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연금·건보만은 무책임한 선심 대신 개혁 공약 내놓으라
선거 때 후보들이 선심성 경쟁을 하는 것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지만 최근 주요 대선 후보들의 행태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특히 재정 개혁이 시급한 건강보험과 연금 관련 공약이 그렇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탈모약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고 일하는 어르신의 국민연금을 깎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이 공약들은 이대로 방치하면 기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는 연금·건보의 개혁은 외면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표만 공략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공약보다 악성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두 문제에 대해 핵심을 피해가면서 두루뭉술한 공약만 내놓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탈모약 건보 적용’이 관심을 끌자 가발과 모발 이식 수술도 건보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발 더 나아갔다. 그러나 건강보험은 말 그대로 ‘건강’을 지키기 위한 보험 제도다. 건강과 직접 관련 없는 약제는 비급여 대상일 수밖에 없는데 이 후보는 이 기준을 허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건보 재정은 2018년 ‘문재인 케어’를 시작하면서 만성 적자 구조에 빠져 있는 데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고령화로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건보 재정을 건실하게 할 방안은 내놓지 않고 건보기금만 자기 쌈짓돈처럼 빼내 득표에 쓰려는 행태는 무책임한 일이다. 이 후보가 “연간 수십조원 (건보) 지출 중 1000억원 정도 가지고 퍼주기라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 간다”고 한 것이 그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국민연금을 받을 때 일을 해서 월 소득이 254만원 넘으면 연금을 최대 절반까지 깎는다. 일하게 유도해도 시원찮은데 근로 의욕을 꺾는 제도라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이 후보가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 국민 연금 삭감에 반대하려면 20년 후 적자로 돌아서고 2056년 고갈 위기를 맞는 연금 기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처방도 함께 내놓아야 한다. 윤 후보가 “초당적인 연금개혁위를 만들어 국민 대합의를 이끌어내겠다”며 하나마나한 얘기만 계속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국민연금과 건강 보험의 재정 고갈은 하루라도 빨리 개혁하지 않으면 우리 자식 세대에게 재앙으로 다가오게 된다. 국가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이런 뻔한 현실을 외면한 채 그 재정으로 선심 공약까지 내놓는 것은 수조원, 수십조원 퍼주기 공약보다 무책임한 일이다. 대선 후보들이 기본적인 윤리 의식은 갖고 있는지까지 의문을 갖게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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