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뉴스타파에 '초상권 침해' 300만원 배상 판결
LG유플러스 불법 추심 의혹 제기하며
고객상담사 얼굴·이름 나온 사진 활용
법원 "모자이크할 수 있었음에도 노출"
[미디어오늘 김도연 기자]
비영리 독립언론 뉴스타파가 초상권을 침해당한 피해자에게 300만 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 매체가 2020년 7월 LG유플러스 불법 추심 의혹을 보도하면서 위탁업체 소속 고객상담사 얼굴과 이름이 드러난 사진을 사용한 게 문제였다.
뉴스타파 의혹 제기는 지난해 6월 방송통신위원회가 LG유플러스에 과징금 6억2400만 원을 부과하는 등 사실로 드러났지만 '초상권 침해'라는 오점은 남았다.
뉴스타파는 2020년 7월 LG유플러스 연체료 불법 추심 의혹 기사에 LG유플러스가 제공한 보도자료 사진을 넣어 보도했다.
LG유플러스가 언론에 제공한 사진은 고객센터 관련 팀을 신설한다는 내용으로 고객 상담사 A씨 얼굴과 함께 이름표가 노출된 자료였다. A씨는 LG유플러스로부터 고객상담업무를 위탁받은 업체 소속이었다.
A씨는 뉴스타파 보도 후 자기 얼굴과 이름이 드러났다며 수차례 기사에서 사진을 삭제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뉴스타파는 이를 미루다가 그해 8월 초 A씨 요청을 거절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A씨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제기했고, 언론중재위는 뉴스타파에 200만 원의 손해배상금 지급과 A씨 초상 및 성명이 노출되지 않도록 수정할 것 등을 명하는 직권조정을 결정했다. 초상권, 성명권 등 인격권을 침해해 정신적 고통을 받았으니 뉴스타파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A씨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뉴스타파는 사진에서 A씨 얼굴과 책상에 붙은 이름표를 블라인드 처리했으나 손해배상금은 지급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히며 언론중재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했다. 언론중재위의 직권조정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이 제기되면, 피해자를 원고로 하고 언론사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간주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김종민)는 지난해 11월17일 A씨 초상권과 성명권이 부당하게 침해됐다며 뉴스타파가 A씨에게 3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피고(뉴스타파)가 사진 공표에 대해 원고(A씨)의 동의를 구했다고 볼 만한 정황이 보이지 않는다”며 “원고가 초상에 관한 촬영, 배포에 동의했다고 해도 언론사가 그 사람 의사와는 상관없이 제3자의 범죄 또는 불법 행위를 폭로하는 취지의 기사 내용을 뒷받침하는 증거 사진 형식으로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면 이는 원고의 초상권과 성명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으로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고 판시했다.
뉴스타파 측은 이미 홍보용 보도자료로 배포한 이상 A씨에게 수인(受忍)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는 LG유플러스로부터 고객상담업무를 위탁받은 회사 소속 고객상담사로서 LG유플러스 고객에게 고객상담 등 서비스를 제공할 뿐 채권추심업무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원고 업무와 기사에 언급된 LG유플러스의 불법 추심 의혹과는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재판부는 “사진은 LG유플러스의 고객센터 관련팀 신설 홍보용으로 촬영된 것이고, 원고(A씨)는 이런 홍보를 전제로 사진 촬영, 배포에 응했을 뿐인데 원고에게 수인의무를 부담시킨다면 이는 원고의 당초 의도를 크게 벗어나게 돼 지나치게 가혹한 결과가 된다”고 했다.
뉴스타파는 △기사가 불법 추심 의혹 폭로라는 공익적 목적을 갖고 있다는 점 △A씨는 사진 하단에서 고객센터 상담 직원으로 설명돼 있기 때문에 불법추심 의혹과 관련 없다고 명시한 점 등을 이유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주장했다.
특히 뉴스타파는 사진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사용한 이유에 “A씨가 사용하는 컴퓨터 모니터 화면의 고객 정보 리스트 모습과 추심업체 등이 사용하는 고객 정보 리스트 모습이 동일함을 강조함으로써 LG유플러스 발뺌을 반박하고 채권 불법추심 의혹 기사 내용의 진실성을 명확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하며 위법성 조각을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LG유플러스의 불법 추심 관련 정황을 폭로함으로써 대기업의 잘못된 추심 관행을 꼬집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라며 보도 가치를 평가하면서도 “사진을 공표함에 있어 피고는 원고의 사전 동의를 구하거나 원고의 초상권 등이 침해되지 않도록 모자이크 처리를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그대로 노출했다. 이는 침해 행위의 보충성이나 침해 방법의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또 사진 중 원고의 얼굴과 이름 부분을 블라이드 처리한 뒤 현재 검색되는 기사와 비교해 볼 때, 사진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피고가 기사를 통해 밝히려는 내용이 더 효과적으로 전달됐다고 보이지도 않는다”며 “따라서 침해 행위의 필요성 내지 효과성도 인정될 수 없고, 그밖에 초상권 등의 침해가 불가피했다고 볼 만한 사정도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A씨 얼굴과 이름을 가리고도 충분히 뉴스타파가 달성하려는 공익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원고는 대중의 관심을 받는 공인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원고가 자신의 의사에 반해 사진이 인터넷 기사에 게재되는 것을 수인해야 할 의무를 진다거나 이를 감수할 지위에 있지 않음은 앞서 본 바와 같다”면서 “사진 하단에 작은 글씨로 설명된 내용만으로 원고가 LG유플러스의 불법 추심 의혹과 관련이 없음을 쉽사리 인식하기 어렵다. 오히려 사진에 얼굴과 성명이 노출된 원고가 의혹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예단에 빠지기 쉬워 보인다”면서 초상권 침해를 인정했다.
양측이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아 재판은 지난해 12월3일 확정됐다. 이번 사건은 기업이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 사진이래도 부정적 이슈일 경우 사진 속 인물의 초상권 침해 여부를 고민해야 함을 시사하는 사례로 해석된다.
기사를 작성한 이은용 뉴스타파 객원기자는 10일 통화에서 이번 법리 공방에 대해 “뉴스타파 차원에서 사진 삭제 요구가 정당한 청구인지 법적 판단을 구한 것”이라며 “보도자료로 공개된 사진이고 이미 여러 매체에 보도된 사진인데, 어느 정도까지 초상권을 인정해야 하는지 등 추가적으로 따져볼 쟁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법원 판단을 존중한다”며 “(법원 판단은) 기사가 제기한 의혹과 홍보자료 속 A씨는 직접 관련이 없다는 것으로, 자문 변호사와 논의 끝에 판결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더는 다투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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