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멸망한대도 대선이 더 중요한 사람들
"혜성이 돌진해와요, 모두 죽어요" 외치지만
재난 앞에 선 사람들이 더 '재난급'
대한민국 GOP 초소에 초췌한 행색의 남자가 갑자기 뛰쳐 들어왔다. “6개월 뒤 북한이 핵 공격을 준비하고 있습네다.” 철책을 넘어온 탈북자가 기밀 서류 뭉치를 내민다. 부대에 비상이 걸리고, 결국 탈북자는 청와대로 간다. 긴박한 보고를 듣는 대통령. “일단 대선이 코앞이니 급한 불부터 끄고 생각합시다.”
‘핵 공격’을 ‘혜성 충돌’로, 배경을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꾸면 영화 ‘돈룩업’의 내용과 얼추 비슷해진다. 돈룩업은 새해 첫날 모든 넷플릭스 서비스 국가에서 영화 부문 1위(플릭스 패트롤 기준)를 차지했다. 연말연초인 작년 12월27일부터 올해 1월2일까지 일주일간 시청시간만 1억5229만 시간에 달한다. 누적 시청시간 기록으로 3위인데, 머지않아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재난에 대한 경고를 대하는 정치권과 사회 모습을 풍자한 다른 의미의 ‘재난 영화’가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미국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제니퍼 로렌스)와 지도교수 랜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은 6개월 뒤 지구와 충돌이 예상되는 거대 혜성을 발견한다. 그대로 충돌하면 지구는 멸망한다. 둘은 백악관을 찾아가지만, 대통령의 관심사는 3주 뒤 있을 대선에만 쏠려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지구가 멸망하고 만다”는 이들에게 대통령은 “세상에 100%가 어딨느냐”며 “일단은 (대선까지) 지켜보자”고 말한다. “당신들은 명문대도 아니지 않느냐”고 비아냥대는 백악관 비서실장에게 “당신은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느냐”고 따져보지만, 놀랍게도 진짜 아들이었다.
언론도 엉망진창이다. 인기 시사 예능 프로는 이들을 스타 커플의 가십 뉴스보다도 가볍게 다룬다. “거대 혜성이 지구로 향하고 있다”는 절박한 외침에 “혜성 발견한 걸 축하한다” “충돌하면 전 부인 집까지 피해가 가겠느냐”며 우스갯소리만 던진다. 참다못한 케이트가 “우리가 다 죽는다는데 왜 심각하게 받아들이질 않느냐”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그녀의 분노는 박제돼 광란녀 ‘밈’이 되어 버린다.
그나마 백악관이 혜성에 대응하기 시작한 건, 대통령의 불륜 스캔들 때문이었다. ‘혜성 위기 긴급성명 발표’로 지지율은 반등한다. 위기 탈출 방법은 핵미사일을 쏴서 혜성 궤도를 바꾼다는 것. 하지만 선지자를 자처하는 IT기업 대표 베쉬가 “혜성에 있는 막대한 광물 자원을 채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며 그 방법도 수포로 돌아간다.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혜성이 가까와오는데, 지구의 인간들이란...
‘빅쇼트’와 ‘바이스’를 연출한 애덤 맥케이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매우 과장된 캐릭터와 연출을 동원했다. 정권 유지에만 신경 쓰는 정치권, 공적 책임감은 하나도 없는 언론, 지구 멸망 앞에 자원 채굴을 주장하는 빅테크 기업 오너, 모두를 극단적으로 회화화, 악마화한다. 드라마 전체에 과장, 조롱과 냉소가 흐른다.
“어느 나라에서 혜성 충돌을 앞두고 저런 일이 벌어지겠나” 하는 느낌이 든다면, 사실 영화를 제대로 이해한 셈이다. 영화에서 ‘혜성’은 ‘지구 온난화’의 은유다. “지구 온도가 1.5도나 올라갔어요” “남극 빙하가 녹고 있아요” “탄소발생을 감축해야 한다”는 외침은 이제 당연하면서도 지루한 아젠다가 되어 버렸다. 감독은 혜성 충돌을 대하는 바보들과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바보들이 똑같은 형국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지구 온난화의 위험’을 ‘혜성 충돌 위험’으로 바꾼 것만으로도 영화는 참신성을 인정받았다. 자주 강력한 환경운동 메시지를 내는 레어나르도 디카프리오, 메릴 스트립을 비롯, 제니퍼 로렌스, 티모시 살라메, 케이트 블란쳇, 아리아나 그란데...몸값 비싼 배우들이 중급예산(7500만달러) 영화에 이렇게 줄줄이 출연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판단력이 마비된 세상 전부를 돌려 깐다. 현실적인 듯, 어처구니 없어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가정법으로 세상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짓이 가져올 미덕, 깨달음은 뭘까? 감독 혼자 ‘깨시민 놀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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