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한 '예술굿'.. 고암의 넋 어루만지다

장재선 기자 2022. 1. 1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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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 뜰에서 소풍 나온 가족이 쉬고 있다. 그 뒤 건물 벽면엔 이진경 작가의 ‘쌈지체’ 글씨가 붙어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이 작가가 고암미술상 수상 기념전에서 이응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차려놓은 굿상.
한 관람객이 ‘이응노의 집’에서 이진경 작가의 작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 ‘이응노의 집’ 개관 10주년… 고암미술상 수상작가展 가보니

이진경 작가 전시‘먼 먼 산…’

고암이 佛에 살며 그리워한

고향땅의 용봉산·월산 암시

서화·조각·설치 등 645점

이응노 생애와 현대사 녹여

홀에는 종이 부적과 굿상도

홍성 = 글·사진 장재선 선임기자

“이응노(1904∼1989) 선생의 생애와 예술을 우리 현대사와 함께 풀어낸 전시예요. 그분의 혼을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조성룡 건축가는 제5회 고암미술상 수상작가 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수상자인 이진경 작가가 그림과 글씨, 설치 작품을 통해 고암 이응노의 넋을 기리고 있다고 전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충남 홍성 ‘이응노의 집’은 마침 개관 10주년을 맞았다. 고암 생가가 있던 홍북읍에 자리한 ‘이응노의 집’은 조 건축가가 설계한 것이다. 한강 선유도공원 디자인으로 유명한 조 건축가는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판을 이어 붙인 사면체 박스형 건물로 구릉 지형과 어울리는 외관을 연출했다. “건축보다 전시를 집중해 봐 주셔요.” 조 건축가는 이렇게 권했으나, ‘이응노의 집’을 찾으니 독특한 건물의 미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정보경 홍성군 학예사는 “건물의 지붕 선(線)이 왼쪽 용봉산, 오른쪽 월산의 능선과 맞춰져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 앞의 뜰은 비탈을 살려 자연의 선을 느끼게 했다. 건물 내부는 통창 등을 통해 바깥 풍경을 끌어안는 구조다. 통로는 둘레길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자연과 예술, 옛것과 지금 것을 조화시킨 고암의 생애를 절로 떠올리게 한다.

이진경 작가의 전시 ‘먼 먼 산-헤치고 흐르고’도 이응노에 대한 예술굿이라고 할 수 있다. 제목 자체가 고암이 프랑스에 살며 그리워한 고향의 용봉산과 월산을 암시했다. ‘문자추상’이라는 전대미문의 예술 세계를 창조하고 세계 미술계에 우뚝 섰으나 남북 분단 질곡으로 인한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갖은 고난을 겪어야 했던 고암의 생애를 어루만진다.

전시는 3개 소주제, 즉 ‘개울물 흐르고’ ‘불꽃을 이고 앞장선 사람’ ‘저 하늘에서 이 하늘로’로 나뉘어 있다. 자연과 생명, 일상을 주제로 한 1부에서 미소를 짓고, 한국 근현대사의 상처를 풀어낸 2부에선 가슴이 서늘해진다. 3부는 모든 생명을 위한 제사 마당이다. 이응노의 넋을 위로함과 동시에 그가 그렸던 ‘군상’ 속 인물들을 불러내 천도하는 내용이다. 실제로 굿상도 마련돼 있고 전시홀 전체에 종이 부적이 붙어 있다.

전시를 둘러보며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놀라움이다. ‘쌈지체’라는 독특한 글씨체로 주목받은 이 작가는 서예뿐 아니라 다방면의 작업을 해왔다. 이번에 30여 년 작업 결실을 보여준다고 들었으나 이렇게 방대한 분량일 줄 몰랐다. 645점의 작품은 서화, 조각, 설치 등 장르를 넘나든다. 이 중 절반인 300여 점이 고암상 수상 후 만든 것이라니 작가의 에너지가 믿을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신기(神氣)가 찾아와 신기(神技)를 줘서 이토록 장엄한 해원굿을 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이응노의 집은 오른쪽에 자리한 초가와 대숲을 거쳐서 마을로 이어진다. 마을에선 2017년부터 신진작가들이 지원하는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마을 복지회관에서는 ‘익명의 개척사’라는 제목의 전시 프로젝트가 진행되기도 했다. 고암이 국내외에서 새로운 예술 영역을 개척한 것을 기려서 ‘최초’ ‘청년’ ‘실험매체’ ‘지역’ 부문에서 작품을 선정해 전시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복지회관 앞에는 고암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세상을 떠난 예술가의 혼이 후대의 기림으로 살아 숨 쉬는 느낌이었다. 고암은 큰 지역에서 예술을 이루기 위해 고향을 떠나 세계적 명성을 얻었으나, 예술의 바탕엔 어린 시절 품었던 자연 풍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미술사학자들의 견해다. 정 학예사는 고암의 고향이 주는 아우라 덕분에 “외지 작가들이 집을 짓고 거주하며 작업실로 활용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조 건축가는 “작은 지방자치단체가 큰 예술가의 기념관을 짓고 10년 넘게 충실히 운영하고 있는 것을 칭찬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말에 흔연히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었다. 전시는 오는 4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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