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농촌 어메니티' 활용해 '신전원일기' 만들자
[경향신문]
1980년 시작해서 2002년 종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전원일기>다. 요즘 한창 인기다. MBC ON의 조사에 의하면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물론 2030세대들도 꾸준히 보고 있다고 한다.
<전원일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 일보다 남의 일에 더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세한 가정사는 물론 일상의 희로애락조차도 삽시간에 전파되고 공유된다. 간간이 펼쳐지는 논밭과 산야의 풍경은 흙 한번 밟지 않고 허구한 날 코로나, 미세먼지 등과 싸우는 도시민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이다.
이렇듯 <전원일기>가 보여주는 ‘나’가 아닌 ‘우리’로 결속된 공동체 의식, 잊혀져 가는 전통과 문화, 그리고 쾌적하고 청정한 자연경관 등은 따지고 보면 우리 농촌이 가진 소중한 자원이다. 이러한 것을 통칭해 ‘농촌 어메니티’라고 부른다. 이 ‘농촌 어메니티’는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 부합하는 보편적 가치다. 그래서 안방극장을 넘어 전체 국민들이 향유할 만한 공공재이기도 하다. 더욱이 요즘처럼 삭막한 세태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러한 ‘농촌 어메니티’를 성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바로 스위스이다. 이 나라는 국내총생산(GDP)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1%밖에 되지 않지만 우리는 맛있는 치즈, 그림 같은 초원,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쉽게 떠올린다. 여기에는 ‘직접지불제’라는 정부 보조금이 비밀병기로 작동한다. 이 농업직불금은 연간 3조5000억원이 넘는 규모이며 농가 소득의 절반을 넘는다. 물론 농업직불금은 농촌의 주된 수입원이 된다. 그리고 농업직불금의 대부분은 ‘농촌 어메니티’를 유지하는 데 쓰이며, 그 결과 아름답고 깨끗한 전원 풍경이 유지되고 이는 스위스의 막강한 관광자원이 된다.
싱그러운 초록빛 언덕, 제라늄 화분으로 장식된 농가의 창문, 샛노란 유채꽃 들판, 심지어 유유히 풀을 뜯는 소와 닭조차도 그 뒤에는 직불금의 위력이 숨겨져 있다. 결국 농장을 잘 관리해서 쾌적하고 청정한 농촌 풍광이 유지되면 관광객이 늘고 관광수익은 다시 농업보조금으로 지급되는 선순환 구조다.
이에 더해 ‘농촌 어메니티’는 사회적 농업, 치유 농업으로 확장시켜 활용할 수도 있다. 사회적 농업이란 농업활동을 통해 장애인, 고령자 등 취약계층에게 돌봄, 교육, 고용 등 다양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다. 치유 농업은 농촌 자원을 먹거리 생산이 아닌 건강 증진 및 회복을 위해 활용하는 것으로, 그 대상은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함께 모여 꽃과 식물을 가꾸고 가축을 돌보며 웃음을 되찾는 일, 거기에 따뜻한 농촌의 인정이 더해진다면 ‘농촌 어메니티 자원’의 또 다른 활용법이 된다.
최근 ‘지방 소멸’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지방 소멸’의 중심에는 농촌이 있다. 가슴 아픈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도 스위스처럼 ‘어메니티’를 유지하는 대가로 직불금을 대폭 지급하고 잘 관리한다면 젊고 패기만만한 영농 주체들이 농촌에 정착할 공산이 크다. 그러면 흐릿한 화질의 <전원일기> 대신 밝고 선명한 <신전원일기>가 다시 제작될 수도 있겠다. 그때는 김 회장과 일용네를 비롯한 출연자 전원에게 농업직불금을 지급해도 좋을 듯하다.
황성보 | 한국협동조합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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