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 사찰] 연주대 없다면 관악산이 얼마나 허전할까

글 이재진 편집장 사진 이신영 기자 2022. 1. 10.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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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산 연주대와 기도처 응진전.
사당, 과천, 정부과천청사, 인덕원, 관악, 석수, 낙성대, 서울대입구. 이 지하철역들의 공통점은 모두 관악산 발치에 정차한다는 점이다. 관악산은 국내에서 전철 타고 산행하기에 가장 편한 산일 것이다. 그래서 북한산과 함께 수도권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단지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형형색색의 바위와 다양한 산행 루트, 그리고 산속에 녹아든 역사적 유물과 이야기들은 이 산이 도심 속에 있는 산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 명산으로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다.
관악산 정상을 오르고 있는 젊은 산객들.
들머리 따라 다양한 산행 가능
관악산은 들머리를 어디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초보자에게는 비교적 거리가 짧고 등로도 잘 나 있는 서울대 정문 기점 코스가 좋다. 서울대 공대 순환도로 쪽에서 시작하는 자운암능선 코스는 호젓하지만 다이내믹한 암릉 길이다. 사당역 관음사를 들머리로 하는 사당능선은 연주대까지 5.5km로 3시간 정도 걸리는 긴 암릉 산행 코스로 시원한 산세를 계속 보며 오를 수 있어 전망으로 치면 관악산 코스 중에서 으뜸이다.
암릉산행을 즐기는 이들에게는 단연 육봉능선과 팔봉능선이다. 육봉능선은 과천에서 주릉으로 이어진 암릉 줄기로 관악산에서 가장 험한 바윗길이다. 로프와 안전벨트 같은 기본 등반장비 없이 리지를 타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구간인 만큼 반드시 안전장비를 챙겨야 한다. 팔봉능선도 사고가 빈번하다. 두 능선 모두 우회길이 있어 자신이 없다면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연주암을 찾은 이들을 위해 탄문 주지스님이 만든 쉼터 ‘천수안’. 차 한잔 하면서 겨울 등반에 언 몸을 녹일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다.
관악산에서 주릉을 타고 남진하면 안양종합운동장과 관양고교로 이어지는 관양능선을 타게 된다. 관양능선 방면은 능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길이 복잡하면서 희미하고 이정표가 적어 길찾기에 주의해야 한다. ‘관양계곡’ 이정표를 따라가면 안양 서울대수목원으로 연결된다. 관악산의 형제산이라 할 삼성산의 대표적인 기점은 서울대와 안양예술공원이다. 서울대 정문 옆의 관악산공원 입구에서 우측으로 들어 돌산능선을 따르면 일찌감치 바위산의 열린 경치를 볼 수 있다.
관악산공원의 큰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제2광장을 거쳐 장군봉능선으로 연결된다. 석수능선은 석수역에서 가까워 교통이 편리해 많은 이들이 찾는다. 대부분 편안한 숲길이라 호암산 정상까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삼성산 정상에서 안양예술공원으로 연결되는 학우봉능선 역시 암봉이 많지만 우회로가 있고 계단과 고정로프가 있어 어렵지 않은 암릉산행 코스다.
연주암 밑에 자리한 관악사지에서 바라본 연주대.
동생에게 왕위 양보한 효령대군
연주암과 연주대를 빼놓고 관악산을 이야기할 수 없다. 연주암은 관악산 주봉이자 정상인 연주봉 남쪽에 위치한 천년고찰이자 수도권을 대표하는 기도도량이다. 연주암으로 오르는 코스는 크게 과천향교코스와 관악산공원코스가 있다. 과천향교코스는 정부과천청사역에서 과천향교를 거쳐 오르는 길이고, 관악산공원코스는 서울대 건설환경종합연구소에서 출발한다. 두 코스 모두 다른 코스에 비해 무난하게 오를 수 있다. 편도 약 3km, 1시간 30분 정도 잡는다.
연주암은 677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옛 문헌에는 의상대를 세우고 관악사를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물이나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지만 고려 후기 양식의 3층석탑과 연주대 아래에 관악사지가 있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보인다. 지금의 연주대는 이성계가 무악대사의 권유로 의상대 자리에 석축을 쌓고 30㎡ 정도의 축대를 쌓아 그 위에 암자를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것이 현재 응진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관악사에서 연주암으로 이름이 바뀐 데에는 태종이 셋째 아들 충녕대군(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첫째 아들 양녕대군과 둘째인 효령대군이 왕위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고 이곳에서 수행했다는 일화에 기원하고 있다. 두 대군이 왕궁이 바로 내려다보이는 현 위치로 관악사를 옮기자, 이후 사람들이 두 대군의 심정을 기리는 뜻에서 ‘의상대’를 ‘연주대’로, ‘관악사’를 ‘연주암’으로 각각 부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인가 연주암 한켠에 효령대군 영정을 모신 효령각이 자리하고 있다.
연주대 응진전. 손꼽히는 나한기도도량이다.
남한 최고의 조망 명당
연주암은 불자들에게 ‘나한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 불교에서 나한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의미한다. 깨달음을 이루었다는 것은 온갖 번뇌와 생사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번뇌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중생의 몸에서 부처의 몸으로 향상된 것이니 나한은 바로 부처다. 그래서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 위에 앉아 있는 연주대 응진전에는 세속의 때를 벗기 위해 기도하는 이들로 항상 붐빈다. 기도가 영험한 도량으로 이름난 연주암에서도 명당에 자리하다 보니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들이 절벽 끝으로 모인다.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좌우협시불로 자리잡고 있으며, 그 뒤편에는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또한 응진전 옆 암벽에 마련된 감실에는 약사여래불이 봉안돼 있다. 연주암 큰마당에서 약 400m를 올라가야 연주대다. 연주대 법당으로 들기 위해서는 바위틈으로 난 좁은 길을 통과해야 한다. 3평도 안 되는 응진전에서 스님과 불자들이 기도를 올린다. 산 아래 과천 일대와 강남 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왜 연주대가 남한 땅 최고의 조망 명당으로 불리는지 납득할 수 있다.

본 기사는 월간산 2022년 1월호에 수록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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