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책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

한겨레 2022. 1. 1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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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육군 장병들이 휴전선 철책 근처를 순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숨&결] 방혜린 |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예비역 대위

철책 너머엔 북한군이 있다고 하는데 막상 경계 초소에 가보면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적막과 어둠뿐이다. 전방에 근무하던 시절, 막 전입한 병사를 데리고 전방지역 교육을 다니는데, “북한은 어딜까?”라고 물으니 강 건너 가로등이 철책을 따라 줄줄이 빛나는 곳을 가리켰다. 초소에 서 있던 선임병들이 막 웃는다. 그곳은 파주였기 때문이다. 북녘땅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다.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전방에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무엇일까? 다름 아닌 고라니, 너구리와 같은 야생동물이다. 두번째는 폭설과 강우, 안개와 같은 기상악화다. 그다음이 바로 귀순과 월북 상황이다. 모든 작전이 대북 상황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자주 경계경보를 울리게 만드는 것은 과학화 경계시스템 광망을 뜯어먹는 고라니다. 경계작전은 광망을 흔드는 고라니와 바람과 철새 무리 사이에서 폭우, 강추위와 안개를 뚫어내고 ‘진짜’를 가리는 작업의 연속이라고 보면 된다. 우거진 풀숲은 덤이다.

우리나라 휴전선은 약 240㎞이다. 전인범 예비역 장군은 사람만으로 긴 휴전선을 지켜내려면 족히 200만명은 필요할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제 60만 군대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징집 가능 인구가 주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대규모의 육상 병력을 이전과 같은 저렴한 비용으로 먹여 살리며(혹은 부리며) 유지하는 것은 인권은 둘째 치고 현대 군사 교리와 국방운영과도 맞지 않는 방식이다. 무기체계와 전장, 안보 환경은 날이 갈수록 고도로 복잡스럽고 다변화되는데, 이를 무시하고 단지 경계를 지킬 초소병을 우선적으로 뽑아 세워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일과 다름없다.

야당에서는 이번 월북 사건의 원인을 두고 안보 의지와 대북관이 낮아져서 불러온 안보 불감증이라고 주장한다. 국민의힘 중앙선거대책위원회는 “주적을 주적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군’”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나 과연 월북자가 발생하고, 귀순자를 찾지 못하는 것이 대북관과 안보 의지가 낮아진 당나라 군대여서일까? 주적이라는 표현이 국방백서에서 지워지기 전부터도 귀순과 월북은 생각보다 잦았고, 꾸준했다. 오히려 과학화 감시체계가 도입, 정비되고 북쪽 경계지역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북한 자체의 통제가 강화되면서 예전보다 줄어든 편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이다.

반복되는 월북, 귀순 상황을 통해 사실 가장 시급히 물어야 할 것은 과연 휴전선이 무엇을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냐는 것에 대한 부분이다. 휴전선은 무엇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인가? 인구는 점점 줄고 군도 감축한다는데 과연 우리가 언제까지 구시대적인 방어 전선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또, 과연 이게 효과가 있는 방어 전략인가, 혹은 무슨 효과를 기대하는가?와 같은 질문들 말이다.

개미 한마리 못 지나가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상 환상에 가까운 말이라는 것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제아무리 뛰어난 카메라를 갖다 둬도, 모든 것에 반응하는 광망을 설치해도, 모든 초소에 매일 추위와 더위 속에 모자라는 초병들을 소진시켜가며 세워둔다 하더라도 생사를 걸고 움직이는 단 한명까지 일일이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본래의 방어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그렇게 유지될 수 있는 국경은 이제 세상천지 어디에도 없다. 우리와 반대에 위치해 있는 조-중 국경을 생각해보라. 전초는 말 그대로 ‘전초’의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

지금까지의 ‘실패’ 속에서 답을 회피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경계에 실패한 초병과 상황병, 일선 초급간부들일까? 혹은 전략적 변화와 병역 개혁의 필요성을 안보라는 두 글자 뒤에 숨어, 결국 끄트머리에 도달할 때까지 미뤄두다 당나라 군대라며 목소리만 높이는 사람들일까. 2022년의 철책은 도대체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 것인지, 이제는 답을 내려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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