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수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팔순 앞두고 꽃 핀 연기인생

정혁준 2022. 1. 10.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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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열풍]55년 연기 외길 \'깐부 할아버지\'의 인생역전
1967년 극단 \'광장\' 배우 길 들어서
리어왕·파우스트 등 200여편 연극
'오징어 게임' 인기에 광고 쏟아져도
\"출연 작품과 맞지않다\" 거절 화제
배우 오영수씨가 지난달 12일 오후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성남/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배우 오영수(78)는 연극 외길을 걸어오다 <오징어 게임>으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팔순을 바라보는 원로배우는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안았다. 10일 오전(한국시각)에 열린 제79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오영수는 ‘티브이(TV) 시리즈 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에 참가번호 001번을 단 ‘오일남’으로 출연해 특유의 인자한 미소로 어린아이처럼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보이다가 잔인하게 변한 참가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연기를 펼쳤다. 초반 주목받지 못한 ‘오일남’은 뇌종양 환자란 점을 숨긴 채 극의 마지막 반전을 이끌어 낸다. 치매 노인, 어린아이 같은 모습, 인생을 직관하는 지혜로운 노인 등 다채로운 연기를 펼쳐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그는 특히 이정재와 구술치기 장면에선 “우린 깐부(놀이에서 같은 편)잖어”란 대사로 크게 주목받았다.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오영수는 이 장면에서 실제 울었다고 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도 울었다. 정직하게 살아온 기훈이 살기 위해 속이는 걸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확 났다.” 50년 넘게 연극 무대를 지킨 노배우의 탄탄한 연기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영수는 24살인 1967년 극단 광장에 입단하면서 배우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극단에 들어간 뒤 1년 만에 ‘낮 공원 산책’(1968)으로 데뷔했다. 그 뒤 극단 성좌의 <로물루스 대제>에서 조역을 거친 뒤 1971년 극단 여인에 입단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주연을 맡았다. 말론 브랜도의 영화로 유명한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주인공 스탠리로 무대에 올랐다. 연극에 들어선 지 3년 만이다.

오영수는 1993년 연극 <피고지고 피고지고> 무대에 선 뒤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연기상을 받았다. 연극은 70살을 바라보는 왕오·천축·국전 등 세 명의 노인은 ‘신 왕오천축국전’이란 도굴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렸다. 보물을 통해 인간 욕망의 질기고 질긴 미련을 기다림으로 풀어냈다.

오영수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이 당시 수상 소감에 대해 “상은 배우가 무대에서 연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는 시상식에 가지는 못했다. 시상식이 열릴 때도 연극을 하느라 못 간 거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리어왕> <파우스트> <피고지고 피고지고> 등 200편이 넘는 연극에 출연했다. 평생을 무대에 선 그의 연기에 대해 김소연 연극 평론가는 “비중이 높지 않은 배역을 맡더라도 캐릭터 특징을 잘 잡아 제대로 보여주는 원로 배우”라며 “배역을 과하지 않게, 부족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데 뛰어난 배우”라고 평가했다.

<봄 여름…>의 봄 장면. 오영수는 “이 영화가 배우 생활에 획을 긋는 마지막 영화가 되리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코리아픽처스 제공

그는 2003년 고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에 출연해 노스님을 연기했다. 오영수는 이 작품이 자신에게 마지막 선 굵은 작품이 될 거라고 여겼다. “영화를 찍고 난 뒤, 나는 그 영화로 이젠 끝나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 이름을 알렸고, 영화 자체로도 괜찮은 작품이었으니까. 내 인생에 하나의 획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봄 여름…>에 나온 오영수를 유심히 본 황동혁 감독이 그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오영수는 일정이 맞지 않아 황 감독의 제안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계절이 이어지듯 인연은 다시 찾아왔다. 2020년 11월 황 감독이 서울 대학로로 직접 찾아와 오영수가 출연한 연극을 본 뒤 또 다른 제안을 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었다. 이번엔 인연을 맺었다.

오영수는 <오징어 게임> 구슬치기 장면에서 “그 장면을 찍을 때 나도 울었다”며 “가장 인간적인 삶을 보면서 눈물이 확 났다”고 했다. 넷플릭스 제공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여러 업체의 광고 모델 제안을 받았지만, 완곡하게 거절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출연한 작품에 맞지 않는 광고는 사양하고 싶다고 얘기한 거였다. 작품에 맞지 않는 광고에 나와 돈을 버는 게 깐부 정신과도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광보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그를 두고 “연극과 무대를 향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간직한 천생 연극인”이라며 “평생 걸어오신 그의 배우 인생이 뒤늦게 가치를 인정받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고 이번 수상을 함께 기뻐했다.

오영수는 새해 연극 무대로 다시 돌아왔다. 이달 7일부터 3월6일까지 대학로 티오엠(TOM) 극장에서 공연하는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박사를 연기한다.

오영수는 그가 좋아하는 프랭크 시내트라 <마이웨이>처럼 그렇게 연기 외길을 걷고 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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