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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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배꼽 잡고 한바탕 웃었는데 왜 낯 뜨거울까. 샅샅이 치부가 까발려진 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니, 보는 이도 발가 벗겨지는 기분이다. 영화 ‘돈룩업’ 얘기다. 남의 얘기인 줄 알고 깔깔 웃었는데 완전히 우리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이 영화는 좀 철 지난 표현으로 웃프다. 프로파간다만 남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파국으로 치닫는지 보여주는 '돈룩업'은 온몸으로 외친다. "그러니 실체를 좀 보라고 이것들아!" 라고.

정확히 6개월 10일 2시간 11분 41초 후, 현 인류가 멸망할 수 있는 크기의 혜성이 지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세상은 어떻게 반응할까. 큰 ‘충격’에 빠지겠지만 곧 각국 정부와 과학계가 하나가 되어 현 인류를 구원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아담 맥케이 감독은 당신을 순진한 사람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돈룩업’은 곧 종말이 온다는 충격적인 사실에서 시작되는 영화다. 그런데 웬일일까. 한시가 급한데 발을 동동 굴리는 건 혜성을 발견한 주인공과 관객들 뿐이다.

지구와 충돌할 혜성을 발견한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담당교수 민디(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온갖 힘을 다해 진실을 알리려 노력한다. 두 사람은 올린(메릴 스트립) 대통령과 그의 친아들이자 비서실장인 제이슨(조나 힐)을 찾아 사실을 보고하지만 이들은 두 사람이 하버드가 아니라고 운운하거나 중간 선거가 더 중요하다며 사실을 알아볼 생각조차 않는다. 낙담한 케이트와 민디는 가장 시청률이 높은 TV쇼에 출연해 목 놓아 진실을 외쳐본다. 그러나 TV쇼에서 이들의 주장은 엔터테인먼트 소식 정도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대중의 구미를 당기지 못하는 정보는 사실이든 뭐든 시청률, 조회수와 거리가 멀다는 뜻이니 뉴스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다. 언론이 두 사람을 코미디쇼 게스트 마냥 다루니 ‘지구와 혜성 충돌’이라는 중대한 사실은 스타의 가십 보다 못한 소식이 된다. 언론을 대하는 감독의 시선은 거의 조롱에 가깝다. 오직 재미만이 목적인 TV쇼 진행자들은 케이트와 민디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지만 그 질문들엔 어떤 알맹이도 없기에 무엇도 도출되지 못한다.


케이트, 민디는 대통령이 불륜 상대인 장관에게 특정 신체 사진을 보낸 정황이 포착되면서 기회를 얻는다. 백악관이 ‘혜성 뉴스’로 스캔들을 덮은 것. 다행히(?) 혜성의 존재는 사실이었고, 올린은 혜성의 궤도를 바꾸는 계획을 발표하며 선거에서 승리한다. 그런데 이 웃픈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올린의 최대 후원자인 한 거대 기업의 오너가 혜성 속 광물의 가치가 수십 조로 추산된다며 혜성이 지구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 그 혜성을 쪼개 자원을 채취하겠다는 거다. 이 황당무계한 계획에 정부는 맞장구를 치고, 정부와 기업은 힘을 합쳐 위험을 조금만 감수하면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된다는 안심 캠페인을 벌인다.

이 어설픈 선동은 놀랍게도 제대로 먹힌다. 영화는 우둔한 정치와 비열한 자본이 손을 잡았음에도 언론과 사회구성원들이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을 때 세계가 어떤 과정을 거쳐 파괴되는지 보여준다. 언론의 감시 기능은 마비돼 있고, 정치뉴스는 가십뉴스로 전락했다. 더 큰 비극은 사회구성원들이 이들의 우둔함과 비열함을 보지 못할 때다. 그 결과는? 종말, 멸망이다. 이 네 가지를 갖춘 세상은 모든 인간을 죽일 수 있는 지구에 돌진하는 혜성과도 같다.

감독은 전작 ‘빅쇼트’를 통해 소수의 자본가들이 얼마나 쉽게 한 나라의 금융 시스템을 장악하고 마비시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그린 바 있다. '빅쇼트'에서도 정부와 언론은 시장이 붕괴되기 직전까지 의심은커녕 어떤 눈치도 못 채는 무능력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이 한심스런 정부와 이기적인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프로파간다에 사회구성원들이 더 신나게 반응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죽을 확률은 100%”라며 눈물로 호소하는 케이트의 표정이 웃기다며 밈(meme)으로 소모하고, 자신의 가족을 죽일지도 모르는 행성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기업가의 말을 순진하게 따르며 대기업에 취직할지도 모른다는 꿈에 젖는 일 말이다. 사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미국의 단면을 풍자했지만 현 한국 사회의 얼굴을 닮았다.


영화는 올린 대통령의 반대편에 선, 케이트와 민디의 주장을 따르는 대중의 모습도 담아내는데 감독의 시선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들 역시 실체나 본질에 대한 관심 보다는 두 과학자의 말을 믿어보자는 인기 스타의 인스타그램에 하트를 누르기 바쁘다. 일회성 이슈에 열광하며, 그것만이 진짜라고 믿는 자들만 남은 세계다. 종말 극복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룩업파'는 매일 유튜뷰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담은 영상 콘텐츠를 보며 '역시 내 생각이 맞아. 다른 이도 그렇잖아'라고 판단할 것이다. 반면 일자리 창출이 우선이라고 주장하는 '돈룩업'파는 정부와 기업의 논리에 일리가 있음을 주장하는 영상을 보며 자신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믿을 것이다. 알고리즘이 두 집단의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아담 맥케이 감독은 이 모든 것을 도마 위에 올려 놓는다. 정치인부터 기업가, 언론인, 시스템을 구성하는 주요 관직자들까지. 좌우는커녕 원수와도 머리를 맞대야 할 지구멸망이라는 난제 속에서 이들은 끝까지 중구난방이다. 장관이 백악관 내 공짜 과자를 돈 주고 파는 자로 묘사되는 건 우연이 아닐 게다. 지구 멸망 후 유일하게 살아남는 자는 H사 가방을 든 대통령 아들 뿐이다. 지구를 장악한 자본은 종말이 닥쳐도 끝까지 살아남는 최후의 권력이라는 뜻일까.

혜성을 처음으로 발견하고 가장 큰소리로 진실을 외쳤던 케이트의 마지막 말은 “그래도 난 노력했어”다. 실컷 관객을 웃기던 이 영화를 보며 끝내 부끄러움을 느낀 건 케이트의 이 마지막 대사 때문이다. 세상의 한가운데 선 우리는 실체나 본질을 보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영화는 묻는다. 가려진 것들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노력한 적 있냐고, 혹시 스스로 눈과 귀를 막고 있는 건 아닌지를. 대선 시국에 공개된 '돈룩업'이 던지는 시의적절한 질문들이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사진=영화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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