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골든글로브 탄 오영수, 원래 스님 전문 배우였다? [왓칭]
오영수 배우의 남다른 '스님' 연기
참가번호 001번. 오징어게임 속 비밀에 싸인 노인 ‘오일남’을 연기한 배우 오영수(78)가 9일(현지시각)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나 무서워. 이러다가는 우리 다 죽어!”란 대사를 전세계적으로 히트시키고, ‘깐부’란 단어에 대한 전세계적 궁금증을 자아낸 결과다. 한국 드라마로 한국 배우가 수상한 건 처음이다.
긴 시간 연기력을 갈고 닦은 연극 배우의 관록이 빚은 쾌거다. 오영수는 ‘깐부’가 되기 전, 연극무대와 저예산 영화에서 존재감을 발휘해왔다. ‘스님전문배우’란 별칭이 있는 오영수의 대표 ‘스님’ 출연작을 소개한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2003)
오영수의 연기 경력은 58년이다. 동아연극상, 백상예술대상 연기상 등을 수상하며 오래 무대를 지켜왔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로 조연, 단역을 맡아왔다.
이 작품은 그런 오영수의 몇 안 되는 주연작 중 하나다. 2003년 발표된 고(故) 김기덕 감독의 영화로, 오영수는 여기서 호수 위 뗏목에 작은 암자를 짓고 동자승을 키우며 수도하는 승려 역을 맡았다. 작 중 동자승이 사랑에 빠진 소녀를 암자로 데리고 들어오고, 암자의 가장 큰 재산인 불상과 닭 한 마리를 훔쳐서 달아난다. 그리고 몇년 뒤 처를 살해한 살인범이 돼 암자로 돌아온 동자승에게 노승은 반야심경을 뗏목 암자 바닥에 새기도록 한다.
시종일관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풍기던 ‘오일남’과 달리 이 작품 속 승려로 분한 오영수는 잔잔하고,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대사가 거의 없지만, 동승의 성장기를 지켜보는 스님의 시선으로 인간의 욕망과 번뇌, 해탈을 향한 고행, 인생의 의미를 꼼꼼히 그려낸다. 결코 모자람도, 지나침도 없이 딱 필요한 연기만 더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김기덕 감독 특유의 철학적 주제와 자극적 연출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 이 영화는 가장 절제된 폭력성, 유려한 영상미, 간결한 대사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그렇다고 김기덕식 기괴함이 전혀 없는 작품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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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승(2003)
아직은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천진난만한 아홉살짜리 애기스님 도념(배우 김태진). 매일같이 외모를 가꾸는데 신경이 가 있는 사춘기 총각 스님 정심(김민교). 오영수는 여기서 손자 같고, 자식 같은 이들을 챙기는 큰스님을 연기했다.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과 같은 해 개봉, 배우에게 ‘스님 전문 배우’란 별칭을 만들어준 대표 작품이다. 다만 ‘봄여름...’ 속 스님이 열반의 경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현학적인 모습이었다면, 주경중 감독의 이 작품에선 넉넉히 품는 인간적 큰 스님을 연기했다. ‘포경수술’할 돈을 달라며 졸졸 따라다니는 정심에게 화도 냈다가, 결국에는 짠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쌈짓돈을 쥐어주는 인물이다.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도 비는 곳이 없고, 특히 오영수와 대면씬이 많은 동자승의 천진함이 연신 관객의 입가에 미소를 띄게 한다. 6회 상하이국제영화제(진주에상, 각본상), 26회 황금촬영상 시상식(촬영상 동상), 48회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최우수작품상, 촬영상) 수상을 거머쥔 작품인 만큼 영상미와 줄거리도 탄탄하다. 앞전 소개한 김기덕 감독의 작품과 함께 비교하며 보는 것도 추천한다. 같은 ‘스님’도 작품마다 다르게 연기하는 오영수의 연기 내공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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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2009)
2009년 MBC에서 방영된 62부작 드라마. 최초의 여왕이었던 신라 제27대 선덕여왕의 일대기를 ‘덕만’이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재해석한 판타지 드라마다. 신라의 공주였지만 쌍생아라는 이유로 버려졌던 덕만(배우 이요원)이 남장을 해 화랑이 되고, 왕권을 차지하려는 음모를 꾸미던 미실(고현정)에게 맞서며 여왕이 되는 과정을 그렸다.
여기서 오영수는 월식 날짜를 계산해 미실의 책략을 돕는 ‘월천대사’로 분한다. 극 중 초반에는 주인공 덕만에게 맞서는 악역처럼 나오지만, 후반에는 덕만의 계책을 돕고 첨성대를 만드는 인물로 그려진다. 권력의 향방을 쫓아 이리저리 움직이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할 때마다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비굴한 스님 연기가 앞전 소개한 작품 속 스님들의 모습을 금세 잊게 한다. 특히 27회차부터 미실과 덕만 사이 월천대사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격화되면서 오영수의 능청스러운 권력 사이 줄타기 연기가 더욱 돋보인다.
드라마 방영 당시에는 미실 역의 고현정에게 이목이 쏠렸다. 당시 오영수는 무대 경력 40년이 넘는 고참 연극배우였지만, 브라운관에서는 낯선 얼굴이었다. 시청자 사이에선 “진짜 스님을 섭외한 것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이 드라마가 오히려 ‘오영수’ 드라마로 다시 입소문을 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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