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7단체 "국민연금 대표소송 수탁委가 담당땐 소송 남발"
수탁위는 수익률 책임 안 져
경영 압박수단으로 악용 우려
경제계 의견 수렴도 건너뛰어
재계 "법률로 규정해야 할 일
기금본부가 소송의 주체 돼야"
국민연금공단이 유례없이 자국 기업을 대상으로 대표소송을 하겠다는 취지로 시스템을 개편하는 데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이 당장 다수의 기업을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낮지만 기업가치를 훼손했다는 명분으로 특정 기업 한두 곳에 대표소송을 단행하며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낼 가능성도 언급된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탁위)는 국민연금에서 투자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담당하고 있다. 수탁위는 기업 배당정책이나 임원 보수 한도 관련 비경영 참여 주주제안을 주로 해왔다. 소송 제기는 공개서한 발송 등 경영 참여 활동과 더불어 국민연금이 택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주활동 중 하나로 꼽힌다. 국민연금이 대표소송을 낸다면 법령상 위반으로 기업과 주주가치에 손해를 끼친 사안이 주된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상은 가치가 훼손됐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전현직 이사와 감사, 업무 관여자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현재까지 대표소송 리스트는 따로 작성된 게 없다"면서 "수탁위가 권한을 맡으면 기업 소송 등을 위한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합의된 의견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국민연금의 대표소송 추진 본격화 움직임에 대해 금융투자업계와 재계는 네 가지 이유를 들며 재검토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대표소송 추진에 대한 대안도 제시하며 합리적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단체들은 "관련 절차와 결정 주체 등 중요사항을 법률에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간 소송이 수반되는 대표소송은 당초 취지와 달리 국민연금에 손해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이 소송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주가가 빠지면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은 되레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단체들은 "기업에도 큰 위협이 되는 소송이라는 점에서 주주권 행사와 달리 신중하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주장은 대표소송이 남용되지 않도록 대상 사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확정되지 않은 혐의만으로도 여론을 의식한 결정에 따라 소송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SK의 LG실트론 인수건은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3년 넘게 장기화된 바 있다. 이슈가 되고 혐의 관련 유무죄가 가려진 것은 이미 과거지사가 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의에 의한 위법 행위로 회사에 중대한 손해가 발생하고 이사진 개인에게 경제적 이익이 귀속돼 해당 사실이 확정된 때에만 대표소송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처럼 대표소송이 지닌 위험 때문에 경제단체들은 "대표소송 제기 실익에 대한 철저한 검증장치를 마련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표소송을 결정하는 수탁책임위원회는 기금운용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수익률과 무관하게 정치·사회 이해관계와 여론에 따라 소송 제기를 결정할 유인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실제 기금운용을 담당하며 운용 수익률에 민감한 기금운용본부가 소송 실익 등을 검토해 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탁자책임활동에 관한 지침 개정안은 기금운용본부와 수탁위로 이원화된 대표소송 제기 결정 주체를 수탁위로 일원화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는 지난달 24일 열린 제10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회의에서 부결되면서 현재 보류된 상태다.
[한우람 기자 / 김정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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