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사태로 美·유럽 분열 획책..제국의 영광이여, 다시 한번" [특파원+]
美 우크라 지원하자, 러 기다렸다는 듯 강력 대응
유럽서 美의 일극주의와 독·프 다극주의 이해충돌
美, 우크라 즉각 나토 가맹 통해 대러전선 동진 희망
독·프는 서구와 이질감 큰 우크라 즉각 가입 미온적
러, 군사·에너지 앞세워 美·유럽 틈 벌리기 주력
서방이 때릴수록 높아지는 지지율.. '푸틴 패러독스'

러시아 및 한·러 관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는 10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대립의 배경에는 모스크바가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결속력을 와해시켜 워싱턴의 영향력을 감소시키는 것과 동시에 사실상 종신 집권을 노리고 있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 고취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러시아 벼랑끝 전술로 군사적 위기 고조
─현재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의 대응은 어떠한가.
“지난해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은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한 군사지원을 현저히 강화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NT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자 러시아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민첩하게, 그리고 초강경 모드로 맞대응했다. 역대급 대규모 군 기동훈련을 전개했고 서구가 보란 듯이 방어불능의 최신형 마하9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 발사시험 성공 장면을 수시로 송출했다. 우크라이나를 에워싼 접경 지역에 정예병력 10만여명을 촘촘하게 집결시키고 속전속결로 침공할 채비도 갖추었다. 강한 근육질의 군사력을 과시하면서 나토에 대한 경고와 함께 우크라이나 침공을 겁박한 것이다. 예전과 달리 크렘린은 벼랑 끝 대치형세로 군사적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에 대한 불신과 나토의 동진 차단
─러시아가 벼랑 끝 대치에 나서는 배경은.

“나토가 러시아의 세력권을 인정하고 안보를 위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만천하에 법적으로 보장하라는 소위 안전보장안의 요구는 미국에 대한 푸틴 대통령의 뿌리 깊은 불신에서 비롯된다. 소련제국이 몰락을 향해 치닫던 1990년 9월 당시 KGB(국가안보위원회) 요원으로 동독에서 근무했던 푸틴의 뇌리에는 미국의 약속 파기 트라우마가 강렬히 자리 잡고 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무렵 2(동서독)+4(미국·소련·영국·프랑스) 형태의 독일 통일협정 체결을 현장에서 생생히 목도했다. 협정은 동서독과 미·소·영·불 4개국이 분단된 독일을 통일시키고 동독 주둔 소련군은 철수한다는 합의 문안을 담고 있다. 덧붙여 미국은 소련을 안심시키기 위해 통일된 독일의 경계선 동쪽 밖으로 나토의 영향력을 확장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도 함께한다. 당시 했던 나토 확장 방지 약속은 러시아가 얼마 전 공개한 보리스 옐친·빌 클린턴 기밀해제문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소련이어 러시아연방 해체 위기감
─그런데 이후에도 나토는 확대됐다.
“그렇다. 미국의 언약은 1991년 소련 해체 후 바르샤바 조약기구(WTO)가 와해하자 유명무실해졌고 결국 지켜지지 않았다. 8년 뒤 미국은 나토를 앞세워 소련의 몰락이 남긴 힘의 진공 지대로 동진을 시작했다. 파죽지세의 기세로 옛 동구권 국가들, 즉 크렘린의 전통적 세력권을 야금야금 잠식해 들어갔다. 모스크바의 반발과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워싱턴은 1999년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나토에 가입시켰다. 2004년에는 불가리아, 슬로바키아뿐 아니라 러시아와 국경선을 접한 발트 3국까지 나토 회원국이 되었다. 특히 옛 소련의 일원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의 편입은 러시아의 안마당까지 나토가 진출했음을 의미한다. 크렘린 입장에서 접경국 발트 3국에 나토군의 배치와 전투기들의 잦은 출몰이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가능성에 러시아가 긴장할 수밖에 없겠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미·러 갈등이 더욱 부각된다.
“푸틴의 초강경 대응에는 미국 민주당 정부에 대한 보복적 차원의 구원(舊怨)도 깔려있다. 전통적으로 자유, 인권, 민주주의 등 서구의 보편적 가치를 중시했던 민주당 정부는 권위주의 및 독재 체제에 단호하고 비판적 입장을 견지했을 뿐 아니라 관여정책을 통해 탈(脫)러시아 민주화 세력을 배후에서 암암리에 지원해왔다. 실제로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기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 ‘색깔혁명’ 또는 ‘과일혁명’으로 표현되는 친러시아 권위주의 체제 타도 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2003년 조지아에서 장미혁명이 시작된 이래 이듬해 2004년 우크라이나 오렌지혁명, 2005년 키르기스스탄 레몬혁명, 2009년 몰도바 포도혁명이 도미노 현상처럼 일어났다. 크렘린은 연이은 색깔혁명의 배후에 CIS지역 국가들의 권위주의 정부를 전복하고 자유주의적·친서방적 정부로 교체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있다고 보았다. 2011년 러시아 총선과 그 이후 불곰국 전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반푸틴 시위도 같은 선상에서 파악했다. 2022년 새해 벽두 카자흐스탄에서 발생한 소요 사태 역시 이런 흐름 속에서 진행되는 것으로 크렘린은 인식한다.”
─결국 민주당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갈등이 더 격화됐다는 의미인가.

─러시아가 일전불사의 형태로 대응하는 배경에는 또 무엇이 있나.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에 대한 자극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전략적 의도가 있듯이, 크렘린의 강대강 대치 역시 다양한 전략적 포석을 담고 있다. 우선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분리 의도를 지적할 수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러시아의 품 안에서 떼어내려 한다면, 러시아 역시 미국과 EU 사이에 틈을 만들어 그 간극을 벌리는 계략을 구사한다. 러시아의 책략은 서구 동맹의 결속력을 약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일종의 살라미 전술로 설명할 수 있다. 유럽의 안보 주도권과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EU 사이의 이해충돌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다.”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있다는 의미인가.

─한국에서는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나토로 맺어진 동맹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냉전 종식 이후, 특히 21세기에 접어들어 국제사회에서 관찰되는 중요한 세력관계 변화는 미국과 EU 사이의 지정학적 협력의 균열이다. 흔히 서방으로 통칭하지만 미국과 EU 사이의 결집력이 점차 이완되고 있다. 미국은 유라시아에서 일극(一極)우위적 패권 질서를 공고히 하려고 하지만, EU는 탈냉전시대 친미, 미국추수(追隨)외교노선에서 벗어나 독자적 세력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EU와 나토의 동진으로 확장되는 새로운 유럽의 질서를 놓고 미국과 독일·프랑스 사이에서 미묘한 주도권 경쟁이 전개되고 있다. 유로화의 탄생이 미국의 달러 패권을 잠식해가고 있는 현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재 미국의 유럽 정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EU가 서서히 미국의 도전세력으로 떠오르는 상황에서 워싱턴의 대(對)EU정책의 핵심은 유럽의 응집력 약화, 즉 ‘분열시키기’로 설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유럽이 미국의 대항세력이 되기 위해 다수의 국가를 규합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고, EU의 정책을 미국의 지도력에 기반한 외교정책의 명령에 따르도록 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친미 성향의 우크라이나를 조속히 EU와 나토에 가입시키는 것은 워싱턴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된다. 하지만 유럽합중국 탄생의 두 주역 독일과 프랑스의 생각은 다르다. 이 유럽연합의 쌍두마차는 “가장 유럽적인 유럽의 구현”, 뒤집어 해석하면 “미국적이지 않은 유럽통합”을 근본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나아가 독일과 프랑스가 견인하는 EU를 미국과 경쟁이 가능한 다극(多極)세계의 독자적 극으로 만들고자 한다.”
◆미국과는 다른 EU의 우크라이나 정책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는 미국과 독일·프랑스의 시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러시아의 미국·유럽 분열전략은 효과를 보고 있나.
“미국과 EU 간 미묘한 균열을 포착해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러시아의 영민한 투트랙 전략이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촉발된 유럽의 안보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에 정작 유럽연합은 배제된 채 미·러가 주도하자 EU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가스 무기화는 당장 EU의 반발을 사겠지만, 결국 러시아산 천연가스가 대체불가의 에너지원(源)이라는 점에서 미국의 러시아봉쇄 정책에 EU가 적극적으로 협력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단이 된다. 러시아에 대한 제재나 군사적 대응의 수위와 강도를 놓고도 EU 내 이해당사국간 견해가 크다. 에너지, 교역, 안보문제 등에서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밀접히 얽혀있는 EU의 핵심 구성국은 대체로 경고성 대응과 더불어 협상을 통한 외교적 해법을 선호한다. 반면 미국과 공러(恐露)의식이 강한 친미성향의 중·동부유럽 회원국은 고강도 경제제재와 함께 선제적 군사 대응도 불사해야 한다는 강경론을 펼친다. 얽히고설킨 유럽의 지정학적 현실은 강온 세력 간 합의점 도출을 어렵게 하고 공고한 단일대오 형성을 방해한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유럽 주요국의 시각차가 러시아의 강경 대응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대외정책의 목표는 무엇인가
“현재 푸틴의 러시아가 추구하는 대외정책은 국제세력관계에서 전략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다극적 세계의 독자적 한 극으로서의 국제적 지위와 위상을 확보하고 러시아의 역사적, 배타적, 전통적 세력권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는 ‘유라시아 강대국노선’이라는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이 대외노선이 지향하는 최우선적 정책목표는 과거 소련의 공간으로서 러시아의 고유한 세력권으로 인식되는 '근외(近外) 지역'에서 러시아 주도의 경제통합과 정치군사적 우위를 공고히 유지·강화하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영토의 서쪽 날개를 향한 ‘지정학적 반격’, 즉 기회가 되는대로 전통적 세력권인 중동부 유럽을 향해 서서히 영향력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그 반격의 첫 신호탄이 2008년 조지아 전쟁이었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군사개입과 크림반도의 전격 귀속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2015년 중동지역에서의 지정학적 영향력 복구를 위한 시리아 내전 개입은 소련 해체 이후 처음으로 시도된 역외 군사력 투사로 기록된다.”
◆국가안보 불안과 제국부활 열망 자극해 지지도 끌어올리는 푸틴
─외교정책에 영향을 주는 러시아의 국내 정치 상황은 어떠한가.
“러시아가 나토에 강하게 맞서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추락한 푸틴의 지지율 제고와도 연동되어 있다. 2020년 7월 실시된 러시아 국민투표에서 푸틴의 장기집권을 염두에 둔 개헌안이 통과되었다. 현행 러시아 헌법은 대통령 6년 중임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푸틴의 임기는 2024년이면 끝난다. 새로운 개헌안에는 푸틴 대통령이 대선에 다시 출마할 수 있도록 기존 임기를 백지화하는 조항을 포함했다. 신헌법 채택으로 푸틴은 2024년 대선 출마가 가능해졌고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84세인 2036년까지 크렘린 권좌를 유지해 스탈린의 장기집권 재위기록을 깬다.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2024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푸틴은 과거의 철통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려야 하는데, 루스키(러시아인)들의 의식의 심연 속에 있는 ‘불안’과 ‘열망’에 호소하는 소위 애국주의 마케팅만큼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없다. 불안은 서구의 위협에 대한 전통적인 안보강박감 내지는 집단적 안보 히스테리, 즉 ‘포위당한 성채론’을 자극하는 것이다. 열망은 ‘제국증후군’에서 헤어나지 못한 민초들에게 과거 초강대국으로서의 국가적 자존심을 일정수준 회복시켜 주는 것이다. 나토 공세에 대한 위풍당당하고도 강력한 군사적 대응은 이 불안과 열망을 동시에 충족시켜준다.”
─결국 미국이 러시아를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역설적으로 러시아에서 푸틴의 영향력은 커지는 것 같다.
“지난 2012년 다소 낮은 63%를 기록했던 푸틴의 지지율은 2014년 3월 크림반도를 군사적으로 접수하고 병합하자 80%대로 치솟았다. 당시 푸틴은 러시아의 방어를 위해 전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조국 수호와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현을 위한 유일한 지도자로서의 상징 조작을 통해 이전 지지율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푸틴 집권 지난 22년을 반추해볼 때 서구와의 첨예한 군사적 갈등이 노정될 때마다 이것이 푸틴의 낮은 지지율을 급상승시킨 견인차 역할을 했다. 서방이 공격하면 푸틴의 지지율이 높아지는 이런 현상을 두고 일각에서는 ‘푸틴 패러독스’(Putin’s Paradox)로 칭한다.”
도쿄=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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