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돈 룩 업' 정치쇼와 원화 가치 하락

세종=박성우 기자 2022. 1. 1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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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 칼럼

“6개월 14일 후 혜성이 지구와 충돌합니다. 거대한 혜성이 우리를 향해 돌진하고 있다고!!”

“잘됐네요. (충돌 확률이) 100%는 안되네요. 일단 기다리면서 상황을 좀 봅시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에서는 이런 대사가 등장한다. 영화는 6개월 뒤 거대 혜성과 충돌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질 위기라는 과학자들의 경고에도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 정치인의 모습이 그려진다. 재선을 노리는 대통령은 ‘표’가 된다고 하니, 현실을 외면한 채 지지자에게 하늘 위로 보지 마라는 ‘쇼’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혜성이 눈에 보일 정도로 지구에 접근하자,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지만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영화를 보면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가 떠올랐다. 고갈시기가 다가오는 국민연금, 1000조원 돌파를 앞둔 국가채무, 20만명대로 떨어진 연간 출생아수, 고령화 같은 거대한 혜성이 돌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적자 상태인 건강보험 재정으로 탈모약을 지원하겠다는 유력 대선 후보도 있다.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는 후보는 눈에 띄지 않고, 오로지 ‘표’와 ‘돈풀기’에만 혈안이 된 후보들만 유권자의 눈에 어른거린다.

상식으로 돌아가 보자. 지난해 건강보험 재정적자는 3531억원이다. 건강보험 보장을 대폭 늘린 문재인 케어가 시작된 2018년 1778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후 건보 재정은 3년 연속 적자가 이어지고 있다. 건보 보장이 늘어나면 해당 시술을 받은 사람의 부담은 줄겠지만, 국민 한 명, 한 명이 내야 할 보험료는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세계 최고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는 노인 의료비 증가라는 ‘시한폭탄’을 짊어지고 있다. 월급 명세서에 찍힌 수십만원 짜리 건보료 청구액이 백만원대로 올라 갈 수 있다는 점을 따져봤다면, “탈모약 건보 적용에 1000억원 밖에 들 지 않는다” 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시계도 점차 빨라지고 있다. 2018년 정부 추계(4차 재정계산)에서는 국민연금의 고갈시기를 2057년으로 봤다. 하지만 하지만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의 전망에서는 2055년으로 2년 더 빨라졌다. 인구감소 속도가 그만큼 빨라졌기 때문이다.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지만 대선 후보들의 입에선 개혁 의지는 찾아볼 수 없다. 근로소득이 있는 노인에게 국민연금을 감액 지급하는 이유는 연금 고갈 시기를 늦추기 위한 고육 지책이다. 대선 선거운동에서 이런 고민은 ‘순삭(순간삭제)’된다.

한국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원화는 달러, 엔, 유로와 달리 한국에서만 사용하는 통화다. 퍼주기를 위해 원화를 마구 뿌려서, 원화가 헐 값이 되면,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는 것과 버금가는 충격이 경제에 쓰나미처럼 몰려올 수 밖에 없다. 국가채무비율 등으로 나타나는 재정건전성이 나빠지지 않도록 관리해야 하는 이유는, 원화가 헐값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재정건전성은 한국 경제의 최후 보루’라는 말을 고루한 이야기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경제 상식이 무시됐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36%에서 올해 50.0%까지 14%P 올라간다. 그런데,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공공부채 증가 속도를 집중 모니터링 하겠다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경고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제니퍼 로렌스·왼쪽)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운데)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통령에게 알렸지만, 이를 믿지 않는 반응에 당황한다. /넷플릭스 캡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야 대선후보들은 오는 3월 대선을 앞두고 2월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거론하고 있다. 추경을 편성할 경우, 대부분의 재원을 적자국채 발행으로 조달할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 국가채무는 1100조원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선 무대에서 추경 이야기가 나오면서, 원화 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9일 1년 6개월 만에 1200원 선을 넘어섰다. 추경용 적자국채 직격탄을 맞는 채권시장에서 국채 3년물 금리는 10일 오전에만 5bp(1bp=0.01%p) 이상 올라 2.071%에서 거래됐다. 금리 상승은 채권 값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5년물 CDS(신용디폴트스왑) 프리미엄도 10개월만에 가장 높은 24bp로 치솟아, 한국물 자산의 신용위험이 높아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새해 들어 코스피 지수가 3000포인트 아래에서 올라오지 못한 배경에는 원화 값 하락에 대한 우려가 깔려있다.

대재앙이 일어나기 전에는 전조 현상(前兆現象)이 일어난다. 바로 징조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내다보는 대통령 후보라면 최근 원화 값 하락을 재정건전성 붕괴라는 재난이 일어나기 전 징조로 바라보는 세심함을 갖춰야 한다. 영화 속처럼 과학자들의 경고를 외면하는 대통령이 탄생한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과학적으로 돌진해오는 혜성을 막기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영화처럼 시간을 낭비하거나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은 생기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박성우 정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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