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강화일기] 프랑스에 간 초코

한겨레 2022. 1. 10.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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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숙의 강화일기]

김금숙의 강화일기

2년 전 여름, 초코를 처음 보았다. 플라스틱으로 둘러쳐진 철창 안이었다. 당근이, 감자와의 산책길에 초코가 우리를 불렀다. 우리를 불렀으면서도 다가가자 뜬장 깊숙이 숨었다. 눈빛에서는 어떤 삶의 의욕도 느낄 수 없었다.

몇달 후 초코는 우리와 한 식구가 되었다. 처음엔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많이 아팠다. 힘들었던 시술을 용감하게 견디어내고 천천히 회복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당근이, 감자를 따라 대소변을 집 안이 아닌 산책길에 보았다. 에너지가 많아 하루 세번 산책을 시키고 두시간을 뛰어야 안정이 되었다. 초코만 마당에서 살게 할 수가 없었다. 당근이의 방을 초코에게 내주고 당근이를 거실로 옮겼다. 당근이는 불안증이 심하고 소유욕과 집착증이 강하다. 자기의 공간을 빼앗긴 이후로 더욱 공격성을 드러냈다. 매일 폭력성을 보이는 당근이와 흥분한 초코의 전쟁이었다. 프랑스에 사는 시부모가 개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두분은 개를 여러번 키운 경험이 있다. 알자스 지방에 사는 시부모 집은 마당이 넓다. 널린 게 산책로다. 당근이, 감자 때문에 눈치를 보는 초코에게는 환상적인 환경이다. 초코를 보내기로 했다. 지난여름부터 당근이, 감자, 초코에게 프랑스어와 한국어로 가르쳤다. 셋 모두 금세 배웠다.

초코는 오직 나만 바라보았다. 내 발소리만 들어도 자다가 벌떡 일어나 꼬리를 흔들고 신음 소리를 냈다. 큰 꼬리로 문을 탁탁 치는 소리가 내가 있는 이층까지 들렸다. 초코를 보내기 일주일 전부터 밤중에 자주 깨었다. 초코를 보내기 전날, 단둘이 산책을 했다. 늘 가던 진강산으로 갔다. 셋이 함께 산책할 때보다 훨씬 여유로웠다. 산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초코는 한쪽으로 비켜 가만히 앉아 기다렸다. 그동안 초코는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뚱뚱하던 몸도 날씬해지고 털갈이를 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귀티가 난다고 했다. “저런 개는 비쌀 거야”라고도 했다. 사람들의 찬사와 눈빛은 당근이, 감자가 아닌 늘 초코를 향해 쏟아졌다. 누구도 초코가 태어나자마자 2년 동안 뜬장에 갇혀 있었다고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그의 눈빛은 생기가 가득하다. 걷는 것도 힘들어하던 초코는 가장 빨리 달리는 감자를 쫓아 달렸다. 긴 갈색 털이 날개처럼 휘날린다. 눈과 비를 좋아한다. 눈만 오면 먹으려고 폴짝폴짝 뛴다. 초코는 눈 올 때 제일 행복해 보인다. 초코의 눈빛은 마치 내 영혼을 관통하는 것 같다. 깊다.

초코를 보내는 아침, 6시에 일어났다. 잠을 못 잤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남편이 초코를 데리고 아침 산책을 나간 동안 나는 당근이와 감자에게 밥을 주었다. 그가 초코의 켄넬과 짐을 차에 싣는 동안 나는 당근이, 감자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아직 완전히 뜨지 않은 해가 2021년의 마지막 하늘을 찬란한 보랏빛으로 물들였다. 새벽 추위 속에서는 손톱 모양의 달이 단아하게 누워 잘 채비를 하였다. 초코를 차에 태웠다. 집 안에만 있기를 좋아하는 당근이도 웬일인지 대문까지 배웅했다. 감자는 꼬리를 빙글빙글 돌리며 떠나는 친구를 수상한 듯 바라보았다.

공항에는 10시가 거의 다 되어 도착했다. 남편이 체크인하는 동안 초코가 목이 마를까 봐 물을 먹였다. 체크인이 끝나자 초코를 데리러 한 남자가 왔다. “초코야, 프랑스에서 만나자. 곧 갈게.” 초코가 내 손을 핥았다. 내 얼굴을 핥았다. 남자가 초코를 데리고 멀어졌다. 마음이 미칠 것 같았다. 남편과 커피를 마시러 파리바게뜨로 향했다. 근데 지갑이 없다. 분명 아침에 챙겼는데…. 결국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고 그를 보냈다. 나는 곧바로 영상실로 향했다. 직원이 영상을 검토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널 많이 사랑하고 아껴준다고 나름 최선을 다했는데. 널 버린 게 아닌데 왜 자꾸 죄책감이 드는지. 왜 자꾸 미안한지 모르겠다. 영상실 직원이 도난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한 뒤 주차장으로 갔다. 지갑은 차 안에 떨어져 있었다.

새벽, 사진이 왔다. 초코는 프랑스에 잘 도착했다. 매일 사진이 온다. 잘 적응하는 듯 보인다. 2022년, 당근이의 공격성에 대한 기록을 시작했다. 잠들기 전에 쓰다 보니 피곤이 나에게 그냥 자라고 유혹한다. 안 된다. 언제 공격성이 나타나는지, 나의 언행을 관찰하고 상황을 묘사, 기록, 분석하자. 일관성과 침착성, 인내심을 갖자. 제압이 아닌 긍정적 강화법을 공부하고 실행하자. 나의 언행이 반려견의 행동을 유도한다. 그러니 내가 노력해야 한다.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그래픽노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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