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종교 평화를 위하여

한겨레 2022. 1. 10.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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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국립공원 내 사찰 문화재관람료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책임은 상당 부분 신중하지 못한 법제화로 혼란을 일으킨 입법부에 있다. 신소영 기자

[세상읽기]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한국에서 상당한 수준의 종교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것은 타 종교의 적대적인 태도에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해온 불교계의 인내심 덕도 크다. 그러나 최근 불교계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정부 및 타 종교와 충돌하는 사안들에 대해 종교 편향 문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계기 중의 하나는 2021년 10월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 나온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발언들이었다. 정 의원은 문화재관람료 매표소가 사찰과 멀리 떨어져 있어 절에 들르지 않는 시민들까지 돈을 내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과정에서 “봉이 김선달”, “통행세” 같은 자극적인 표현을 썼다. 불교계는 이를 불교 비하라 규정하며 현재까지도 강경한 대응을 지속하고 있다.

문화재관람료의 기형적인 징수는 역사적으로 꽤 꼬여 있는 문제다. 이 제도가 마련된 것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된 이후다. 그 뒤 국립공원 입장료가 도입되면서 징수권자도 다르고 관련법도 다른 두 요금을 편의상 하나의 매표소에서 징수하는 형태가 수십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런데 2007년 국립공원 입장료를 폐지하고 문화재관람료만 남기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고려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찰이 문화재관람료 대신 자연공원법에서 규정하는 공원문화유산지구 입장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관람료 징수 대상이 사찰이 보유한 ‘점’으로서의 문화재들인지, 사찰 일대를 포함하는 ‘면’으로서의 문화재인지에 대해서조차 해석 차이가 크다.

그러니 이 사안은 불교계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문화재청을 닦달하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책임은 상당 부분 신중하지 못한 법제화로 혼란을 일으킨 입법부에 있다.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한 규정은 너무나 허술해서 일부 불합리한 사례도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부처나 지방자치단체에 불교계를 압박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이미 불교계 내부에서도 관람료와 국고보조금에 많은 재정을 의존하는 것이 불교의 자생력 강화와 적극적인 포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해당사자 합의를 통한 제도의 정상화와 교계의 체질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사안이 불교계의 주장처럼 종교 편향 사례인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다. 불교 쪽에서는 하필 개신교 신자인 여당 국회의원이 문화재관람료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한 불만이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캐럴송 활성화 캠페인에서도 유사한 의혹이 있었다. 캐럴은 분명 그리스도교적 기원을 가지지만, 오늘날에는 종교색이 그다지 강하지 않은 장르가 되었다. ‘루돌프 사슴코’나 ‘징글벨’과 같은 고전들이나 머라이어 케리의 캐럴송에서 선교적 의도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이 천주교 쪽의 제안으로 시작되었고, 천주교·개신교 단체들이 참여한다는 점이 불교계를 자극하였다. 이것은 문재인 정부가 ‘친가톨릭’이라고 주장해온 일각의 움직임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은 갈등도 많고 종교도 많은 사회지만 종교 갈등이 내전이나 테러리즘 등으로 폭발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이 다종교사회에는 여타의 제도종교나 정치체제보다 특별히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종교가 없다. 주요 종교들은 대등한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어 다른 집단을 압도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고 있다. 만약 정치세력이 종교적 정체성을 드러내며 다른 종교집단들을 차별할 경우, 이 균형은 쉽게 무너질 것이다. 한국 사회가 정교분리와 종교 편향의 문제에 특별히 민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속국가와 제도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은 종교들을 완전한 경쟁 관계에 두거나특정 종교의 편에 서는 대신, 주요 제도종교들을 가능한 한 공평하게 대하는 방식으로 이 불안정한 구조를 유지했다. 총 네개의 종교가 군종장교를 파견하고, 그리스도교, 불교, 대종교에서 비롯한 경축일이 모두 법정 공휴일이 되어 있는 독특한 제도가 여기서 비롯했다. 이 구조 때문에 한국에서의 종교 갈등은 직접적인 충돌보다는 국가라는 중재자에 대한 호소 형태를 띠게 되었다. 국가가 종교 갈등의 완충지대가 된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종교 평화를 위해서는 더욱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정치인의 여론전에 이용되기에는 너무나 민감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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