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교제 살인, 고작 7년" 왜?..살인과 치사 가르는 '고의성'

이용성 2022. 1. 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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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냐 살인이냐..'고의성'에 갈려
형법 전문가 "상해치사 적용해도 이례적으로 낮은 형량"

[이데일리 이용성 기자] “7년 선고를 받으려고, 5개월 동안 피 말라가는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닙니다. 저의 딸이 목숨을 잃은 대가가 7년이라고 한다면 저는 앞으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말다툼하던 중 여자친구인 고(故) 황예진씨를 폭행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31)씨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형 선고가 나오자 황씨의 어머니는 울분을 토했다.

황씨의 변호인 측도 “음주운전 사망 사고도 7~8년 선고가 나온다. 수긍하기 어려운 형량”이라고 항의했다. 줄곧 ‘상해치사’ 혐의가 아닌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그였다. 살인죄는 5년 이상의 징역에 무기징역과 사형 선고가 가능하지만, 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적용 혐의가 달라졌다면 형량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지적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고 있다.

6일 서울서부지법에서 선고직후 고(故) 황예진씨의 어머니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이용성 기자)
‘마포 교제 살인’ 치사냐 살인이냐…유족 ‘살인’ 주장

10일 현행법에 따르면 살인죄와 상해치사죄는 ‘고의성’에 따라 나뉜다. 검찰은 이씨에 살인이 아닌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해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구형량보다 낮은 징역 7년형을 내렸다.

재판부는 ‘고의성 없음’에 주목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재판장 안동범)는 지난 6일 “이번 사건은 교제를 원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보복 의도를 가지고 계획적으로 살인 범행에 이르게 한 사안과는 다르다”며 “의도적으로 살해하거나 살해 의도로 피해자를 방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피고인이 사건 발생 전 범행 현장을 떠나려고 했으며 자주 다투기는 했지만, 과거 지속적인 폭력적 행위도 없다는 점을 참작했다. 재판부는 ‘일반적인 상해’로 인한 사망의 결과가 발생한 경우로 보고 양형 기준에 따른 권고형 범위인 징역 3년~5년 범위를 중심으로 고려했다. 징역 7년을 선고하면서 재판부는 “유족에게 용서받지 못한 점을 참작해 양형 기준 상한을 일탈해 형을 정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람 죽었는데 고작 7년”…‘고의성’에 갈려

이 때문에 살인사건에서 ‘고의성’ 인정 여부는 가해자의 형량을 가르는 주요 요건이 된다. 최근 스포츠센터 대표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직원을 70㎝ 길이 막대로 찔러 사망케 한 사건에 대해서도 ‘고의성’이 혐의를 갈랐고, 형량까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애초 경찰은 40대 대표인 A씨에 폭행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은 “A씨가 70cm 막대에 항문이 찔려 장기가 손상돼 숨진 것 같다”는 1차 부검 소견을 내놓자 경찰은 혐의를 살인으로 바꿨다. A씨는 범행 당시 기억을 못한다고 부인했지만, 경찰 관계자는 “A씨가 범행 당시를 기억 못 하는 것과 별개로 긴 봉이 몸에 들어가면 죽는 것은 사실”이라며 “이번 사건의 살인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김운용 다솔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고의성이 인정되는 이유가 70cm의 봉이 사람 몸에 들어가게 해놓고 살아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마포 교제 살인’의 경우, 김 변호사는 “‘가해자가 정말 피해자를 죽이려고 폭행했는가’ 고의가 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짚었다.

가령 식칼로 사람을 찌르는 행위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는 예견이 상식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당연히 살인의 고의가 인정될 수 있지만, 커터칼로 사람을 찌른 행위에 대해선 따져봐야 한다는 얘기다. 김 변호사는 “고의성의 여부는 과거의 행위를 비춰 판단하는 것이라 경험적”이라고 부연했다.

형법 전문가 “상해치사 적용해도 이례적으로 형량 낮아”

그러나 형법 전문가는 ‘마포 교제 살인’에서 검찰과 법원이 상해치사죄를 인정했어도 이례적으로 낮은 형량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오선희 법무법인 혜명 변호사는 “한차례 밀었는데 머리를 다쳐 죽은 상해치사와 사람을 심하게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상해치사가 궤를 같이하는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오 변호사는 “상해치사도 20년 넘는 형이 가능한데, 검찰의 구형량이 지나치게 적었고, 재판부도 이례적으로 적은 선고 형량을 내리면서 국민적 공분이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김운용 변호사 역시 “장시간 잔인한 방법으로 폭행이 이어졌다면 수사기관에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고려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폐쇄회로(CCTV)영상 (사진=SBS 8뉴스)

이용성 (utility@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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