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훼철된 광화문 월대 난간석, 동구릉에 있다"

신효령 2022. 1. 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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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내용 요약
전나나 학예연구사, 광화문 월대 난간석과 동구릉 소재 석물 비교
문화재청 "경복궁 월대 난간석 맞으면 복원 사업시 활용"

[서울=뉴시스] 1900년대 경복궁 광화문 월대(출처: Princeton Theological Seminary Library).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계간 학술지 '문화재' 화면 캡처) 2022.01.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신효령 기자 = 조선 고종이 1866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광화문 앞에 조성한 월대(月臺)가 1925년에 훼철됐다. 월대 좌우 측면에 난간석이 설치돼 있었는데, 난간석 일부로 추정되는 석재들이 조선왕릉인 경기도 구리 동구릉에 남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전나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학예연구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계간 학술지 '문화재'에 투고한 '경복궁 광화문 월대(月臺)의 난간석 복원에 관한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통해 이같이 주장했다.

전 연구사의 논문에 따르면, 월대는 건물 앞으로 기단을 빼내어 넓게 조성한 부분을 뜻한다. 월대가 있는 건물에서는 공식적인 의식 행사가 치러졌다. 궁궐에서 월대가 있는 건물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침전인 강녕전 외에 광화문 등이다.

광화문 월대는 좌우에 난간석을 설치했고, 중앙에 어로를 두었으며, 남쪽으로는 계단과 경사면을 설치했다. 월대 어로와 이어진 남쪽 경사면에는 좌우에 용두석을 설치해 '왕의 길'이라는 점을 조형적으로 표현했다.

광화문 월대 중앙에 있던 어로는 1915년 조선진흥공진회가 경복궁에서 개최됨에 따라 넓혀졌고, 1925년경 월대가 훼철됐다. 이후 광화문 이전에 따라 그 형상을 찾을 수 없었다.

경복궁 광화문처럼 월대를 설치하는 모습은 다른 궁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월대 좌우에 난간석을 설치한 모습은 광화문이 유일하다. 조선 왕실에서 조영한 궁과 능 가운데 난간석을 두는 건물은 왕을 대표하는 장소임을 의미한다.

[서울=뉴시스] 1920년대 경복궁 광화문 월대 난간석(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계간 학술지 '문화재' 화면 캡처) 2022.01.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재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과 경사로에 위치한 석수가 남아 있지 않지만, 사진을 토대로 비교한 결과 광화문 월대의 난간석은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제작한 석물의 양상을 보인다. 용두석 역시 대한제국 시기에 조성한 상징물에서 유사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경복궁 광화문을 촬영한 사진을 살펴보면, 광화문 앞으로 너른 월대가 T자형으로 설치돼 있다. 광화문 월대 발굴 조사 결과 동서 너비는 약 29.7m, 남북 길이는 약 52m이고, 어로의 너비는 5.2m로 추정된다.

월대 좌우 측면에는 난간석이 설치됐는데 한 방향에 20개의 난간석주와 19개의 동자석, 8각의 난간대인 죽석 19개가 배치됐다. 월대의 남면으로 계단이 설치됐으며, 중앙에는 입 벌리고 있는 서수상과 웅크리고 있는 서수상이 각 한 쌍씩 경사면에 설치됐다.

현재 경복궁 광화문에 배치된 난간석주 한 점은 경복궁 지역에서 나온 것을 사용했다. 이때 발견된 난간석주는 국립민속박물관 인근 녹산에 있던 것으로 높이 150㎝, 폭은 49㎝다. 현재 광화문 월대에 배치된 난간석주는 근대 사진에 보이는 석물과 형태가 같아 고종 당시에 제작된 월대 난간석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이와 같은 크기와 형태를 가진 난간석주가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 지역에 배치돼 있다. 동구릉에 있는 난간석은 근대 사진 속의 광화문 월대 난간석과 같으며 현재 배치된 한 점의 난간석주와도 같은 모습이다.

동구릉에는 능에 배치되지 않는 여러 석물이 남아 있는데, 홍예석, 문소전 구기비뿐 아니라 난간석의 부재인 난간석주, 동자석, 죽석이 전해진다. 조선왕릉봉분 주변에 설치하는 난간석은 민무늬로 된 석물이 없는 반면, 궁궐 주변에 설치된 금천교에서는 문양이 없는 난간석을 설치하는 경우가 다수 남아 있다.

동구릉에 있는 난간석과 용두석은 광화문 월대의 석물로 보이는데, 시대적 양식 분석과 근대 사진과의 비교를 통해 광화문에 설치했던 석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전 연구사는 주장했다.

[서울=뉴시스] 1910년경 경복궁 광화문 월대와 해치(출처: Harvard University, Fine Arts Library). (사진=국립문화재연구소 계간 학술지 '문화재' 화면 캡처) 2022.01.10.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전 연구사는 "경복궁 광화문에 있던 난간석이 언제, 어떠한 이유로 동구릉에 옮겨졌는지 알려지지 않았다"며 "본래 광화문 월대에 있는 난간석주의 수량은 총 40개, 동구릉에 전해지는 난간석주는 18개로, 전부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광화문 월대를 복원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동구릉에 보존된 석물이 실제 난간석으로 밝혀지면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추진하는 광화문 광장 복원에 활용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관계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경복궁 월대 난간석이 맞으면 복원 사업시 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snow@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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